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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영산강은 죽었다

나는 전라남도 함평의 영산강변에서 태어나고 자라났다. 나 어릴 적의 영산강은 시퍼렇게 펄펄 뛰며 살아 있었다. 그 강은 너무나도 풍요롭고 싱싱하고 아름다웠다. 드넓은 강물 위에 여기저기 그물을 던지는 고깃배가 널려 있었고 밀물과 썰물 때를 따라서 오르내리는 화물선들이 줄을 이었다. 말 그대로 그 강은 그곳 기름진 평야지대의 숨길이요, 젖줄이요, 어머니였다.



그러나 1981년에 영산강 하구언을 쌓게 되면서 그 강은 죽고 껍질만 남았다. 이미 그 강은 강이 아니었다. 마치 허물처럼 들녘을 가로질러 길게 누운 민물의 호수였다. 그래서인지 사람들도 강의 이름마저 영산강이라 부르지 않고 ‘영산호’라고 불러 왔다. 30년 동안 토사와 오니와 오물이 켜켜이 쌓이고 가라앉아 깊이 썩어서 악취가 나는 기다란 물웅덩이가 되고 말았다. 또한 강의 상류로 올라갈수록 정도가 더욱 심하니 어디를 가나 아예 강바닥을 다 드러낸 채 마른 강으로 누워 있기가 예사요, 그나마 썩은 물이 흐르는 물길이라는 것이 좁아져서 겨우 사람이 건너뛸 정도밖에 못 되니 그것들이 더러운 개천이지 어찌 강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 이름도 생생하고 운치가 있는 강 상류의 황룡강·극락강·드들강을 포함한 여러 지천마저 하나같이 다 그런 모양새이니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 되고 말았다.



영산강이 윤기 흐르는 풍요의 상징이라는 말은 이미 전설과 같은 옛말이 됐고, 이제는 사람의 키로 한 길도 넘는 시커멓게 썩은 토사와 오니로 덮인 악취가 나는 하수처리장 신세가 돼 버렸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본래 강을 생명의 근원으로 삼는 사람 된 입장에서 영산강의 이런 비극적인 현상을 너나없이 그저 바라만 보고 있기에는 너무나도 가슴 아프고, 그렇다고 하여 두 발을 구르며 망설이고만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 아니던가. 마치 사람이 병이 깊으면 치료받고 수술받아야 하듯이 이런 강에도 근본적인 치료와 수술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물길이 막히면 뚫어 주고, 강바닥이 높으면 파내며, 강둑이 허술하고 빈약하면 보강해 주는 것이 자연을 극복하며 살아야 하는 인간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런 까닭으로 전라남도는 물론이고 그 강과 직접 면하고 있는 수변(水邊) 지역의 지방자치단체 등에서도 MB 정부가 들어서기 훨씬 전에 일찍이 영산강 프로젝트를 세우고 강 살리기 사업에 뛰어들었으며, 그동안 꾸준히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구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이 정부가 수용해 본격적인 강 정비사업을 시행하게 됐고, 그 공정도 벌써 상당 부분 진척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인가? 영산강 살리기를 당장 중단하라고? 죽은 강을 그대로 가만 놔두라고? 썩은 토사가 쌓인 강바닥을 파내지 말라고? 제방을 보강하고 보를 쌓지도 말라고? 오염된 물웅덩이요, 시궁창과 같은 곳일지라도 강과 지천들에는 삽날 하나 함부로 대지 말라고? 그렇게 하는 것은 자연 훼손이요, 생태계 파괴라고? 그래도 정부가 굳이 강 정비사업을 계속한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이런저런 주장들로 시끄러운 우리 사회를 보면서 나는 요즘 몹시 우울하고 슬프고 불안하다. 이러다가 정말 영산강 살리기가 중단되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되어 다 썩은 채로 또다시 아무 쓸모도 없는 애물단지로 들 가운데 무작정 방치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돼 밤잠이 오지 않는다.



물론 나 역시도 남들 못지않게 자연을 지키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서, 맑은 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강을 누군가가 훼손하려 한다면 감히 용납하지 못할 것이다. 더욱이 경관이 수려한 산천을 개발의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파헤친다면 참아 내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영산강 살리기의 경우는 그것이 아니지 않은가? 이미 오래전에 자연 치유의 한계를 지나 버린, 중병에 걸려 죽은 강을 사람의 손으로 숨길을 터서 되살려 보자는 것이다. 또 그렇게 하여 되살아난 영산강을 우리 함께 지키고 아끼며, 온전히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자는 것이다.



부디 이 일이 어느 특정한 개인이나 정파를 위한 것이 아니고 이 시대를 함께 사는 우리 모두와 후손들을 위한 백년대계의 뜻깊은 국책사업임을 깨닫고 모두가 마음을 합쳐 영산강 살리기의 울력에 나서기를 바란다.



양성우 시인·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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