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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 6·25전쟁 ④] 씻기도 갈아입기도 어려운 피란살이, DDT로 견디다

 
  피란민들에게 DDT를 살포하는 유엔군. DDT 살포기가 이미 머리카락에 세례를 받은 남자의 바지춤에 들어가 있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소년은 DDT가 해로울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듯, 심드렁한 표정이다. [사진 제공=서울대학교병원 의학박물관]
 
전쟁은 세상을 뒤집어버린다. 나무뿌리가 뽑히고 구릉이 깎여나가며 건물이 무너져 내릴 뿐 아니라 세상을 유지하던 가치 자체가 뒤집힌다. 전시(戰時)에는 비상(非常)이 일상(日常)이 되며 몰상식이 상식이 된다. 평시라면 살인·절도·방화·사기죄에 해당할 행위들이, 적(敵)에 대해서는 영웅적인 행동이 된다. 적을 사살하고 적의 보급품을 훔치고 적의 시설물에 방화하고 적을 속이는 일들은 모두 훈장감이다. 그런데 피아(彼我)가 명백히 구분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애꿎은 양민이 피해를 보기도 한다.

전쟁은 가치뿐 아니라 물질도 종속시킨다. 무엇이든 군인에게 보급하고 난 뒤에야 민간인 몫이 남는다. 값이 떨어지는 것은 돈과 사람뿐, 생필품조차 태부족하니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하는 것조차 사치가 된다. 이런 와중에 얻는 ‘공짜’ 물건은 그야말로 엄청난 행운이다.

“비행기가 큰 상자 하나를 떨구고 갔는데, 열어 보니 통조림 깡통하고 이것저것 먹을 것이 들어있었지. 그중에 봉지에 든 까만 가루가 있었는데, 먹어 보니 쓰더란 말이야. 아, 이것 틀림없이 약이로구나. 그래서 배가 아프거나 열이 나면 한 움큼씩 털어 넣었지.” 한국전쟁 중 분쇄 커피를 처음 접한 촌부(村婦)의 회고다. ‘미제 공짜약’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는 약에 일반적으로 따라붙는 효능이니 용법이니 용도니 하는 전제들을 그냥 무시할 수 있게 해주었다.

‘검은 가루약’은 아주 운 좋은 사람이나 얻을 수 있었지만, ‘흰 가루약’은 누구나 접할 수 있었다. 미군이 남한에 진주할 때 가지고 들어온 DDT는 사람 몸에 기생하는 해충을 전멸시키는 ‘기적의 약’이었다. 1946년 2월 위생국 화학연구소에서 DDT 자체 생산에 성공했을 때, 국내 모든 언론은 ‘세계적인 연구의 완성’이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1945년 11월에 이미 미군정 당국자는 “DDT는 인체에 유해하나 아직은 가장 효과적인 살충제다. 한국인들은 잘 씻지 않고 옷도 자주 갈아입지 않으니 적어도 열흘에 한 번은 DDT를 살포해야 한다”고 기록했다.

전쟁 중 피란민들은 검문소를 지날 때마다 DDT 가루를 뒤집어썼다. 군사적 관점에서 그들은 사람이기 이전에 전염병을 확산시킬 우려가 있는 ‘숙주’들이었다. 피란민들도 굳이 마다할 이유를 알지 못했으니 전쟁 중 DDT 세례를 받지 않은 한국인은 거의 없었다. DDT는 1970년대부터 농약으로도 사용하지 않게 되었으나, 생태계에는 잔류해 있다. 미량의 유해물질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요즘 사람들이지만,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멀지 않은 곳에 전쟁이 남긴 유해성분들이 널려 있다는 사실은 잊고 사는 듯하다.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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