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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170> 마오쩌둥의 공공외교


▲1960년 6월 중국을 방문한 에드거 스노(Edgar Snow). 당시 중국은 미국인들의 방문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에드거 스노는 예외였다. 국가주석 류샤오치와 대화 나누는 모습을 바라보는 마오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김명호 제공

마오쩌둥은 중국식 공공외교(公共外交)의 창시자였다.
1935년 10월 마오가 인솔하는 중앙홍군이 산시(陝西)성 북쪽 바오안(保安)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국민당은 물샐틈없이 봉쇄했다. “비적들은 소멸됐다. 극히 일부가 서북의 불모지에 들쥐처럼 숨어들었지만 소탕은 시간문제다”라는 기사가 연일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상하이에서 발행되던 영자신문 노스 차이나 데일리 뉴스(North China Daily News:字林西報)가 유일하게 “조잡하고 문화가 없는 비적집단”이라는 조롱과 함께 ‘경이’와 ‘기적’이라는 표현을 썼다. 모두 틀린 말이 아니었다.

홍군은 고사 직전이었다. 2만5000리의 장정으로 기력을 상실한 데다 산베이(陝北)의 빈곤은 상상을 초월했다. 지주 집안엘 가봐도 변변한 살림살이나 양식이 없었다. 남쪽이 고향인 홑옷 차림의 홍군 전사들은 첫해 겨울을 나기조차 힘들었다. 무기와 실탄은 거의 고갈 상태였다. 소련에 원조를 구하기 위해 리셴녠(李先念)과 쉬샹첸(徐向前)을 파견했지만 중도에 국민당 기병대의 공격을 받아 빈손으로 돌아왔다. 장제스의 중앙군은 포위망을 점점 좁혀 들어오고 있었다.

마오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자신과 전우들이 걸어온 길을 후세에 전설로 남기고 당의 기본방침이 “항일 근거지와 통일전선의 구축”이라는 것을 외부에 알리고 싶었다. 중국의 작가나 기자들은 마오의 요구를 들어줄 형편이 못됐다. 비적들을 옹호했다간 귀신도 모르게 행방불명이 되고도 남았다. 유명기자 판창장(范長江)이 찾아 왔을 때도 제대로 된 보도가 나갈 리 없다며 깊은 말을 나누지 않았다.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신문이나 방송도 없었지만 마오는 제3자, 그것도 제 발로 바오안까지 걸어 들어온 외국인 기자를 통해 홍군의 진면목을 대내외에 알릴 방법을 모색했다.
쑹칭링과 에드거 스노(1939년 홍콩).

마오는 양상쿤(楊尙昆)에게 정치부 산하에 편집위원회를 만들게 하고 사단급 이상의 간부들에게는 ‘홍군 장정기’를 쓰라고 지시했다. 동시에 상하이의 지하조직을 통해 쑹칭링(宋慶齡)에게 “믿을 만한 외국기자와 외국인 의사 한 명이 바오안을 방문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쑹은 항일을 주장하는 공산당에 우호적이었고 아는 외국인이 많았다. 국민당 정보기관도 외국인들은 건드리지 않았다.

쑹칭링은 상하이의 외국인 기자들을 부지런히 만났다. 다들 사교활동에 바빴다. 홍군 얘기를 꺼내면 만나 보기라도 한 것처럼 침들을 튀겼지만 정작 가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쑹은 항일을 주장하는 학생들의 시위를 적극 지지했던 미국 기자 에드거 스노와 외과의사 조지 하템을 접촉했다. 스노는 험상궂은 얼굴에 공산공처(共産共妻)하는 것으로 외부에 알려진 붉은 토비들을 만나 보겠다며 몇 년 전 장시(江西)소비에트 문턱까지 갔다가 쫓겨난 적이 있었다.

1929년 4월 국민정부 교통부장 쑨커(孫科)는 중국의 수려한 풍경을 해외에 알리고 미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공공외교를 편 적이 있었다. 에드거 스노에게 철도여행을 주선했다. 스노는 가는 곳마다 굶어 죽은 시체들을 목도했다. 풍광 따위는 볼 겨를도 없었다. 4년간 비가 내리지 않아 500여만 명이 굶어 죽었다는 소문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가 직접 겪어본 중국인들은 미국 지식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우매하고 낙후한 민족이 아니었다. 중국인의 재앙을 외면하며 모험이나 즐기고 돈벌이에만 급급한 중국에 와있는 미국인들의 행태가 형편 없었다. 이들을 비판하는 글을 연일 발표했다. 문장이 신랄했다. “백인들의 반도”라며 공격을 한 몸에 받았다. 귀국할 생각까지 했지만 맘에 드는 여성을 만나는 바람에 그냥 눌러 앉아있었다.

쑹칭링의 제안을 받은 스노는 직접 예방주사를 놓고 암시장에 나가 브라우닝 권총을 구입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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