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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한·중·일 단일통화의 꿈

1944년 7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상황에서 미국 뉴햄프셔주의 브레튼우즈에서 열린 ‘유엔 화폐금융 콘퍼런스’를 통해 미국 달러는 전 세계 기축통화의 지위를 획득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영국 대표로서 자신이 만든 케인스 플랜을 가지고 회의에 참석한 당대 최고의 경제학자 케인스 경(卿)이 달러 중심 통화 체제에 반대했다는 점이다. 케인스 경은 전 세계 국가가 일종의 초국가적 중앙은행을 설립하고 이 은행에서 ‘방코(bancor)’라는 화폐를 발행해 국제결제통화로 사용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만일 이 제도가 도입되었다면 미국도 외환위기를 당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미국은 소위 ‘화이트 플랜’을 제시하면서 은행이 아닌 펀드의 설립과 함께 달러를 언제든지 금으로 교환 가능하게 만든 ‘금태환 보장’ 조건을 내걸어 미국만이 발행 가능한 달러를 전 세계가 기축통화로 사용하는 브레튼우즈 체제의 출범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1971년 닉슨 대통령의 금태환 정지 선언(사실상 폐지 선언)과 함께 달러의 금태환 보장 조건은 폐지됐다. 달러는 금과 상관없는 순수한 종이화폐가 되었지만 변동환율제 도입을 통해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는 유지되었다. 브레튼우즈 체제하에서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면 그만큼의 달러가 전 세계로 발행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최근 미국의 엄청난 경상수지 적자로 인한 글로벌 임밸런스(불균형) 현상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이 된 것을 보면 한 국가가 발행하는 화폐를 전 세계가 다 사용하는 현행 시스템이 가진 문제점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된다.

현행 금융체제의 문제점이 부각되는 가운데 얼마 전부터 중국의 일부 연구소와 언론을 중심으로 한·중·일 3개국이 공통통화를 도입해 사용하자는 제안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중국이 이런 식의 제안을 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4월 중국의 중앙은행 총재는 달러의 기축통화 체제를 폐지하고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행하는 특별인출권(SDR)을 전 세계 기축통화로 사용하자는 폭탄성 발언을 했었다.

이에 대해 당시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 가이트너 재무장관, 버냉키 중앙은행 총재가 즉시 총출동해 달러는 충분히 강하고,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는 흔들림이 없다고 발언하는 등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1년여가 지난 지금 중국이 아시아 3국 공통통화 도입을 제안하는 것을 보면 중국의 ‘달러 흔들기’ 전략이 상당히 끈질기고 장기적이며 향후 계속 추진될 것이라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이 제안은 사실 솔깃한 면도 있다. 과거 일본도 엔화 국제화를 추진한 경험이 있고, 엔은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국제결제통화다. 우리도 원화 국제화를 논의한 적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금융위기 이후 사실상 ‘G2’ 수준이 된 중국이 위안화 국제화를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일 수 있다. 한·중·일 공통통화 도입을 통한 세 나라 통화의 간접적 국제화 추구는 매우 흥미로운 이슈다. 하지만 이는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미국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것이다. 과거 동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논의가 진행된 아시아통화기금(AMF)의 설립과 아시아공통통화(ACU)의 도입에 대해 미국이 보인 태도를 보면 금방 이 부분이 드러난다. 일본의 상황도 문제다. 일본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220%가 넘는 엄청난 규모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다. 만일 이 상황에서 한·중·일 공통통화를 도입한 후 일본에 재정위기가 발생하면 공통통화의 가치와 위상은 추락할 것이다.

또한 중국과 우리의 관계도 문제다. 천안함 사태 처리 과정을 통해 보여준 중국의 태도는 우리로서는 매우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북한이라는 독립변수에 대해 우리를 종속변수처럼 취급하는 상황에서 공통통화 발행을 둘러싸고 이루어질 각종 경제정책의 공조 과정이 과연 순탄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통통화를 북한에서도 사용하게 할 경우 북한 화폐와 신규발행 통화 간의 교환비율을 정할 때 중국이 북한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결정을 하려 든다면 과연 우리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것이다.

한·중·일 공통통화 도입은 당분간 하나의 제안 수준에서 머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즉각 폐기하기보다는 하나의 대안으로서 장기적으로 검토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그 과정에서 공통통화를 레버리지로 해 우리의 입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각종 움직임에 좀 더 민감해져야 할 때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
◆약력=서울대 경제학과, 미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국가경쟁력 강화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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