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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판문점의 공산주의자들 (118) 파리의 공습

휴전회담 대표로 나온 북한 측 사람은 앞에서 얘기했듯이 세 명이다. 수석대표 남일, 그리고 이상조와 장평산이다. 셋 모두 딱딱한 태도로 일관했다. 일부러 그랬겠다 싶은 생각이 들지만, 표정은 한결같이 모질어 보였다.

남일은 함경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그렇듯이 무뚝뚝한 편이었다. 늘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앉아 국군과 유엔군에 대한 비방과 욕설부터 늘어놓았다. 그는 줄담배를 피웠다. 심하게 유엔 측을 몰아세우는 험구(險口)를 한 뒤에는 연거푸 담배를 물었다. 터너 조이 제독도 줄담배였다. 말을 하는 시간만 빼놓고는 그 역시 담배를 잇따라 피워댔다. 회담장은 두 사람이 내뿜는 담배 연기로 늘 매캐했다.

휴전회담에 참석 중인 북한군 대표들의 모습을 찍은 ‘라이프’지 사진. 북한 대표들은 회담장에서 경직된 모습을 보였다. 북측 대표였던 남일과 이상조·장평산은 말로가 좋지 않았다.
누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남일과 이상조, 장평산은 맞은편에 앉은 유엔 측 대표를 치켜뜬 눈으로 계속 째려봤다. 바늘로 피부를 찔러도 피 한 방울 새어 나오지 않을 듯한 표정들이었다. 융통성과 여유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찾을 수 없었다.

심한 막말을 해대고 난 뒤 허겁지겁 담배를 찾아 입에 무는 남일, 별로 좋지 않은 인상으로 눈만 흘기고 앉아 있는 이상조, 구석에서 열심히 상대를 노려보는 장평산의 모습이 판에 박은 듯이 같았다.

우리에게 인상적인 대목이 하나 있었다. 어느 날 회담을 하고 있는데 큰 파리가 한 마리 날아왔다. 그 파리가 공교롭게도 나를 하염없이 쏘아보며 앉아 있던 이상조의 얼굴에 앉았다. ‘저 파리가 일을 내는구나.’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상조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파리는 이상조의 얼굴을 이곳저곳 기어 다니고 있었다. 몸집이 제법 굵은 파리였다. 일단 가려워서라도 파리가 기어 다니는 것을 참지 못할 법한데, 이상조는 꼼짝 않고 앉아서 그저 나를 쏘아보기만 하고 있었다.

‘저 친구, 어떻게 하나 더 보자’면서 나는 계속 그 모습을 봤다. 그 파리는 끈질기게 이상조의 얼굴 위를 기어 다녔다. 그러나 더 끈질긴 것은 이상조였다. 그는 끝까지 버티고 앉아 있었다. 파리의 기묘한 공습(空襲)이었고, 그보다 더 기묘하게 이상조는 이 땅 공산주의자의 제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파리는 결국 이상조한테 졌다. 반응이 없는 이상조의 얼굴을 떠난 파리는 회담장의 자욱한 담배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속으로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애써 참았다. 지켜보는 내내 웃음이 솟구치는 것을 억제하느라 힘이 들 지경이었다. 회담장에 날아들어 이상조의 얼굴을 공격한 그 파리는 사실 나뿐 아니라 우리 측 대표들에게 즐거운 구경거리였던 모양이다.

그날 회담을 마치고 평화촌으로 돌아온 우리에게 ‘이상조와 파리’는 단연코 화제였다. 남일의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이상조여서 우리 모두에게 그날의 ‘파리 공습 사건’은 눈에 잘 띄었던 것이다.

평화촌에 도착한 뒤 회담 대표 중 누군가가 이 말을 꺼내자 여러 사람이 한결같이 “이상조 정말 잘 참던데”라면서 말을 받았다. “정말 가렵지 않았을까” “애써 가려움을 참는 모습이 애처롭더라” “그 사람 참 인내력은 알아줘야 해”…. 대개 이런 반응들이었다.

이상조는 그 뒤로 유엔 측 대표들로부터 다소 긴 별명을 얻었다. ‘파리가 얼굴에 앉아도 꼼짝하지 않는 친구’였다. 그것이 공산주의자의 모습이었다. 매우 작위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으면서 자연스러움을 멀리하는 사람들. 그들의 이념적인 경직성을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이상조와 파리’의 사건에서 그들 공산주의자의 진면목(眞面目)을 살필 수 있었던 셈이다.

파리가 남일과 장평산의 얼굴에 내려앉았어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을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本性)과는 거리가 먼 행태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철저한 공산주의자의 모습을 보였던 북한 측 대표 세 사람의 말로(末路)는 모두 좋지 않았다.

김일성보다 한 살 적은 1913년생 남일은 76년 ‘뜻하지 않은 사고’로 사망했다. 그것은 북한 정권을 대변하는 기관지 ‘노동신문’에 실린 기사 속 표현이다. 그 뜻하지 않은 사고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김일성 우상화 작업의 걸림돌로 작용해 죽음을 맞았다는 설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으나 분명치 않다.

이상조는 망명했고, 장평산은 사형을 당하는 운명을 맞았다. 파리의 모진 공습을 견뎠던 강인한 공산주의자 이상조는 앞에서 소개했듯이 소련에 망명해 민스크에서 학자로 변신, 북한 정권을 비판하면서 생활하다가 96년 사망했다. 장평산은 58년 김일성 1인 독재체제를 비판하다 연안파 숙청 때 쿠데타 음모를 뒤집어쓰고 사형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의 오감(五感)을 거역했던 ‘이상조와 파리 사건’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냉혹하면서도 억지스러운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였다. 그렇게 인간적이기를 거부했던 두 명의 북한 대표는 결국 그보다 훨씬 비(非)인간적인 공산주의 체제의 희생물이 됐다.

대한민국을 대표해 회담에 나섰던 나와 그 둘을 비교해 보는 시각도 있었다. 자유 대한민국의 체제 안에서 삶을 온건히 유지했던 나와 북한 체제 아래에서 굴곡진 삶을 걸었던 두 명의 북측 대표가 대조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같은 공산주의자였어도 중공군 대표는 뭔가 달랐다.

백선엽 장군
정리=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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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