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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pecial]‘한국 0.1%’ 위한 디자이너 이광희, 대중 브랜드 내놓는다

이광희. 한국의 대표 디자이너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그다. 한국 사회의 0.1%도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해 옷을 만들던 그가 대중을 위한 저렴한 브랜드 ‘LK’의 디자인을 맡았다. 도대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나 싶었다. 21일과 23일 서울 남산에 있는 ‘이광희 부티크’에서 그를 3시간여에 걸쳐 두 번 만났다. 이야기는 영부인, 재벌가 사모님, 잘나가는 커리어 우먼들이 입는다는 그의 정장 이야기부터 디자인을 바라보는 가치관, 그리고 그의 인생을 바꾼 아프리카와의 만남까지 폭넓게 흘러갔다.

최지영 기자

● ‘사모님’들을 주로 상대하다 보면 뒷얘기도 많을 것 같다.

“요즘은 비싼 해외 명품이 일반화됐지만 옛날에는 어디 그랬나. 부와 명성이 있는 분들은 대부분 국내 디자이너 부티크를 찾았다. 그래서 과소비의 상징처럼 죄악시됐다. 김영삼(YS) 정부 때는 내 부티크 앞에 주차된 차 번호를 (감찰 직원들이) 적어간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이광희 부티크에서 옷 샀다는 사실이 드러날까 봐 ‘나는 여기 쇼핑백 말고 딴 쇼핑백에다 싸줘’라고 얘기하는 사모님들도 있었다.”

● 이명박(MB)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가 이광희 부티크 옷을 입는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이광희씨의 옷을 즐겨 입는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 위·아래 색깔이 같고, 튀지 않으면서 우아하고 점잖아 보이는정장을 좋아한다.
“김 여사는 한 사람 옷만 고집하지 않으신다. 여러 브랜드와 부티크 옷을 유연하게 골라 입으신다. 분위기 자체가 우아하고 뭘 입어도 잘 소화하신다. 우리 옷 중에선 튀지 않게 우아하고, 점잖아 보이는 정장을 좋아하신다. 위아래 색깔이 같고 라인이 똑 떨어지는 정장들이다. 첫 미국 순방 중 김 여사가 비행기 트랩을 내려올 때 입은 분홍색 정장이 패션 센세이션을 일으켜 기분이 좋았다. 옷을 해 드릴 땐 가봉하러 청와대에 들어가곤 하는데 나는 ‘내가 옷 해 드렸다’고 동네방네 소문 내는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내 옷을 입었을 때 가장 예뻐 보이신다고 주변에서 얘기해주는 점은 기분이 좋다.”

● 고 김대중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도 단골이었다고 들었다.

“대통령 부인이 되시기 전까지 그랬다. 이 여사는 스탠 칼라에 단정한 일자 라인 스커트를 좋아하셨다. 몸매가 날씬하고 키가 커 지나치게 말라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게 유일하게 신경 쓴 점이다.”

● 다른 영부인들과의 인연은 없나.

“이순자 여사는 직접 뵌 적이 한 번도 없다. 다른 사람들이 옷을 사 갔는데 나중에 보니 내 옷을 입고 계셔서 깜짝 놀란 적은 있다. 전두환 정부 때는 내가 30대였는데 겁이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누가 누구 사모님이고, 이런 걸 전혀 몰랐다. 당시 남산 부티크에 어떤 부인이 와서 사람이 많아 한참을 기다리고 앉아만 있다가 그냥 갔다. 그런데 같이 있던 다른 단골고객이 ‘누군지 알고 그리 소홀히 대접했느냐, 내가 다 무서워 죽겠다’고 얘기해줬다. 하나회 핵심 누구 사모님이라고 얘기 들었는데 또 잊어먹었다. 내가 이렇다.”

● 대기업 오너 부인들도 단골이 있었나.

“기억나는 사람이 노소영(최태원 SK그룹 회장 부인·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시어머니이신 고 박계희 여사(고 최종현 회장의 부인)이셨다. 우리 부티크 단골고객이었다. 사치해서 수입 옷 입었다는 소리 듣기 싫다고 결혼할 때 우리 옷을 해주겠다고 하셔서 예비 며느리와 함께 우리 부티크를 찾으셨다. 나중에 가봉은 청와대에 가서 해야 했는데 ‘거기까지 가는 거 불편하지? 그냥 우리 집에 와서 가봉해…’ 하고 다정하게 말씀하실 정도로 소탈하고 정이 많으셨다.”

● 옷로비 사건으로 고초가 컸다고 들었다.

“남산에 있는 L부티크가 옷로비 무대라는 언론보도 때문에 부티크에 3개월 동안 고객이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언론사에 찾아가서 항의도 하고 했다.”

● VVIP만을 상대로 하다가 갑자기 LK라인을 내놓은 이유는.

“극소수의 사람들만 대상으로 일하고 있다는 답답함이 항상 있었다. 힘들게 디자인해서 0.1%도 안 되는 대중만 입는다는 게 아쉬웠다. 디자인 가치의 희소성을 고수하는 것도 좋지만 세상은 바뀌고 있다. 칼 라거펠트가 H&M과 콜래보레이션(협업)해 대중과 함께 호흡하고 있지 않은가.(※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 중인 세계 패션 디자인업계의 거두인 그는 2004년 스웨덴의 패스트패션 브랜드 H&M과의 협업 디자인을 시작으로 대중 패션과 산업 디자인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 굿 디자인은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아프리카에 희망의 망고 나무를 심는 ‘희망고’ 프로젝트에 대중의 참여를 늘리기 위해서라도 대중과 가까이 가고 싶었다. 젊은 사람들이 LK를 입어 아름답고 격을 갖춘 ‘레이디’로 변신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30년 동안 생산과 영업을 함께하면서 힘들었다. LK는 내가 디자인만 하고, 생산과 영업은 이랜드가 하니 나는 디자인에 집중할 수 있다.”

● 어떤 옷을 디자인하려고 노력하나. 원래부터 소수를 위한 VVIP 의상을 생각했던 것인가.

“여자들이 옷을 입는 이유는 돋보이기 위해서다.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잘 드러내기 위해서인 것이다. 옷을 통해 격을 나타낼 수 있는 날개, 내가 누구인가를 찾아낼 수 있는 옷이었으면 좋겠다. 최고로 좋은 옷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디자인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VVIP가 애용하는 브랜드가 됐다. ”

● 한때 고가 옷, 사모님 옷으로 명성을 날리던 국내 디자이너 의상이 쇠퇴하는 느낌이다. 해외 명품과는 어떻게 경쟁해야 하나.

“다른 디자이너들이 어찌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나는 내 일만 한다. 그런데 얼마 전 50대 사모님과 30대 커리어 우먼한테 똑같은 얘길 듣고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이광희 옷을 입으면 수입 브랜드에는 없는 어떤 격을 입는 느낌이어서 좋다고 하더라. 해외 명품과는 다른 무엇을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걸 느꼈다.”

● 디자인에 대한 기본 정신이 있다면.

“정성과 혼이 담긴 디자인이다. ‘디자인 공해’ 시대라 할 만큼 안 좋은 디자인을 대중에게 입히는 괴로움도 커졌다.”

● 이광희 옷이 어울리는 명사를 꼽아달라.

“말했듯이 30대와 50대 고객이 모두 자신의 아이덴티티와 격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라 평가해준다. 숙명여대 한영실 총장도 그렇다. 우아하면서도 능력 있는 강인한 이미지에 내 옷이 잘 어울린다.”



j 칵테일 >> “많이 먹었네, 어쩌지…”

멋쟁이 손님들을 항상 대해야 하기 때문일까. 이광희 디자이너는 50대 후반의 나이에도 몸매 관리를 엄격하게 했다. 기자와 만난 날 중 하루는 “일주일 동안 채소만 먹었더니 너무 당긴다”며 일식 튀김을 주문하더니 조금만 먹고는 “어쩌지…”라며 걱정했다. 또 다른 날은 “어제 부부 동반 저녁을 많이 먹어 오늘은 저녁을 굶어야겠다”고 했다. 그는 매일 집과 남산 사무실을 걸어다닌다. 남산 순환도로를 한 시간 반 동안 걸어 다닌 지도 5개월이 넘었다. 다이어트와 운동에 대해 그는 “인생의 새 목표를 찾았기 때문에 건강하게 그 일을 오래하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5개월 전까진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그의 생활 습관까지 바꾼 인생 목표는 바로 아프리카에 망고 나무를 심어주는 ‘ 희망고’ 프로젝트다.

사모님들을 대하면 사교적이고 모임도 많을 것 같지만 이 디자이너 본인은 집과 부티크를 오가며 패션쇼나 희망고에 관한 일 외엔 거의 바깥 활동을 하지 않는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털어놨다. 퇴근 후엔 집에 와서 마당 앞뜰에 심어놓은 포도넝쿨과 나무들을 관리하고 책을 읽는 것이 취미다. 그는 “포도넝쿨만 봐도 처음 3년간은 담을 잘 타고 가 있도록 계속 줄기를 매줘야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 타고 올라가 자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프리카 사람들을 돕는 일도 누군가는 하겠지만 그걸 기다리기보다는 시작이 반이라는 생각으로 나섰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때 이광희 디자이너가 입은 옷은 꽃무늬가 은은히 들어간 데다가 레이스가 달린 ‘소녀풍’ 의상이었다. 여기에 흰 스타킹을 신어 소녀풍 룩을 완성했다. 그가 30대 젊은 여성들을 위해 새롭게 디자인을 맡아 선보인 브랜드 ‘LK by 이광희’ 역시 로맨틱한 정장이다. 주변 관계자는 “캐주얼과 스포틱 의상이라는 대세를 좇지 않고 오히려 니치 마켓(틈새시장) 공략을 노린 것”이라고 말했다. 1974년 이화여대 비서학과를 졸업한 이광희씨는 80년에 패션계에 입문했었다.



>> 이광희와 아프리카, 그리고 희망고

목사로 전라남도 해남에서 월드비전과 함께 보육원을 운영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탓일까. “그냥 한번 같이 가보자”는 친구 김혜자씨의 권유로 아프리카 수단을 방문한 것은 지난해 3월. 황량한 사막의 월드비전 막사에서 모기장을 쳐놓고 지냈다. 직전엔 콜레라로 800여 명이 죽었다. 주민들은 곡물 가루 한 자루를 배급받아 한 달 동안 먹었다. 장터에 파는 채소라곤 시든 양파뿐이었다. 그 와중에 뭔가를 먹고 있는 어린이들을 발견했다. 망고 열매였다. 초등학교에도 커다란 망고 나무가 보였다. 열매뿐 아니라 그늘까지 제공하는 훌륭한 쉼터였다. 제일 곤궁한 건기에 1년에 두 번씩 열매를 맺어 훌륭한 식량을 제공한다. 가구당 한 그루를 집 앞에 심어 주는데 15달러 정도가 들었다. 아프리카 주민들이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는 수단, 이거다 싶었다. 신청한 지 일주일 만에 ‘희망의 망고 나무(희망고)’가 외교부 산하 사단법인으로 등록됐다. 외교부 조대식 국장이 “이 선생의 그동안 인생은 이 프로젝트를 위해 준비돼 온 듯하다. 인생 마지막 업으로 훌륭히 마무리하시라”고 말해줬다. 지난해 말 남산 하얏트호텔에서 연 ‘희망고’ 자선 패션쇼를 올해엔 10월 국립극장에서 개최한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씨와 함께 클래식 음악과 패션의 만남으로 꾸밀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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