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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새벽 남침 알린 바로 그 목소리 주인공

“임시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임시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새벽 북한 공산 괴뢰군이 38선 전역에 걸쳐서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

1950년 6월 25일 오전 6시. 전쟁을 알리는 KBS 라디오 방송이 전국에 퍼져 나갔다. 당시 아나운서로서 이 방송을 했던 위진록(82·사진)씨는 아직도 당시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60년이 지났지만 어제 아침의 일처럼 느껴지네요. 오전 4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어요. 정동 방송국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누가 문을 다급하게 두드리더라고요. 국방부에서 온 박 대위라는 사람이 무작정 ‘괴뢰군이 쳐들어 왔으니 방송을 하라’고 하더군요. 당황한 그의 표정과 목소리에서는 뭔가 있구나 생각을 했지만 처음엔 믿을 수가 없었어요.”

후배 아나운서 한 명과 당직을 서던 그는 확인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상관인 민재호 국장대리에게 이를 보고했다. 민씨가 육군본부에 문의한 결과, 북한이 쳐들어와 이미 개성이 함락됐지만 국군이 잘 지키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위씨는 방송 원고를 직접 작성하고 마이크 앞에 앉았다.

“국군이 잘 지키고 있다고 해서 오전 9시까지 당직을 서고는 서울운동장에서 열리는 축구경기를 보러 갔어요. 그런데 도중에 확성기에서 ‘전쟁으로 경기를 중단한다’는 안내가 나왔어요.”

그제서야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직감, 출근을 하지 않고 훗날 영화배우가 된 최무룡씨 등 친구들의 집에서 숨어 지냈다. 고향이 북한(황해도 재령)인데다 평양사범학교를 나온 뒤 45년 월남해서 방송을 하고 있었으니 북한군에게 들키면 바로 총살감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세가 역전됐다는 방송을 반드시 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가졌는데 현실이 됐지요.”

그해 9월 28일 국군이 서울을 탈환하자 마포의 ‘연희송신소’를 찾아가 자청해서 방송을 했다. 방송 뒤 그는 일본에 있던 유엔군사령부로 자리를 옮겼다. 방송을 들은 미군 중령이 미국 방송인 월터 크롱카이트와 목소리가 비슷하다며 일본행을 권했던 것이다.

그 뒤 72년 아이들 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햄버거 가게와 서점을 운영하고 지역신문을 발행하며 살아왔다.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가 주관한 재방한 행사차 22일 서울을 찾았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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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