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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소프트파워] 박용하와 세 사람의 꿈

# 어제 오전 6시 서울 강남성모병원 영안실에서는 ‘겨울연가’의 한류스타 박용하씨의 발인(發靷)이 있었다. 착하고 세심하며 여린 감성의 소유자였던 그는 서른세 살의 짧은 삶을 그렇게 마감하고 그를 아끼며 사랑하는 사람들 곁을 떠나 한 줌 재가 됐다. 왜 그래야 했을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토록 애절하게 잡고 왔던 삶의 끈을 스스로 끊어버리고 그 뜨거운 불길 속으로 자신을 던지도록 만든 것일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는 여전히 화려한 한류스타였지만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아니 거품이나 다름없는 인기의 허망함과 너무나 믿었던 이들의 배신에 몸부림치다 결국 꿈이 바닥나 버린 것이라고. 꿈이 바닥난다는 것은 죽음보다 두렵고 무서운 것이다.

# “진짜 두려운 건 바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꿈이 바닥나는 겁니다.” 며칠 전 부산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한모씨에게 책을 보내며 그 첫 장에 쓴 구절이다. 내가 쓴 책을 보고 싶다며 두 번씩이나 간절한 편지를 보내온 한씨에게 뒤늦게 답을 한 것이다. 사실 책을 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책에 진짜 마음을 담아 보내려면 얼마간의 탐색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한씨가 처음 청송교도소에서 편지를 보내왔을 때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그후 두 번째 편지를 받고 나서도 적잖게 시간을 묵혔다. 그러다 박용하의 죽음을 보고 비로소 두 권의 책을 보냈다. 한씨의 꿈이 바닥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 2008년 5월 29일부터 2년 넘게 매주 편지지 10장에 꼭꼭 눌러 쓴 글씨로 정갈하게 채워 넣은 편지를 교도소 담장 너머로 보내오는 사람이 있다. 그에게 주홍글씨처럼 찍힌 수인번호는 공교롭게도 박용하가 짧은 삶을 마감한 나이 서른셋과 같은 33. ‘수인번호 33’의 그 사람 역시 꿈이 바닥나 자식과 함께 동반자살을 꾀했다가 질긴 운명의 장난인지 자신만 살아남고 아이는 죽어 결국 살인죄의 명목으로 감옥살이를 하게 됐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얼마 전 보내온 편지에서 원래는 내년 1월 말께 출소할 예정인데 6개월 앞당겨 7월 말께 출소할지도 모른다는 내용을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며 전해왔다. 교도소의 두꺼운 콘크리트 담장 사이의 갈라진 틈새로도 이름 모를 들꽃은 꿈을 타고 오르듯 피어난다. 그것처럼 그도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다시 꿈꾸는 사람이 된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시 꿈꾸는 사람은 다시 살 수 있다.

# 지금도 신문사 내 서가 한 귀퉁이에는 뜯겨지지 않은 채 누런 봉투에 밀봉된 책 한 권이 있다. 재작년 이맘때 교도소로 보냈다가 받아야 할 이가 퇴소하는 바람에 다시 내게로 반송된 것이다. 그해 여름 나는 『인문의 숲에서…』 두 번째 책을 내면서 다시 사회로 복귀하는 그에게 두려움을 떨치고 스스로의 자존감을 회복하며 진정 자기다운 자기, 나다운 나가 되는 데 도움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 책을 보냈다. 하지만 책이 그에게 채 전달되기도 전에 그는 이미 교도소 담장 밖으로 나왔다. 그후 1년이 지난 어느 날 그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주소는 경기도 성남의 어느 미용실로 돼 있었다. 그는 출소 후 누나가 운영하는 미용실에서 미용 일을 하며 자신의 새 삶을 꾸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꿈을 꾸며 비록 늦은 나이지만 종교문학과 아동복지학을 공부하고자 대학입시를 준비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었다. 그도 올해 서른세 살이다. 죽은 박용하와 동갑이다.

# 한류스타 박용하는 떠났다. 하지만 그의 바닥나 다 펼치지 못한 꿈은, 꿈에 갈급한 채 살려고 몸부림치는 부산교도소의 한씨와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 나온 ‘수인번호 33’의 새 꿈으로, 그리고 바닥치고 일어나 다시 살기를 각오한 서른세 살 동갑내기 미용사의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꿈으로 환생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정진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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