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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도 울고 붉은 악마도 울었다 … 그러나 뜨거웠던 6월 우린 행복했다

한국과 우루과이의 16강전은 붉은 악마들에게도 한 편의 드라마였다. <1>경기 시작 전 붉은 악마들이 태극기를 만들며 선전을 기원하고 있다. <2>그러나 전반 8분 만에 수아레스에게 선취골을 허용하자 안타까워하고 있다. <3>후반 이청용 선수가 동점골을 터뜨리자 환호하는 붉은 악마들. <4>추가골을 허용하고 패하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인섭 기자·연합뉴스·뉴시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원정 첫 16강전이 26일 남아공의 휴양도시 포트엘리자베스의 넬슨 만델라 베이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지난 12일 2-0으로 승리해 한국 팀에 첫 승의 기쁨을 안겨준 그리스전이 열렸던 곳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남미 전통의 강호 우루과이 대표팀을 상대로 태극전사들이 다시 한번 그때처럼 통쾌한 승리를 거둬주기를 한마음으로 염원했다. 간절한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광장으로 몰려갔다. 전국에 비가 내릴 것이란 기상청의 예보도 그들의 열기를 식히진 못했다.

그리스전에 비해 2시간30분 늦은 시각에 경기가 열려선지 오전에 광장은 한산했다. 오후 들어 거리 응원의 메카인 서울시청 앞 광장과 새로운 메카로 떠오른 강남의 코엑스 앞 영동대로, 반포지구 플로팅 아일랜드에 인파가 몰리기 시작했다. 서울 상암월드컵 경기장과 대학로에도 서서히 사람들이 들어찼다. 시청역과 삼성역에 지하철이 멈출 때마다 붉은 셔츠를 입은 붉은 점들이 출구로 쏟아져 나왔고 경기 시각이 가까워질수록 광장은 거대한 붉은 색으로 물들어갔다.

드디어 오후 11시(한국시간) 우루과이와의 경기가 시작됐다. 전반 5분 박주영이 찬 프리킥이 골대를 비켜 맞고 골라인 아웃되자 응원단은 아~ 하는 탄식을 쏟아냈다. 3분 뒤 우루과이의 루이스 수아레스가 골을 넣자 광장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적막이 흘렀다. 다시 한번의 기회가 왔다. 박주영의 중거리 슛이 골대를 향했으나 이마저 아슬아슬하게 벗어났다. 골 가뭄에 시달리던 태극전사들은 후반 23분 이청용의 헤딩슛으로 드디어 골 맛을 봤다. 전국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광장이 떠나갈 듯했다. 하지만 35분 수아레스에게 다시 골을 허용했다. 이후 속절없이 시간이 흘렀고 빗속 혈투는 결국 우루과이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회사원 차민수(43)씨는 졌지만 잘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서울광장 6만5000명, 영동대로 12만 명, 플로팅 아일랜드 주변 13만7000명 등 서울 지역 50만 명을 포함, 전국적으로 100여만 명이 거리 응원에 참여한 것으로 추산했다,
 
천당과 지옥 오간 90분
“골, 골, 골….”
한 골을 허용한뒤 태극전사가 골을 몰고 우루과이 진영 쪽으로 갈 때마다 거리응원단은 간절하게 골을 외쳐댔다.
우리 팀이 찬 골이 골대를 벗어나자 “뭐야 저거. 나로호야?”라고 실망하는 소리도 들렸다.

회사원 이승재(31)씨는 “우리가 1-0으로 뒤지고 있지만 아르헨티나전과는 분위기가 달라 충분히 역전할 수 있다고 본다”며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반포지구 플로팅 아일랜드에서 응원을 하던 대학생 류정민(20)씨는 “어, 어, 어, 아, 먹은 거야”라고 외치다가 골이 들어가자 1~2분간 말을 잇지 못했다. 가끔 골 찬스가 이어질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를 지르는 게 이어졌다.

후반 23분 골이 터지자 전국의 광장이 들썩거렸다. 모조리 일어나 펄쩍펄쩍 뛰며 환호성을 질렀다. 여고생 현수현(17)씨는 “골을 넣은 순간 남아공으로 날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했다. 트럼펫을 들고 나온 음대생 이희태(22)씨는 골이 들어가자 아리랑을 목청껏 연주했다.

“우루과이가 울고 가라고 목이 터져라 한국 팀을 응원했다. 맘껏 응원했으니 지더라도 한은 없다.”

서울광장에 처음 나왔다는 재미동포 세라(21·여)는 승부에 관계없이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과 함께 축구 경기를 보는 것이 너무 재미있고 신난다고 했다. 세라는 미국의 명문대인 프린스턴대 재학생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이화여대가 개설한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 6주간 일정으로 한국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세라는 아르헨티나전은 엄마와 같이 분당의 이모 집에서 봤다고 했다. 같은 대학에 다니는 13명의 다국적 친구들과 돗자리를 갖고 나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열띤 응원을 벌였다. 옆에 있던 친구 티파니 황(20)은 “월드컵 짱이다. 신난다. 미국에서는 다들 집에서 축구를 보는데 너무 다르다”며 신기해 했다.

이날 서울광장에는 오후 1~2시쯤부터 응원객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피크닉을 나온 듯 일찌감치 돗자리를 펴고 자리를 잡았다. 오후 6시 광장 잔디밭은 이미 인파로 가득 찼고 9시쯤에는 플라자호텔 앞 차도까지 들어갈 틈이 없었다. 9시15분, 광화문 네거리에서 덕수궁 앞까지 태평로의 교통이 완전 통제되자 차도 위에도 응원객들이 자리 잡았다. 이후 잠시 빗줄기가 쏟아지자 우비를 꺼내 입거나 우산을 펴기도 했다. 자리를 뜨는 사람은 없었다.

월드컵 응원의 새로운 메카로 떠오른 강남 영동대로에는 13만7000명이 운집했다.
봉은사 사거리 쪽에 설치된 스크린 앞쪽은 오후 1시에 이미 2000여 석의 자리가 다 찼다. 혼잡에 대비해 주최 측에서 통제를 위해 손목에 별 도장을 찍어주고 입장시켰다. 별 도장을 받고 앞자리에 앉아있던 주부 최은숙(45)씨는 “나이지리아전을 빼고는 전부 길거리 응원에 참여했다”고 했다. 이날은 남편, 5살짜리 아들과 함께 나왔다. 최씨는 “아들은 이 시끄러운 곳에서 축구를 보다가 잠들곤 하지만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데리고 나왔다”고 말했다. 이런 것이 모여 추억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분당 대원고 3학년 강기훈군은 친구 11명과 함께 거리에 나왔다. 기말고사 중이라 공부할 거 다하고 나왔다고 하더니 금세 “시험 잘 못보면 재수하면 되죠!”라고 웃었다. 강군은 “우리나라가 16강 가면 머리 깎는다고 친구와 내기를 했는데 내가 져서 오늘 삭발하고 왔다”고 말하면서도 즐거워했다. 그는 민머리에 ‘8강’이라고 쓰고 나왔다. 그는 “8강 가면 눈썹 밀 거다. 밀어도 8강 가면 기분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16강때 머리 밀고 8강때 눈썹 밀려 했는데”
이날 광장에는 외국인이 유난히 많았다. 미국·영국·캐나다·일본·중국·태국·그리스·인도 등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곳곳에 보였다. 2010년 대한민국의 광장은 축구를 매개로 한 축제의 장, 화합의 장이 돼 있는 듯했다. 인도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근무하는 인도인 모히트는 본사 방문차 한국에 온 동료 18명과 함께 서울광장을 찾았다. 그는 “월드컵 열기를 느껴보고 싶어서 왔다”며 “여기서 경기를 끝까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생활 1년 7개월째라는 그리스에서 온 자니(30)는 한국 대 그리스전을 포함해 3번째 거리 응원에 나왔다고 했다. “어느 팀에 행운의 여신이 손짓할지 모르지만 한국이 이겨서 8강에 오르길 바란다”고 했다. 한국에서 영어 강사로 일한다는 캐나다인 나탈리(23·여)는 동료 5~6명과 함께 나왔다. 나탈리는 “거의 매 경기마다 거리에 나와 응원했는데 너무 신나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미국인 영어 강사 바이런(27)은 이청용 선수의 얼굴이 그려진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그는 신이 나서 ‘러브 코리아, 지성 팍 오섬, 정수 리 판타스틱, 에브리바디 패셔네이티드’ 등 영어로 우리 선수들과 한국에 대한 찬사를 연발했다.
 
트위터로도 경기상황 생중계
이날 경기는 트위터를 통해서도 생중계되다시피 했다. 분당 100개가 넘는 경기 관련 글이 올라왔다. 특히 한국 선수들이 결정적 기회를 잡았을 때나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는 안타까워하는 글이 쇄도했다. 전반 5분 박주영 선수가 프리킥으로 찬 공이 골대를 맞고 나오고 나서 “아깝다”는 내용의 글이 1분에 수백 개씩 올라왔다. 8분 우루과이의 수아레스가 골을 넣자 실점을 안타까워하는 글이 올라왔다. 인터넷 이용자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차두리 선수에 대해서는 역시 ‘차두리 로봇설’이 패러디됐다. 차 선수가 골을 향해 뛰어가는 장면에서는 “차두리 에너지 풀차징(@swseo42)” “오늘 차범근 박사 두리 차에 엔진오일 좋은 거 넣어준 듯(@ChoicesTime)” 등의 글이 올라왔다. 또 “차두리 오버래핑 조종이 늦었네. 차 감독 단축키를 쓰세요(@parkcs19)” “차두리가 아까 침투 패스를 제대로 받지 못한 건 차범근이 w를 안 눌러서 그런거래요(@withjomang)” 등 차범근 해설위원의 ‘차두리 조종설’도 네티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심판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심판 귀에다 부부젤라로 플래시백을 불어주고 싶네요(@Centrist_ryo)”라며 한국 팀에 불공정한 심판의 판정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CNN·BBC 등 주요 외신들도 한국과 우루과이 경기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도했다. CNN은 전반 8분 우루과이의 선취 득점과 후반 68분 한국의 동점골이 터지자 정규방송 도중 화면 아래 긴급 뉴스 자막을 내보냈다. CNN은 “우루과이의 루이스 수아레스가 전반 8분 선취골을 넣어 한국에 1-0으로 리드하고 있다”고 속보로 전한 데 이어 후반 동점 상황 직후 “한국의 이청용이 68분 동점골을 넣었다”고 전했다. BBC방송도 웹사이트에서 실시간 문자 중계로 한국과 우루과이의 16강전 소식을 보도했다. BBC는 문자 생중계 코너에 한국의 경기 모습을 찍은 사진도 함께 올렸다. 일본 언론도 29일 일본 대표팀의 16강전을 앞두고 이날 한국의 경기에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NHK는 한국 대 우루과이전을 일본 전역에 생중계했고, 교도통신은 시시각각 변하는 경기 상황을 실시간 속보로 전했다. 야후 재팬도 실시간으로 문자중계를 하면서 한국이 분투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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