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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174> 중국 건축 이야기

‘집이나 성, 다리 따위의 구조물을 그 목적에 따라 설계하여 흙이나 나무·돌·벽돌·쇠 따위를 써서 세우거나 쌓아 만드는 일.’ 건축(建築)에 대한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다. 영단어 ‘architecture’는 우두머리(arkhi)와 목수(tekton)를 뜻하는 그리스어 ‘arkhitekton’에서 나왔다. 이 말이 일본 메이지 시대의 건축역사가 이토 주타(伊東忠太)에 의해 건축으로 번역됐다. 중국 건축의 주요 특징들을 살펴봤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중국의 모든 건축은 사람이 사는 집

“옛날에는 구멍(穴)에서 살고 들(野)에서 묵었다. 후세에 성인이 궁실(宮室)로 바꾸었다.” 『주역(周易)』에 실린 중국 건축의 기원이다. 이렇듯 중국의 원시건축은 동굴과 움집, 오두막집에서 시작했다. 본디 중국 문명의 두 거점인 황하 유역의 황토지대에서는 흙을 기반으로, 장강 유역의 늪지대에서는 나무를 기반으로 한 건축이 발달했다. 이후 궁실이라는 제3의 선진적인 건축형식이 발명되면서 본격적인 중국 건축이 시작됐다.

상하이 엑스포장의 중국관. 응모작 344건 가운데 왕관·한자·용을 소재로 한 세 작품을 선정한 뒤 결합해 건축했다. 화려한 지붕에는 중국 56개 민족을 대표하는 56개의 대들보를 엇갈아 얹었다. [중앙포토]
중국에는 유럽에서 발달한 신전이나 성당과 같이 기념비적인 종교 건축물이 없다. 유일신 사상이 중국 문명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종교 건축은 철저하게 사람의 거주가 배제된 공간이었다. 중국인들은 이와 반대로 신을 배제한 인간 중심의 문명을 건설했다. 모든 건축물은 사람이 거주하는 집을 기본으로 삼았다. 중국의 궁전·절·도관(道觀)·능묘(陵墓)·관아(官衙)·주택이 모두 중심 축선을 두고 좌우가 대칭되며 마당과 건물이 번갈아 배치되는 비슷한 형태로 이뤄졌다. 따라서 중국 건축물들은 설계도만 봐서는 쓰임새를 구분하기 어려울뿐더러, 용도를 서로 바꾸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다. 중국 건축의 정점을 이루는 베이징 자금성(紫禁城)의 태화전(太和殿)을 필두로 황제의 조상을 모시던 태묘(太廟), 공자의 고향 취푸(曲阜)의 공묘(孔廟) 대성전(大成殿) 등이 모두 형태가 비슷한 사각형 형태의 건물이다. 제사를 지내는 건축물까지 죽은 조상이 살 수 있는 집으로 여겼던 것이다. 이에 비해 천단(天壇)과 같이 자연신을 모시는 곳은 건축의 형태를 취하지 않고 원형의 단(壇)을 꾸몄다.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사각이라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과 인본주의 이념에 기반했기 때문이다.

자금성보다 거대했던 아방궁·미앙궁·건장궁

베이징 자금성의 핵심 궁전인 태화전. 길이 64m, 폭 37m, 높이 27m 규모의 현존하는 중국 최대 목조건축물이다. 몇 차례 화재로 중건되면서 처음 세워진 명(明)나라 초기보다 면적이 절반 정도로 줄었다. [중앙포토]
중국 건축의 핵심은 궁전 건축이 차지한다. 하(夏)·은(殷)·주(周) 시대에는 청동솥인 정(鼎)의 크기가 국력을 상징했다.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면서는 더 크고 더 화려한 궁궐을 지어 나라의 힘을 과시하는 풍조가 생겼다. 진시황의 아방궁(阿房宮), 한고조의 미앙궁(未央宮), 한무제의 건장궁(建章宮)은 현재 남아 있는 베이징의 자금성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화려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따르면 아방궁은 동서가 500보, 남북으로 50장(丈, 어른 남자의 키)의 크기에, 위로는 1만 명이 앉을 수 있을 만큼 넓고, 아래로는 오장기(五丈旗, 다섯 장 높이의 깃대로 약 15m 높이를 뜻함)를 세울 수 있을 만큼 높았다. 한나라 때의 가장 화려한 궁전이었던 건장궁 역시 ‘그 규모가 천문만호(千門萬戶)였고, 그 전전(前殿)은 미앙궁보다 높았다. 그 동쪽에는 봉궐(鳳闕)을 세웠는데 높이가 20여 장이었고, 그 서쪽은 당중(唐中)인데, 둘레가 수십 리나 되는 호랑이 우리를 두었다’는 식으로 그 웅장한 규모를 자랑했다.

중국 건축의 규모를 나타내는 기본 단위는 칸(間)과 가(架)다. 당(唐)나라 이후 정착됐다. 칸(間)은 기둥과 기둥 사이 공간을, 가(架)는 기둥이 떠받치는 지붕의 들보인 도리의 개수를 말한다. ‘○칸○가’는 건물의 규모를 가늠하는 단위로 사용됐다. 위로는 황제부터 아래로는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주거 가옥의 크기를 철저하게 규제받았다. 『예기(禮記)』를 시작으로 『당육전(唐六典)』과 같은 국법이 건축법으로 신분질서에 따른 건축의 크기와 재료, 장식의 소재와 색깔까지도 엄격하게 제한했다. “무릇 궁실을 짓는 제도는 천자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각 등급에 따라 차이를 둔다”는 규정이 모든 건축의 기본 전제였다. 천자의 궁전은 화려한 지붕 장식과 연못을 만들 수 있는 등 축조에 어떤 제한도 없었다. 왕공과 3품 이상 대신은 9가, 5품 이상은 7가, 6품 이하는 5가 이상의 집을 지을 수 없었다. 왕후장상과 일반 백성은 종법제적인 신분질서에 따라 거주 가옥의 차별을 받았다. 이는 중국 이웃 나라의 왕궁에도 적용됐다. 가옥의 크기는 자신이 가진 부와 상관이 없었다. 후대로 내려와 강남의 부자들은 집을 화려하게 꾸미기 위해 용 모양의 장식을 쓰면서도 발가락 숫자를 적게 하는 식의 편법을 써서 황제권에 도전하지 않았다. 이처럼 중국의 모든 건축물은 정치질서의 엄격한 지배를 받았다.

기본 구조는 ‘ㅁ’자 형태의 사합원

중국의 전통 가옥은 ‘ㅁ’자 형태의 사합원(四合院·그림)으로 이뤄졌다. 이는 고대 사신도(四神圖)에 보이는 동 청룡(靑龍), 서 백호(白虎), 남 주작(朱雀), 북 현무(玄武)가 사방을 호위하는 개념에서 시작됐다. 북쪽의 산, 남쪽의 연못, 동쪽의 하천, 서쪽의 도로가 건축을 보호한다는 풍수이론에 기반한다. 사방 벽에는 창문 하나 없이 폐쇄적인 담으로 둘러쌓은 네모난 사합원은 단일 건물의 건축 원리에 머무르지 않았다. 성곽과 도시 계획에도 확대 적용됐다. 베이징은 황성인 자금성이 올라타 있는 남북 축선인 용축을 기준으로 엄격한 좌우대칭의 원리에 따라 황성→내성→외성으로 동심원이 중첩되는 철저한 네모의 집합으로 이루어졌다.

사합원의 안마당은 진(進)이라고 불렸다. 마당의 수에 따라 사합원은 일진원(一進院)에서부터 삼진원, 사진원 식으로 남북 방향으로 확대 나열됐다. 사합원의 중심에는 당(堂)이 자리 잡았다. 당의 좌우에는 벽, 뒤에는 실(室)이 자리 잡았고 당의 중앙부분 앞에는 원형의 기둥이 양쪽에 2개 놓였다. 당은 한옥으로 치면 마루인 셈이다. 또한 사합원은 공식 공간은 앞으로, 사적인 공간은 뒤에 놓는 전조후침(前朝後寢)의 원칙이 적용됐다. 9999칸이 아니라 정확하게 8704칸으로 이뤄진 거대한 사합원인 자금성도 마찬가지였다. 국가의 대형 행사가 열리는 태화전이 앞에, 황제의 사생활이 이뤄지던 교태전을 비롯한 내궁이 뒤에 자리 잡았다. 유명한 쑤저우(蘇州)의 졸정원(拙政園)과 같이 중국식 정원인 원림(園林)은 항상 사합원의 뒤편에 후원(後園)의 형태로 위치했다.

중국 건축의 꽃은 화려한 지붕

집을 뜻하는 한자 실(室)의 고대 상형문자는 ‘ ’이다. 이는 집이 상·중·하 세 부분으로 구분됨을 보여준다. 유호(喩皓, ?∼989)가 지었다는 『목경(木經)』에도 “집은 세 부분이 있다. 들보 위는 상분, 바닥 위는 중분, 기단은 하분이다”라는 식으로 집의 구조를 나눴다. 동아시아 건축에서 가장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며, 그 형태와 색채·장식을 통해 건물의 등급을 표현하는 것은 지붕이었다. 즉 지붕을 보면 건물주의 사회적 지위와 위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전통은 지금까지 계승되고 있다. 상하이 엑스포의 핵심 건축인 중국관의 모티브도 지붕에서 나왔다. 특히 거대한 대들보와 기둥을 잇는 구조물인 두공(斗拱)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지은 것이다. 두공의 한국식 명칭은 공포(栱包)다. 일본에서는 쿠미모노(組物)라 부른다. 기둥과 지붕을 연결시키는 부분을 말한다. 중국 근대 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의 아들이자 저명한 건축가인 량쓰청(梁思成)은 “두공은 들보의 끊어지거나 휘어지려는 힘을 줄이기 위해, 들보와 기둥을 잇는 부분에 이용되었는데 들보 아래에서는 몸체를 부풀려 같은 길이에서 하중을 견디는 힘을 늘렸고, 처마 아래에서는 멀리 뻗어나가는 길이를 늘렸다”고 화려한 지붕 건축의 핵심이 두공임을 표현했다.

일반적으로 건축은 중력에 반하는 방향으로 인공물을 확장시키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중력에 대항하는 방식으로 건축가들은 나무와 같은 건축 재료를 세로로 세워서 높이를 달성하는 입가(立架)원리와 돌과 같은 재료를 쌓아 올려 높이 올리는 적층(積層)원리를 사용했다. 동아시아 건축의 지붕은 가로방향의 도리를 주로 하는 구조는 적층원리를 따랐으며, 사선 방향의 서까래를 위주로 한 구조물은 입가원리를 따랐다. 이런 도리 구조와 서까래 구조가 서로 얽히면서 거대한 기와지붕 방식의 구조물을 발전시켜 갔다. 바로 지붕과 기둥이 만나는 부분에 공포가 위치했는데 그 개수와 장식의 복잡함은 건축의 존귀함을 표현하는 데 사용됐다. 중국의 건축기술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발달했다. 규격화된 방식의 시공이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두공(공포)은 본래 기능 대신 규모가 축소되고 개수는 늘어나는 식으로 건축 장식물로 바뀌어 갔다.

도움말 이강민 서울대 공학연구소 건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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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