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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생중계 패착 …‘김정일 승부수’ 물거품

북한이 월드컵 핵폭탄을 맞았다. 21일 열린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 두 번째 경기에서 포르투갈에 7-0으로 참패당하는 충격적 상황을 맞은 것이다. 44년 만의 본선 진출을 김정일 체제 결속과 화폐개혁 실패로 뒤숭숭한 민심 추스르기에 활용하려던 꿈도 물거품이 됐다. 유호근 스포츠정치외교연구회장(한국외대 연구교수)은 22일 “정통성이 부족한 정권일수록 국가위상 제고와 국민통합에 스포츠를 활용하게 된다”며 “예상치 못한 결과에 북한 지도부가 엄청나게 당혹스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골키퍼 이명국이 21일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후반 15분 티아고의 네 번째 골이 터진 뒤 그라운드에 엎드려 있다. [AP=연합뉴스]
북한은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포르투갈전을 생중계했다. 남아공과 멕시코의 개막전 등은 하루 정도 시차를 두고 녹화중계했다. TV 생중계를 결심한 배경은 알 수 없지만 주민들이 자존심이 상할 정도의 패배를 안방 TV로 생생히 지켜보는 상황을 만들었다. 점수 차이가 벌어지자 TV 해설자가 말을 잃어 버리고 종료 휘슬이 울리자 서둘러 중계를 마치는 등 충격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했다.

정부 당국자는 “세계 최강 브라질과의 선전에 자신감을 얻은 북한 권력층이 포르투갈전 생중계라는 패착을 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남한에서 북한 선수 정대세가 스타플레이어로 회자되고 서울 한복판에서 일부 단체가 북한을 응원하고 나서는 분위기도 북한이 무리수를 두게 작용했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21일 저녁 ‘진실을 알리는 시민들’ 등의 단체는 서울 봉은사에 대형 TV를 설치하고 한반도기를 흔들며 북한-포르투갈전을 응원했다.

북한 축구대표팀 골키퍼 이명국의 가족과 친척들이 21일 평양 이명국의 집에서 포르투갈과의 경기를 시청하고 있다. 북한이 0-7로 대패했다. [AP=연합뉴스]
측근 간부들과 경기를 지켜봤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중계 승부수를 띄웠던 노동당의 선전·선동 라인과 축구 관계자들에 대해 책임추궁을 할 것이란 관측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각별한 관심을 쏟았던 월드컵이 엉망이 됐다는 점에서다. 지난해 6월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따내 귀국한 북한 선수단을 김 위원장은 평양 순안공항에서 대대적으로 환영토록 했다. 또 김정훈 감독 등 16명에게 평생 연금이 나오는 ‘인민체육인’ 칭호를 수여했다. 외화부족 속에서도 선수단을 지난해 10월부터 프랑스·터키·스위스 등지에서 전지훈련하도록 배려했다. 조선중앙통신은 19일 김정일이 평안북도에 신설된 축구경기장을 현지지도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미 ABC 방송 인터뷰에서 ‘매 경기 김정일 지도자로부터 직접 전술 조언을 듣는다’고 한 김정훈 감독의 선전은 이번 패전으로 김정일의 스타일을 구겨버리는 모양새가 됐다.

김정일 후계체제와 관련시켜 보는 시각도 있다. 본선에서 예상 밖 선전을 할 경우 이를 김정일 셋째 아들 정은(27)의 공으로 돌려 후계구축을 다지려는 준비작업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북한 선수들이 김정은 찬양가요 ‘발걸음’을 합창한다는 첩보도 관계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이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은 “김정은의 후견인 역할을 하는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과 그의 측근인 박명철 체육상 등이 후계전략 차원에서 생중계 이벤트를 벌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천안함 사태 와중에도 한반도 독점 중계권을 가진 SBS와 화면제공 협상을 시도한 것도 TV 중계가 꼭 필요했기 때문이란 해석이다. 유호근 회장은 “주민들에게 세계 최강팀과 선전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등 사태 수습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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