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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 미국 '뉴딜정책'이란 무엇인가요

정부가 지난달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일명 '한국형 뉴딜(New Deal)정책'으로 불리는 '종합 투자 계획'을 선보였다. 10조원 규모의 정부 재정과 민간 자본을 들여 내년 하반기부터 경기 파급 효과가 큰 사회간접자본(SOC) 등에 투자한다는 내용이다. 과거 미국의 뉴딜정책 내용과 배경은 무엇인지, 왜 우리의 투자 계획이 한국형 뉴딜정책으로 불리는지 등을 공부한다.

▶대공황과 뉴딜정책=1929년 10월 24일 목요일 미국 뉴욕 주식시장. 주가가 갑자기 폭락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모든 주식이 두세배 이상 오를 정도로 치솟기만 하던 때였다. 이렇게 시작된 '검은 목요일'은 대공황의 신호탄이 돼 10년 동안 세계 경제를 지배한다. 미국의 주가는 이후 33년까지 80%나 곤두박질한다. 주가는 나라 경제의 종합지표인데, 왜 돌변했을까.

전쟁이 끝나자 미국은 전시에 벌어들인 자본으로 돈 버는 데 관심을 쏟았다. 정부의 기업 지원정책에 힘입어 자동차 등 제조업 생산량은 10년간 64%나 늘었다.

그때까지 세계 경제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경제법칙(세이의 법칙)을 신봉해 공장에서 마구 물건을 찍어냈다.

그러나 정작 물건을 소비해야 할 노동자들은 돈이 없었다. 23~29년 기업 이윤은 62% 늘었지만 노동자의 소득은 11% 증가에 그쳤다. 살 사람은 없는데 물건을 쏟아내니 재고가 쌓였다. 시중엔 돈이 넘치고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던 자본가들의 눈에 띈 것이 주식이었다. 자금이 몰리자 주가는 급등했다. 뒤늦게 자극받은 노동자들은 빚을 내면서까지 멋모르고 합류한다. 그러나 20년대 후반부터 재고에 짓눌린 기업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이들 기업에 돈을 떼인 은행들도 줄도산한다.

결국 이 모든 상황이 부메랑이 돼 '검은 목요일'을 불렀다. 그 뒤 미국엔 경제공황이 닥친다. 미국 경제가 휘청거리자 미국에 의존하던 서유럽도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결국 세계 대공황으로 번진다.

공황 여파로 독일은 600만명, 영국은 300만명의 실업자가 생겼다. 농촌에서도 수지가 맞지 않아 곡물을 밭에서 그대로 썩혔다. ▶뉴딜정책의 내용=32년 미국의 국민총생산(GNP)은 대공황이 시작됐던 29년의 절반 수준(56%)으로 떨어지고, 실업자도 1250만명을 넘었다. 당시 루스벨트(재임 1933~45)는 뉴딜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워 제32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뉴딜정책의 핵심은 '일자리 창출→실업 해소→구매력 증대→소비 확대→공장 가동 확대'였다.

루스벨트는 33년 3월부터 경제에 적극 개입해 경기 부양에 나선다. 이는 나라의 간섭이 없어야 경제가 발전한다는 당시의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논리를 뒤집는 일이었다.

가장 먼저 같은해 5월 농산물의 과잉생산을 규제하는 농업조정법을 시행했다. 수급을 조절해 가격 폭락을 막음으로써 농가 수익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농사일을 하지 않는 농민에겐 정부가 보조금을 줬다. 6월엔 제조업의 과잉생산을 차단하기 위해 산업별 최대 생산량을 정한 산업부흥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 따라 테네시강 유역 개발공사 등 대규모 토목공사도 일으켰다. 정부가 나서 일자리를 만들고, 노동자들의 구매력을 늘려 멈춘 공장을 돌리려는 목적이었다.

이 법에선 또 노동자의 단결권과 임금교섭권을 보장하고, 최저임금과 최고 노동시간을 명시했다.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사상 최초의 조치였다.

35년엔 사회보장법을 만들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안전판을 마련했다. 이러한 일련의 정책은 수정자본주의를 탄생시켰다. 수정자본주의는 '경제활동의 일정한 제약, 국가 역할 확대, 노동자의 권익 보호, 사회보장'으로 요약된다. 뉴딜정책을 시행한 지 4년 만에 미국의 GNP는 대공황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고, 600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

이태종 NIE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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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