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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여성참정권에 바친 평생 … 죽던 해에 뜻 이룬 팽크허스트

 
  1914년 버킹엄궁 앞에서 열린 여성참정권 시위 뒤 경찰에 체포되고 있는 에멀라인 팽크허스트(1858~1928). 전투적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은 전통적인 평화적 참정권운동이 제대로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고 보고, 여론을 자극할 만한 적극적인 행동주의를 기치로 내걸었다. ‘말보다는 행동을!’ 이것이 그들의 구호였다.
 
빅토리아 여왕(1837~1901년 재위) 시대 영국의 여성은 크게 두 종류였다. 중간층 이상의 이상적 여성상은 허리를 졸라맨 치마를 입고 남편이 귀가하기를 기다리는 인형 같은 모습이었다. 반면 노동자층 여성은 노동으로 굵어진 팔다리에 허름한 차림으로 하녀·공장노동자·탄갱부 등 남자도 하기 힘든 일을 했다. 겉모습은 달라도 법적 권리가 없다는 점에서는 둘 다 같았다. 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사회적 인정은 불가능했다. 결혼을 통한 남편의 보호막이 사라졌을 때 여성이 택할 수 있는 대안이란 바느질이나 가정교사로 형편없는 대우를 받는 게 그나마 나은 경우였고, 그 외엔 공장노동자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참정권 운동에서 중간층 여성이 보여준 과감성은 이런 절망적 처지 때문이었다.

1903년 에멀라인 팽크허스트는 두 딸 크리스타벨(1880~1958)·실비아(1888~1960)와 함께 여성사회정치동맹(WSPU)을 결성했다. 1906년 집권한 자유당 정부가 여성참정권 요구를 수용할 것을 기대했으나 들어주지 않자 자유당 정부와 여성참정권 세력 사이의 갈등은 심화됐고, 여성사회정치동맹의 운동은 좀 더 과격한 방향으로 선회했다. 이들을 기존의 ‘온건한 참정권운동가(suffragist)’와 구분해 ‘전투적 참정권운동가(suffragette)’라고 부른다.

운동가들은 단순한 항의시위를 넘어 총리관저나 관청의 유리창을 박살내는 등 직접 행동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체포·구금된 운동가들은 정치범 대우를 요구하며 옥중 단식투쟁을 펼쳤다. 이에 맞서 정부는 처음에는 사지를 붙잡고 호스를 위에 넣어 강제로 음식을 주입했으나, 끔찍한 고통으로 반대 여론이 일어나자 1913년 이른바 ‘고양이와 쥐 법(Cat and Mouse Act)’을 제정해 단식투쟁하는 이를 일단 석방시켜 경찰을 붙여 감시하다가 언제든지 다시 잡아 가둘 수 있게 했다. 팽크허스트 자신은 이 법에 따라 석방 및 체포를 1년에 12차례나 되풀이해야 했다.

1918년 영국의 모든 남성은 21세, 여성은 31세에 투표를 할 수 있게 됐다. 팽크허스트는 1928년 6월 14일 사망했고, 그해 7월 영국 여성은 남성과 같은 조건인 21세에 투표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녀가 평생 해온 운동이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녀가 주도한 과격 행위는 자극과 반발을 동시에 일으키며 상반된 평가를 받았지만 여성참정권에 대한 관심을 높임으로써 목적 달성에 기여했다. 양성평등을 향한 사회의 변화는 이제 임계점을 지나 여성우위시대로 향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역사의 본질이 ‘변화’임을 실감한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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