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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114> 선거 예측 조사

6·2 지방선거가 한나라당의 참패로 끝났습니다. 한나라당의 낙승을 예고해온 여론조사와는 천양지차였습니다. 반면 오후 6시 투표 마감과 동시에 발표된 지방파 방송 3사의 선거 예측 조사(출구조사)는 귀신같이 정확했습니다. 당선자뿐 아니라 득표율까지도 선거 결과와 거의 일치했습니다. 그러면 선거 예측 조사가 늘 맞았을까요?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선거 예측 조사의 ‘이력서’를 만들어 봤습니다.

허진 기자

지방선거일인 2일 오전 서울 청파동 제5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여성 유권자가 방송 3사의 출구조사에 응하고 있다. 이번 출구조사는 전국 607개 투표소에서 15만5918명이 참여했다. [연합뉴스]
1987년 대선 때 첫 예측 조사, 노태우 승리 적중

우리나라 최초의 선거 예측 조사는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때 실시됐다. 당시 한국갤럽조사연구소는 12월 16일 오후 6시 투표가 종료되자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34.4%를 득표해 승리할 것’이란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실제 득표율 36.6%와는 2.2%포인트의 오차가 있었지만 노 후보의 승리를 점친 예측은 적중했다. 28.0%를 얻어 2위를 차지한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28.7% 예측), 27.1%의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28.0% 예측), 8.1%의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후보(8.4% 예측)의 경우도 예측 조사와 실제 결과 간 오차가 1%포인트를 넘지 않았다. 일본의 NHK 방송은 1시간 뒤인 오후 7시 갤럽의 조사 결과를 인용해 보도했다. 하지만 정작 국내 방송사들은 선거법 위반 사항이어서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역사적인 국내 첫 선거 예측 결과가 정작 국내 언론을 통해선 소개되지 않은 셈이다.

조사결과 언론에 첫 공개한 건 1995년 지방선거

선거 예측 조사 결과가 처음으로 발표된 건 1995년 제1회 지방선거다.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을 사상 처음으로 동시에 뽑은 6·27 지방선거에서 MBC는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를 오후 6시 투표 마감 직후에 보도했다. 서울시장에 민주당 조순 후보가 당선된 것을 비롯해 전국 15개 광역단체장(당시 울산은 광역시가 아니었다) 가운데 민자당이 5곳, 민주당과 자민련이 각각 4곳, 무소속이 2곳을 차지할 것이란 예측이었다. 이는 선거 결과와 일치했다. 당시 예측 조사의 정확성에 국민들과 각 정당 관계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조사는 곧 위법성 논란을 낳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투표 마감 전에 실시한 전화 조사가 투표의 비밀을 보장한 ‘공직선거법 및 선거부정방지법’(지금의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며 MBC 측에 경고를 보냈기 때문이다. 당시 선거법 167조는 ‘선거인은 투표한 후보자의 성명이나 정당명을 누구에게도, 또한 어떠한 경우에도 진술할 의무가 없으며, 누구든지 선거일의 투표 마감 시각까지 이를 질문하거나 그 진술을 요구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MBC 측은 “선거법 167조는 비밀선거의 정신을 적극 반영하기 위한 조항으로 여론조사 자체를 금지한 것은 아니다”며 “시청자가 궁금해하는 투표 결과 예측을 최대한 빨리 보도한다는 선거방송 본연의 사명에 충실한 것”이라고 맞섰다. 하지만 선관위는 “출구조사의 필요가 있다면 국회에서 입법으로 해결할 문제”라며 공을 정치권으로 넘겼다. 국회는 그로부터 6개월 뒤인 12월 19일 대통령 선거를 제외한 선거에 한해 투표소로부터 500m 밖에선 선거 예측 조사가 가능하도록 선거법을 개정했다. 대선에서의 예측 조사는 2000년 2월 8일 선거법 개정으로 비로소 가능해졌고, 이때 거리 제한 규정도 300m로 줄었다.

방송 3사 공동 조사했지만 망신 당한 15대 총선

96년 제15대 국회의원 총선에서는 KBS·MBC·SBS가 공동으로 발표한 당선자 예측 결과를 두고 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가 긴급회의를 열어 “예측 방송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한 일도 있었다.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92년 대선에서 김영삼(YS) 전 대통령에게 패해 정계를 은퇴했다가 번복한 뒤 창당한 국민회의는 당초 100석 이상을 목표로 했다. 전체 299석 중 3분의 1 이상을 얻어 YS의 대선자금 청문회를 여는 등 집권 세력을 견제해 차기 대권 도전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방송 3사 예측 조사에서 목표에 한참 모자란 72석으로 나오자 패닉 상태에 빠졌던 것이다.

그러나 15대 총선의 예측은 크게 빗나갔다. 과반수를 훌쩍 넘는 175석을 얻을 것이라던 신한국당은 139석을 얻는 데 그쳤다. 반면 국민회의는 예측보다 7석을 더 얻어 79석을 차지했고, 자민련은 예측 26석을 크게 웃도는 41석을 얻었다. 이 때문에 당시 개표 방송을 지켜보던 신한국당 당직자는 “방송에서 김만 빼지 않았다면 완전히 축제 분위기가 됐을 텐데 좋은 성적을 받고도 왠지 씁쓰레하다”고 섣부른 출구조사 방송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돌아보면 선거 예측 조사의 정확도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특히 국회의원 총선 예측 조사에선 ‘여당 편향’이 심했다. 2000년 16대 총선 당시 여당인 민주당은 KBS와 SBS가 미디어리서치 등에 의뢰한 조사에서 132석, MBC가 갤럽에 의뢰한 조사에서 127석을 얻어 제1당이 될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실제 결과에서 민주당은 115석 밖에 얻지 못해 133석을 차지한 한나라당에 밀려 제2당에 머물렀다.

조사 대상 늘리고 익명성 보장하니 ‘족집게’로

예측 실패가 거듭되자 2004년 17대 총선부터는 조사 결과의 공표 방식이 바뀌었다. 일정한 숫자를 확정하던 방식에서 범위를 제시하는 방법으로 한 발 물러선 것이다. 17대 총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MBC 조사에선 155~171석, SBS 조사에선 157~182석을 얻을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152석을 얻어 예측에 미치지 못했다. KBS는 열린우리당의 의석을 142~188석으로 예측해 틀리진 않았지만 최소·최대 의석 차가 46석이나 돼 조사가 정확했다고 보긴 힘들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도 예측은 어김없이 빗나갔다. 여당인 한나라당의 의석 수를 각 방송사는 155~178석(KBS), 154~178석(MBC), 162~181석(SBS), 160~184석(YTN)으로 예측했지만 한나라당은 153석을 얻어 모두 틀렸다.

이처럼 부정확했던 예측 결과가 6·2 지방선거에서 매우 정확해진 건 표본이 늘고 조사방법을 보다 치밀하게 짰기 때문이라고 한다. 18대 총선에서 각 방송사의 의뢰를 받은 조사기관은 주로 전화조사 방법을 사용했고, 일부 경합지역에만 출구조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선 지상파 3사가 힘을 합치면서 미디어리서치 등 3곳의 조사기간에 의뢰해 조사대상을 대폭 늘렸다. 전국 600여 곳의 투표소에서 무려 15만 여명을 출구조사했다. 조사방식도 최대한 ‘익명성’을 보장했다. 질문지를 조사원에게 건네는 방식 대신 응답자가 직접 질문지를 작성하고 투표함에 넣도록 하는 ‘밸럿 메서드(Ballot Method)’를 사용했다. 이 때문에 유권자의 표심을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시차 4시간’ 미국의 골칫덩이 예측 조사

미국에선 선거 예측 조사가 골칫덩이가 되곤 한다. 국토가 넓은 미국에선 알래스카와 뉴욕의 시차가 4시간이나 된다. 이러한 시차 때문에 시간이 빠른 동부에서 선거 예측 조사 결과를 너무 일찍 발표하면 아직 투표가 진행되고 있는 서부의 투표 행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과 민주당의 지미 카터가 맞붙은 1980년 대선이다. 미국 NBC방송은 레이건의 승리로 보인다는 출구조사 결과를 동부시간으로 오후 8시15분에 발표했다. 문제는 이때가 서부시간으론 오후 5시15분으로 투표 마감까지는 3시간 가까이 남았다는 점이다. NBC의 보도가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카터는 선거 패배를 인정하는 연설문을 발표했다. 카터의 때 이른 패배 인정은 아직 투표장에 나가지 않은 유권자의 발을 집에 묶어두는 효과를 강화했다. 전문가들은 투표가 끝나기도 전에 발표된 출구조사와 카터의 연설 때문에 캘리포니아의 투표율이 2% 정도 하락한 것으로 분석했다. 그뿐만 아니라 사표(死票)를 기피하는 심리 때문에 투표장의 유권자들도 레이건에게 더 많은 표를 던지는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공화당의 조지 W 부시와 민주당의 앨 고어가 대접전을 벌였던 2000년 대선에서도 시차를 무시한 선거 예측 결과 발표는 투표에 혼선을 초래했다.

플로리다의 동부 지역에서 투표를 마감한 오후 7시는 캘리포니아의 서부에서 투표가 한창 진행 중이었을 때다. 미국 주요 언론사의 관계자들이 이를 모를 리 없었지만 예측 결과는 플로리다의 투표 마감 직후에 발표됐다. 문제의 심각성은 단순히 일찍 발표만 한 게 아니라 예측이 틀렸다는 데 있었다. CNN과 ABC, CBS 등은 처음에 고어가 플로리다에서 이길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오후 10시가 되자 이들 방송사는 “플로리다의 판세가 불투명하다”고 정정했다. 결국 예측과 달리 부시는 플로리다에서 이겼고, 선거인단 25명은 부시의 표가 됐다. 부시의 선거캠프에서 전략을 담당한 칼 로브는 “플로리다에서 출구조사가 발표될 때 서부 지역은 여전히 투표가 계속 중이었고, 이 지역은 부시의 우세지역”이라고 말했다. 플로리다에 대한 잘못된 예측이 캘리포니아에서 부시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불만이었다. 재선을 노리는 부시와 민주당의 존 케리가 맞붙은 2004년 대선에선 출구조사 결과가 투표 당일 오후 1시부터 인터넷을 통해 유출되는 사고까지 발생해 논란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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