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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감독 탄생 100년 회고전 … 그와 함께 한 배우·스태프 방한

완벽주의로 유명했던 구로사와 아키라. 그는 평생 안주할 줄 몰랐던 감독이었다. [중앙포토]
“키 크고 잘생긴 분이었죠. 평소엔 그지없이 따뜻한데, 슛만 들어가면 목소리부터 무섭게 돌변했어요. 독재자였죠. ‘천황’이란 별명처럼요. 부감대(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촬영하기 위해 마련한 장치) 위에 선글라스 끼고 앉아 있던 감독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구로사와 아키라(1910∼98). 1951년 ‘라쇼몽’으로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80년 ‘카게무샤’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전설의 영화감독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우디 앨런·마틴 스코세이지 등 내로라하는 할리우드 명장들이 그의 작품을 ‘교과서’로 꼽을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표작 21편이 상영되는 회고전이 1일 서울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개막했다. 지금까지 열린 구로사와 회고전 중 최대 규모다.

이에 맞춰 구로사와와 각별했던 두 사람이 한국을 찾았다. ‘가게무샤’‘요짐보’‘란’의 주연배우 나카다이 다츠야(78)와 ‘라쇼몽’ 이후 많은 작품에서 스크립터로 일한 노가미 데루요(83)다. ‘라쇼몽’의 첫 장면처럼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2일 이들을 만났다.

구로사와는 생전 지독한 완벽주의자로 유명했다. 배우들은 리허설 때도 늘 분장과 의상을 완벽히 갖춰야 했다. “원하는 이미지를 얻기 위해 누구와도,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았죠. 원하는 게 있어도 실현이 안 되면 대부분의 감독들은 포기하는데, 감독님은 끝까지 밀고 나갔어요. 원하는 바가 명확했고, 그걸 얻기 위해선 손수 바닥도 닦고 세트 만드는 허드렛일도 꺼리지 않으니 저희가 따르지 않을 수 없었죠. 결과물이 늘 너무나 탁월했기 때문에 믿음이 있었어요. 항상 ‘나에 대해 알고 싶으면 내 영화를 보면 된다’고 하셨죠.”(노가미)

“구로사와 영화에 출연하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 많이 받았죠. ‘7인의 사무라이’(54년)가 첫 출연이었는데, 아주 잠깐 나오는 역할인데도 ‘걸음걸이가 맘에 안 든다’면서 반나절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전 오히려 편했어요. 지향점이 굉장히 높으니 배우도 속에 있는 걸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었으니까요. 구로사와 감독님의 OK는 다른 감독들의 OK보다 훨씬 더 성취감이 컸어요.”(나카다이)

“나카다이씨가 정말 고생했죠. 완벽주의의 희생물이에요.(웃음)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번안한) ‘란’(85년)을 찍을 땐 분장에만 4시간이 걸렸어요. 감독님이 정말 집착한다 싶을 정도로 메이크업에 공을 들였거든요. 보통 감독의 몇 배 이상이었어요. 나중에 보니 나카다이씨가 거울 앞에 ‘참을 인(忍)’자가 쓰인 종이를 놓고 참고 있더군요. ‘가게무샤’때도 30㎏ 넘게 나가는 의상을 입고 항아리 안에 들어가 있었어요. 관객들조차도 항아리 안에 배우가 들어가 있을 거라곤 상상 못 했을 거예요.”(노가미)

구로사와 아키라 회고전에 내한한 노가미 데루요(왼쪽)와 나카다이 다츠야. [강정현 기자]
구로사와는 9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동양인 최초로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당시 80세의 노(老)거장은 “50년간 영화를 만들었지만 아직도 영화를 잘 모르겠다”고 말해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아마 감독님은 내겐 아직 미래가 남아있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말했을 거예요. 다음 작품을 내 최고 걸작으로 만들겠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가게무샤’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도 ‘다시 공부해서 더 좋은 영화를 가져오겠다’고 해 기립박수를 받았어요. 만족을 몰랐고 안주하지 않았죠.”(나카다이)

“그때 이미 ‘란’에 대한 구상이 있었어요. ‘가게무샤’를 오락물로 만든 것도 흥행에 성공시켜 ‘란’을 만들 발판을 만들기 위해서였으니까요. 단순한 겸양의 말만은 아니었어요.”(노가미)

개막작 ‘라쇼몽’은 일본 국립영화센터가 영상자료원에 기증한 디지털 복원판으로 상영된다. ‘라쇼몽’은 그의 영화 중 가장 드라마틱한 사연을 가진 작품 중 하나다. 개봉 이틀 전까지 미완성이었고 두 번의 화재로 네가티브(원본) 필름이 사라질 뻔 했다. 베니스 영화제 출품 사실을 구로사와 스스로도 모르고 있다가 뜻밖의 수상 소식을 들었다는 얘기도 유명하다.

생전 그의 말처럼 구로사와 아키라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그의 영화를 볼 일이다. 이들에게 세 편만 꼽아달라고 부탁했다. 노가미씨는 ‘7인의 사무라이’‘붉은 수염’‘요짐보’를, 나카다이씨는 ‘들개’‘라쇼몽’‘천국과 지옥’을 추천했다. 회고전은 다음달 10~29일 부산 시네마테크로 옮겨 계속된다.

글=기선민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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