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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진보, 상생과 소통을 말하다 ④

한국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보수와 진보 모두 민주주의를 소리높여 외치지만 이들은 혹시 서로가 ‘다른 민주주의’를 머리속에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중앙일보와 사회통합위원회가 공동 기획한 연중 토론 ‘보수와 진보, 상생과 소통을 말하다’의 세 번째 주제는 그 문제를 다뤘다. 토론은 지난달 2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진보 진영에선 임혁백 고려대 교수, 보수 진영에선 소설가이자 사회평론가인 복거일씨가 대표로 나왔다.



중앙일보·사회통합위원회 공동 기획
보수와 진보가 외치는 민주주의는 과연 같은 민주주의인가



‘보수-진보, 상생과 소통을 말하다’의 세 번째 토론회가 지난달 2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홍성민 동아대 교수(토론), 임혁백 고려대 교수(발제), 이정복 서울대 명예교수(사회), 소설가 복거일씨(발제), 전삼현 숭실대 교수(토론). [오종택 기자]
이 토론 이후 6·2 지방선거가 있었다. 천안함 후폭풍으로 승리가 예상됐던 보수가 패배했다. 토론과는 별도로 투표 결과에 대해 두 사람의 의견을 물었다. 임혁백 교수는 “6·2 선거의 표심은 어느 한쪽의 일방통행보다 서로 다른 것들 사이의 대화를 요구하는 것이었다”며 “대화와 소통이 바로 민주주의의 조건이자 이상”이라고 말했다. 반면 복거일씨는 “민주주의 하자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지만 서로 다른 것들 사이의 대화 범위를 좀 더 세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반응은 토론때 드러났던 두 사람의 주장을 반복한 것이다. 핵심적인 차이는 “대화상대의 범위를 어떻게 잡느냐”이다. 복씨는 ‘누구와 대화할 것인가’에 중점을 뒀고 임 교수는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에 비중을 뒀다.



◆‘누구와 대화’vs‘어떻게 대화’= 복씨가 대화 상대를 세분하는 이유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인 자유민주주의와 직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복씨가 볼 때, 민주주의 자체를 놓고 크게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 주권이 대다수 국민에게 있는 정치체제를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민주주의를 일종의 형식으로 보는 그에게 더 중요한 것은 자유주의다. 자유가 민주의 내용인 셈이다. 민주주의가 의미가 있는 것은 바로 개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 있다고 복씨는 본다. 그래야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주장이다.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자유와는 동떨어진 체제도 있다. 대표적인게 사회주의다. 복씨가 볼 때 사회주의 혹은 집단주의는 대화의 상대라기 보다는 계몽의 대상이다. 따라서 사회통합을 위해 이념들 사이의 차이를 좁히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도 자유주의를 우리 사회의 정설로 받아들인 뒤에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임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체성을 부정하진 않지만 민주주의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딛고 이룩한 결실이다. 정권에 따라 민주주의의 수준도 차이가 난다. 따라서 국가가 보다 많은 국민과 소통의 범위를 넓혀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게 임교수의 주장이다. 경제적 형평성의 확대도 민주주의 범위에 포함된다. 한국의 정치적 민주주의는 1987년 6월 항쟁과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쳐 여야간 두 차례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서 튼튼하게 되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군부 독재로 퇴행할 수는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임교수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는 크게 진전이 없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자유와 민주의 조화=복씨와 임교수는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기본 시각에서 차이가 있지만 다음 5개항목에 대해 합의했다. ‘민주 대한민국’을 위해 보수와 진보를 따질것 없이 모두가 받아들여야 하는 가치다. 두 사람이 합의한 것은 ▶자유민주주의와 민주공화국을 표방한 우리 헌법의 기본 가치를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하자 ▶우리 현대사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는 각각 성과를 갖는다 ▶21세기에도 대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중심원리다 ▶국회가 갈등조정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조화가 중요하다는 등이다.



두 사람이 보수-진보 진영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그럴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각종 토론회에서 양 진영의 주요 논객으로 활약하는 두 사람이 내놓은 합의점은 시사하는 바 크다. 특히 촛불시위 이후 터져나온 참여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결국 민주주의의 중심은 대의 민주주의라고 공감한 것은 주목된다. 길거리 민주주의, 혹은 포퓰리즘은 결국은 특정세력의 정치적 이익에 복무하는 것으로 마감됐다는 걸 역사가 증명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글=배영대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보수 - 진보 진영 두 발표자의 5가지 합의점



①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명시하고 민주공화국을 표방한 우리 헌법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하자.



② 우리 현대사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는 각각 성과를 갖는다.



③ 21세기에도 대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민주주의의 중심원리이다.



④ 국회가 갈등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



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조화가 중요하다.



자유주의는 정통성 지닌 이념

다른 이념과 타협할 수 없어



보수 복거일 사회평론가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아우른 개념이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친화적이지만, 성격이 다르므로, 늘 긴장하는 관계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며 개인에 대한 사회적 강제는 되도록 작아야 한다는 이념이다. 즉 자유주의는 사회적 강제의 내용에 관한 것이다. 한편 민주주의는 인민들 전체가 권력을 가진다는 이념이다. 그런 권력이 쓰일 목적에 대해선 얘기하는 바가 적다.



하이에크가 지적한 대로, 민주주의의 역(逆)은 권위주의적 정부고, 자유주의의 역은 전체주의다. 그 두 체계들의 어느 쪽도 다른 쪽의 역을 꼭 배제하지 않는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전체주의적 권력을 휘두를 수도 있고, 권위주의적 정부가 자유주의적 원칙들에 바탕을 두고 행동할 수도 있다.



이런 사정은 우리 사회의 구성 원리가 이념적으로 중립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우리 헌법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향하므로, 흔히 ‘우파’ 또는 ‘보수’라 불리는 자유주의는 우리 사회에서 정통성을 지닌 이념이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민족사회주의와 같은 ‘좌파’ 이념들은, 좋게 말해서, 대안적 이념들이다. 우리 사회에선 자유주의와 다른 이념들이 동등할 수 없다. 자유주의는 정설(orthodoxy)이고 다른 이념들은 모두 이설(heterodoxy)들이다. 이런 상황에선 정설과 이단의 중간이라는 자리는 존재할 수 없다.



사회적 통합을 위해 이념들 사이의 차이를 줄이려는 실제적 노력도 자유주의를 우리 사회의 정설로 받아들인 뒤에 나와야 한다. 우리 헌법이나 자유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과의 이념적 타협은 우리 사회의 바탕을 가장 근본적 수준에서 허무는 일이다.



우리 사회의 경우, 이 문제는 무척 심각하다. 국민의 20% 이상이 대한민국의 헌법과 역사에 대해서 부정적 태도를 지닌 터라, 우리 사회에선 이념적 통합이 무척 어렵다. 그래서 정설과 이설의 중간 지점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고, 이념적으로 설 땅이 없는 중도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단체주의는 전체주의적 경제 이념으로 경제적 자유주의를 구성 원리로 삼은 우리 사회에 이질적이다. 예컨대 ‘노사정위원회’는 자유주의에 어긋나는 단체주의에 바탕을 두었다. 경제적 자유주의 이념과 시장 경제 체제를 직접적으로 허문다. 노사정위원회는 경제 문제들에 관한 국민적 합의를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국민적 합의를 이루는 기관은 국회다.



지속가능한 민주주의 위해

평등은 버릴 수 없는 가치



진보 임혁백 고려대 교수




이명박 정부의 취임은 민주주의 공고화 과정의 완성을 의미한다. 한국 민주주의와 관련해 우리가 관심을 쏟아야 할 문제는 권위주의로 다시 회귀할 것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이제 문제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질적으로 향상되고 있는가 아니면 퇴보하고 있는가이다. 한국의 민주화는 자유주의적으로 추진되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과정에서 시민들은 계급혁명을 표방하지 않았다. 급진적인 사회경제적 개혁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들이 내건 구호는 ‘호헌철폐’ ‘독재타도’ ‘직선쟁취’였다. 헌정주의의 복원을 요구했으며, 권위주의 군부독재 정권에 의해 박탈당한 시민의 정치적 기본 권리와 자유를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1987년 체제가 정착시킨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이고 절차적인 민주주의다. 결과론적으로 볼 때 노태우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병영으로 돌아간 군부에 의한 민주주의 전복 기도를 막은 공로가 인정된다. 김영삼 대통령은 군부에 대한 문민통제를 재확립해 자유주의적 민주화에 공헌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실현함으로써 민주주의 공고화의 문턱을 넘는데 기여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권력기관의 민주화·탈정치화, 정치 자금 문제를 개혁하는 데 기여했다.



절차적 민주주의 개념으로 87년 이후 지난 노무현 정부까지의 한국 민주주의를 평가한다면, 한국 민주주의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전세계적 민주화 물결의 선두 주자로 올라섰고 주기적 선거경쟁이 제도화됐다.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고 시민참여가 확대됐고 지방자치의 부활했으며 정치적 부패는 감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수준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크게 진전이 없었다. 시장의 자유 확대와 복지의 후퇴라는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줄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전진하고 있는가, 아니면 후퇴하는가. 민주주의의 최소 강령적 기준, 예컨대 법의 지배, 민주적 책임성, 참여, 경쟁, 정치적 자유, 평등, 정부의 응답성 또는 정통성 등을 기준으로 평가해 보면 이명박 정부하의 민주주의는 불만스러운 수준이다.



경제사회와 시민사회의 빠른 발전 속도에 비해 정치사회와 정당의 지체 현상이 우려할만하다. 정치인들이 유권자에 대해 책임을 다하도록 만들 효율적인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평등은 한국 민주주의가 지속가능하기 위해 버릴 수 없는 기본 가치다. 평등은 진보 정권 하에서도 후퇴했으며, 현 정권에선 좌파이념으로 배척당하고 있다.






▶4차 토론 안내=다음 토론은 29일 오후 2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주제는 ‘남북·한미 관계:상호주의인가, 포용정책인가’.



보수-진보 토론은 올해 말까지 매달 1회씩 열린다. 중앙일보와 사회통합위원회(위원장 고건),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이사장 김세원)가 공동 주최한다. 바른사회시민회의(공동대표 박효종), 좋은정책포럼(대표 김형기), 한국개발원(KDI·원장 현오석)이 공동 주관한다. 무료이고 선착순으로 누구나 참관할 수 있다.



보수와 진보 상생과 소통을 말하다 ① 박효종 - 김형기 대담 4월7일자 26,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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