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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흔적들

흔적들 - 최문자 (1943~ )

식탁 위에 놓인 붉은 사과

한 쪽 얼굴이 발갰다

나는 사과에게 물었다 피묻은 뺨에 대하여

사과는 아무 말 안하고 있다

말이 답답할수록 우리는 바벨의 언어로 말했다

사과와 나는 서로 다른 언어로 말했지만

잠시 후 우리는 금세 알아차렸다

흔적들은 소리내지 않고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자세히 보면, 누구나 흔적들로 가득하다

사과가 떠나올 때 울었던 흔적

(중략)

아, 생각난다

단칼에 잘라먹던 사과의 눈물

칼에도 도마에도 묻어 있던 사과의 눈물

사과나무가

아팠던 자리마다 사과를 배는 것은

그 자리에 열린 사과가 더 빨간 것은

떠난 사과들의 흔적 때문이다.

흔적들이 다 말하도록 내버려두고 있다.

푸른 눈물이 마를 때까지



잘 된 정물화 한 점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울고 있는 사과와 사과를 자르는 사람이 함께 앉아있는 식탁. 고흐가 이 그림을 그렸다면 어떻게 그렸을까. 언어의 정물화. 당신이 문을 열고 나가는 아침 식탁 위에 사과 하나가 피 흘리며 오도카니 앉아있다. 시처럼. <강은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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