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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Global] 잭 웰치 맞먹을 중국 CEO … “관시? 난 그렇게 경영 안 한다”

잭 웰치(GE), 리 아이어코카(크라이슬러), 루이스 거스너(IBM), 카를로스 곤(닛산)…. 세계적인 ‘스타’ 최고경영자(CEO)들이다. 난파 직전의 회사를 위기에서 구한 그들의 활약은 경영학계의 신화로 내려오고 있다. 지금도 수많은 CEO가 신화 창조를 위해 뛰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전문경영인이 중국에도 있을까? 중국의 유명 IT기업인 팡정(方正)그룹을 이끌고 있는 리유(李友·46)는 그 후보에 오르기에 충분한 인물이다. 그에게 주어진 타이틀은 ‘팡정그룹 수석 집행관(執行官)’. 우리말로 옮기면 수석CEO다. CEO의 능력은 숫자가 말해주는 법이다. 그가 실질적으로 그룹을 이끌었던 2003년 이후 6년 동안 그룹 매출액은 약 3배, 순익은 5배 늘었다. 평범한 대학 기업이었던 팡정은 금융·부동산·의약 분야의 80여 개 자회사를 거느린 대기업 그룹으로 성장했다.



세미나 참석을 위해 최근 서울에 온 그를 만났다. 스포츠형 머리에 화려한 넥타이, 강한 인상을 풍기는 안경…. 얼굴에서 카리스마가 풍긴다. 한마디 한마디에 자신감이 넘쳤다. 중국 전문경영인의 생각을 한번 들어봤다.

● 그룹에서 어떤 위치인가.

“가정부(保姆)와 같은 존재다. 가정부의 기본 업무는 집을 깨끗이 정돈하는 것이다. 회사 정돈이 나의 일이다. 가정부에게는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 첫째는 절대 주인 집의 물건을 훔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남자 주인과 사적인 감정을 나눠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마음 가짐으로 이사회 구성원들을 대하고 있다. 이 정도면 전문경영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인터뷰 중 삼국지 제갈량이 떠올랐다. 제갈량은 유비를 황제로 만든 만년 2인자였다. 심지어 유비가 임종을 앞두고 ‘내 아들의 능력이 모자란다 싶으면 대신 황제에 오르라’는 말을 남겼지만, 제갈량은 끝내 그 아들을 황제로 섬겼다. ‘제갈량도 만년 2인자였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빙긋이 웃었다.

●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연봉은 얼마나 받는가.

“연간 400만 위안(약 7억원) 정도다. 무조건 다 받는 것은 아니다. 이 중 40%는 기본급이고, 나머지 60%는 실적급이다. 목표 실적을 달성해야 400만 위안을 다 받는 셈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실적 부진으로 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한 적은 없다.”

● 기업 경영철학이 있다면.

“중국어에 ‘돈은 귀신으로 하여금 맷돌을 돌리게 한다(錢能使鬼推磨)’라는 말이 있다. 기업에 돈은 존재의 이유다. 돈을 벌어야 한다. 올해도 벌고, 그리고 내년에도 벌 수 있는 기업이 좋은 기업이다.”

● 중국 기업 경영의 특색 중 하나가 ‘관시(關係)’다. 전문경영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중국에서 기업을 경영하려는 사람은 서방 경영학도 배워야 하지만 중국 전통문화도 익혀야 한다. 경제학뿐 아니라 정치경제학도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고 관시에 의존하라는 것은 아니다. 관시는 시스템이 되어 있지 않으니까 등장하는 것이다. 지난 10여 년 공무원들과 자주 접촉했지만 한 번도 선물을 한 적이 없다. 사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실적일 뿐이다. 인사규정을 세워놓고 그 기준으로 평가한다. 부패가 발생하면 규정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 관시라는 것을 중국 특색의 경영이라고 오해하지 마라.”

● 전문경영인으로 일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기업이 커지면 전문경영인을 필요로 한다. 중국도 다르지 않다. 팡정의 설립자 왕쉬안(王選) 박사는 2000년 초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겨야 한다’며 은퇴를 결심했다. 그가 선지수(審計署·우리나라의 감사원)에서 국유기업 상장 업무를 맡았던 나를 발탁했다. 그룹 산하 IT기업인 팡정커지(方正科技)의 CEO로 오게 됐다.”

※1964년 충칭에서 태어난 그는 1986년 정저우항공공업대학 졸업 후 선지수에서 일했다. 선지수 근무를 통해 기업의 재무구조·인사관리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다.

● 어찌 보면 ‘낙하산’ 사장인데, 종업원들의 반응은 어땠는가.

“생각한 대로다. 상하이 법인의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현지 책임자와 미팅 날짜를 잡았다. 그러나 책임자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뤘다. 그렇게 1주일이나 상하이에서 기다려야 했다. 대부분의 지역 책임자가 그런 식이었다. 업무보고가 아니라 마치 강의하듯 일장 연설을 했다. 산하 법인에 대한 본사의 지배력이 약했고, 외부에서 온 사장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 어떻게 극복했나.

“법인장급 인사 70~80명을 광둥(廣東)성 둥관(東莞)의 컴퓨터 조립공장으로 모았다. 그들 앞에서 ‘앞으로 모든 인사권은 내가 행사한다’고 선언했다. 그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밀리면 끝이었다. 나는 ‘이미 이사회의 동의를 얻었다. 내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지금 당장 나가라. 돌아올 필요 없다’고 밀어붙였다. 성공이었다. 인사권을 장악하면서 경영에 체계가 잡혔다. 개혁은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그 실적을 인정받아 2003년 그룹 CEO로 자리를 옮겼다.”

● 강력한 리더십이 그룹에서도 통했는가.

“팡정은 베이징대학이 설립한 학교 기업이다. 학교가 경영의 주체였지만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기업인지, 행정기관인지, 대학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주인이 불분명했다. 그것을 타파해야 했다. 전체 직원들에게 ‘회사 경영의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며 일을 추진했다. 당시 50여 개 산하 회사가 적자였다. 이 중 80%를 정리했다. 돈을 벌지 못하면 존립근거가 없다는 게 나의 경영 신조다.”

※그는 컴퓨터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한 기존 IT업종 외에 의료·부동산·금융 등으로 영역을 넓혀나갔다. 상호 연관성 있는 산업을 찾아 업종을 다각화한 것이다. 지금은 부동산과 금융 분야가 효자 역할을 하고 있단다. 이와 함께 그룹 내 재무·인사·투자·브랜드 등의 통일화 작업을 추진해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 팡정을 어떤 기업으로 키우고 싶은가.

“나는 전문경영인이다. 최소한 내가 CEO로 있는 동안에는 ‘돈을 버는 회사’로 만들 것이다. 미국 GE와 일본의 마쓰시타를 특히 좋아한다. 한국에서는 삼성을 배우고 싶다. 팡정을 세계 최고의 종합 IT회사로 키우려는 나의 실험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한우덕 기자



j 칵테일 >> 팡정그룹은

베이징대학이 1986년 세운 IT전문기업. ‘方正컴퓨터’로 잘 알려져 있다. IT·의료·부동산·금융 등 분야에 80개의 산하기업을 두고 있다. 팡정컴퓨터를 생산하는 ‘팡정커지(方正科技)’를 포함해 6개 상장사가 있다. 지난해 그룹 매출액 약 500억 위안(약 8조8000억원)에 순익은 약 50억 위안(8800억원)에 달했다.



인터뷰를 통해 본 리유의 경영 노하우

● 좋은 회사는 올해도 돈 벌고, 내년에도 돈 버는 회사다.
● 업무를 단순화하라. 규칙 세워놓고 그에 따라 움직여라.
● 실적을 내라. 그러면 대중의 신임을 얻을 것이다.
● 회사는 당신을 바꾸지 않는다. 당신이 회사를 바꿔라.
● 서방 기업은 모든 게 규정화돼 있지만 중국은 사람이 결정할 여지가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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