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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SK에너지, 차·포 떼내는 까닭은

“이대로 가다간 내 자리 지키기도 힘들다.”

구자영(62·사진) SK에너지 사장이 18일 대전의 이 회사 기술원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SK에너지는 에너지 관련 국내 1위 기업이다. 1등 회사가 ‘위기’를 거론할 때는 엄살인 경우가 많다. 해당 분야의 사업 환경이 나빠지면 덩치가 작은 곳부터 버티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구 사장의 말은 단순한 엄살로 넘기기 어렵다. SK에너지는 내년 1월 정유·화학 사업을 각각 100% 자회사 형태로 떼어낸다. 윤활유 사업은 지난해 10월 이미 분사했다. 분할 절차가 끝나면 기존 SK에너지에는 자원·기술개발 기능만 남는다. 이 회사는 지난해 35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구 사장 스스로 “공룡 기업”이라고 표현한 회사를 사업부문별로 쪼개는 것이다.

에너지 산업은 ▶원유를 뽑아올려(석유개발) ▶이를 정제해 휘발유·경유 등을 생산하고(정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나프타로 석유화학 제품(화학)을 만드는 구조다. SK에너지는 이들 사업을 다 한다. 다른 회사보다 포트폴리오가 좋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유다. 그런데 이를 제각각 갈라놓겠다고 나선 것이다.

SK에너지는 국내에선 업계 1위이지만 세계적으론 74위다. 세계 메이저 업체와 규모 경쟁을 벌일 수준이 못 된다. 여기에다 기존엔 원유만 팔던 중동 산유국이 앞다퉈 정유·화학 공장을 짓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중국·인도·베트남 등 그간 만들어진 석유·화학 제품을 사다 쓰던 국가도 직접 생산을 하겠다고 나섰다. SK에너지의 수출 비중은 50%가 넘는다. 각국이 녹색성장을 강조하면서 석유 의존형 사업구조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진 것도 부담이다.


SK에너지는 신기술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광학필름, 이산화탄소로 만드는 친환경 플라스틱, 청정 석탄 등의 기술을 개발해 상업화에 나서고 있다. 구 사장은 “하이브리드차용 배터리는 경쟁사보다 늦었지만, 전기차는 그렇지 않다”며 “한국·미국·유럽 자동차 업체와 접촉 중”이라고 말했다. 청정 석탄에 대해선 “두 달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설비 기술을 가진 남아공 업체 사솔과 설비 계약을 하기로 했다”고 했다.

문제는 속도다. SK에너지는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움직임이 둔했다. 회사 관계자는 “그간 투자 재원을 분배할 때 정유·화학·자원개발 등에 골고루 배분하다 보니 집중 투자가 잘 안 됐다”고 말했다. 투자를 위한 자금 사정도 썩 좋다고 하긴 어렵다. 1분기 말 기준으로 SK에너지의 부채는 15조원에 가깝다. 부채비율을 단순 계산하면 150%가 넘는다. 운전자금을 빼고 따져도 6조원 가까운 부채가 있다. 빚 내서 투자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대전 SK에너지 기술원에서 한 연구원이 자동차용 중대형 2차전지 제품을 시험하고 있다. SK에너지는 18일 생산라인을 언론에 처음 공개했다. [SK에너지 제공]
정유·화학 사업을 분사하면 SK에너지가 100%의 지분을 갖게 된다. 하지만 경영권 유지를 위해선 지분을 다 갖고 있을 필요가 없다. 일부를 매각해 투자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지분을 팔지 않더라도 덩치가 줄면 합작 파트너를 찾기 쉬워진다. 회사 관계자는 “앞으로 5년간 현상 유지를 위해 필요한 투자가 2조~3조원이라면 성장동력 마련을 위해 필요한 투자는 10조원대”라며 “이 중 2조~3조원은 외부 투자로 조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분사한 SK루브리컨츠는 최근 스페인의 다국적 에너지 기업인 렙솔과 함께 스페인에 고급 윤활기유(윤활유의 기초 재료)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구 사장은 “아시아 기업 한 곳과 합작하는 방안도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며 “그 회사가 8000억원을 대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업계의 평가는 아직 갈린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분사를 한다고 당장 눈에 띄는 성과가 나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다른 정유사 관계자는 “시장 환경이 급속히 바뀌고 있는데 1위 기업이 대대적 변화에 나선 것은 평가 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대전=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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