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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절집 찾아 걷는 길 신과 인간이 하나 되는 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과 한국 제주도 올레길은 자기 성찰을 위한 도보의 명상지로 이름난 곳이다. 소설가 서영은씨는 산티아고에 다녀온 뒤 낸 순례기에서 “걷는다는 것은 움직이는 세상을 움직이며 느낀다는 것”이라고 썼다. ‘길과 숲과 낙엽과 바람이 성당(聖堂)’이며 ‘걷기는 자연과 대지의 신비를 탐색하는 모노드라마’라 했다. 고향인 제주도에 올레길을 개척한 서명숙씨는 ‘놀멍 쉬멍 걸으멍(놀며 쉬며 걸으며)’ 느릿느릿 뚜벅뚜벅 자기만의 길을 내자고 제안했다.

최근 들어 이런 순례길을 국내외 여러 곳에서 발견하고 즐기는 모임이 늘고 있다. 자기 발견과 수련이란 기본 목적에다 문화유산 답사를 겸해 관심 분야의 안목을 넓히는 새로운 순례길이다. (재)아름지기(이사장 신연균)가 마련한 ‘2010 세계문화유산 답사’도 이런 흐름을 잘 보여준다. 사찰 음식을 연구하며 한식 세계화의 방법을 찾고 있는 아름지기는 올해 일본 와카야마 지역에 있는 고야산(高野山)을 찾아 순례, 문화, 사찰음식 세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았다.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일본 와카야마 현의 고야산 일대가 최근 현대인을 위한 명상의 길로 떠오르며 순례객들의 발길 또한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고야산의 중심 절인 ‘곤고부지’ 안에 있는 ‘가레산스이’. 일본식 분재 개념을 살린 명상의 정원이다.
일본 교토의 남쪽에 자리한 고야산은 예로부터 신들이 사는 신성한 지역으로 숭배됐던 땅이다. 숲 속에 들면 신령한 기운이 사람들을 저절로 참회하게 만든다. 수백 개 절과 순례길이 전해져 온다.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뒤 ‘신과 인간이 만나는 참배길’로 이름났다.

또 고야산은 여느 소도시와 같은 고즈넉한 민가 마을에 참배객을 위한 절 겸 숙소가 늘어서 있어 일반인과 함께 호흡하며 언제라도 쉽게 참배할 수 있는 장점을 지녔다. 따로 깊은 산을 찾지 않고도 ‘템플 스테이’가 가능한 셈이다. 스님들이 만들고 차려주는 일종의 채식 요리인 사찰 음식 ‘쇼진(精進) 요리’를 먹는 체험도 이채롭다. ‘쇼진’이란 불교에서 도를 닦을 때 잡념을 버리고 일심으로 정신수양을 한다는 뜻으로 심신을 맑게 하는 자연식이다. 한국 사찰음식과 목적이나 재료는 비슷하지만 일본 음식 특유의 색감과 맛이 가미돼있다.

고야산 중심에 서있는 곤고부지(金剛峯寺)는 고야산 진언종의 총본산. 절 안쪽에는 명상을 위한 정원 ‘가레산스이’가 사람들 눈을 절로 맑게 한다. 가레산스이는 돌이나 흰 모래 만으로 산과 계곡 느낌을 표현한 일본식 정원으로 대자연의 웅장한 맛을 일본 특유의 분재 형식으로 축소해 찬탄을 자아낸다.

또 하나 고야산을 찾은 순례객을 이끄는 곳이 ‘오쿠노인’이다. 우리 식으로 치면 숲 속에 차린 대규모 공원묘지다. 삶과 죽음이 한 곳에 머문 듯 묘비들이 줄지어선 길을 따라 걸어가노라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절을 나서 산길로 접어들면 천 년 전 도(道)를 묻기 위해 먼 길을 떠났던 수도승들이 걸어서 낸 길이 나타난다. 하늘이 안 보일 만큼 우람한 나무가 쭉쭉 뻗은 ‘구마노(熊野) 옛길’이다. 초록을 띤 회색빛 나무들이 어둑한 그늘을 만든 그 길 위에 서면 누구나 입을 닫고 저절로 손을 모으게 된다. 고요한 마음속으로 울창한 숲이 묻는 소리가 울린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시오?’

와카야마 현(일본)=글·사진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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