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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1·4 후퇴로 서울 내준 미군, 한반도 포기하려 했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남도현 지음

플래닛미디어

412쪽, 1만9800원




60년 전 6·25전쟁 때 우리 국군은 전력이 그리도 형편 없었을까. 북한군이 앞세운 소련제 T-34 전차에 전혀 맥을 못 췄다는 게 사실일까. 인터넷의 인기 군사저술가인 지은이는 전쟁·군사 분야에 대한 상세한 연구를 바탕으로 쓴 6·25에 대한 12편의 숨은 이야기를 캐냈다. ‘6·25전쟁유사(遺事)’를 자처하는 까닭이다.



지은이는 미군도 처음엔 어쩌지 못했던 T-34 전차를 국군 선배들은 수류탄·화염병·박격포탄으로 육탄공격해 저지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문산·동두천·포천·의정부·수유리·춘천 등에서 목숨을 바쳐 적 기갑부대를 막아선 국군의 용맹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특히 국군 1사단과 6사단에 주목한다. 개전 초기 백선엽 장군이 맡았던 1사단은 서부전선 지연전, 낙동강 전선의 다부동 전투, 평양 첫 입성, 서울 재탈환 등 굵직한 전과를 남겼다. 6사단은 성공과 좌절, 그리고 재기의 드라마를 만들었다. 개전 당시 춘천·홍천에 주둔했던 이 부대는 군의관까지 포 사격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철저한 훈련으로 전쟁에 대비했다.



한국전쟁 당시 초산에 진격한 국군 제6사단 7연대 사병이 수통에 압록강 물을 담고 있다. 중공군의 참전을 예상 못한 당시까지만 해도 통일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중앙포토]
이를 바탕으로 개전 초 이 지역을 침공했던 북한군 2군단을 처절하게 녹였다(크게 당했다는 당시 군인들의 표현). 사상자가 아군은 400여 명인 데 비해 북한군은 6700여 명이나 됐다. 이로써 서울을 점령한 적의 발목을 사흘이나 잡아 전쟁의 흐름을 온통 뒤바꾸어 놓았다.



6사단은 1950년 10월26일 국경도시 초산에서 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았다. 하지만 그 직후 중공군에 포위돼 병력의 절반을 잃고 간신히 후퇴했다. 51년 4월 사창리 전투에선 전력의 40%를 잃는 대패를 당해 해체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그해 5월 용문산 전투에서 8000여 병력으로 2만5000여 명의 중공군 제63군을 궤멸시켜 명예를 회복했다. 사살한 적이 1만7000명을 넘었다. 살수대첩에 비견되는 ‘파로호 대첩’이다. 유엔군사령부도 처음엔 전과보고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중공군을 상대로 미군도 해낸 적이 없는 대승을 거둔 것이다. 이로써 자존심을 완전히 회복했다.



이 책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새로 나온 자료를 바탕으로 보충하고 있다. 특히 1·4 후퇴로 중공군에 서울을 내준 미군이 한 번만 더 패배한다면 한반도를 중국에 내주고 철수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50년 12월 22일 미 합동참모본부의 결정이라고 한다.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다’는 교훈이 생생한 사료다. 6·25전쟁이 기술적으로 끝나지 않은 것은 물론, 그 전쟁에 대한 탐구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역작이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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