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배명복의 세상읽기] 미궁에 빠진 천안함 외교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 중인 한국 대표팀이 기분 좋은 첫 승을 거뒀다. 천안함으로 쌓인 피로를 한 방에 날려버린 청량제 같은 승리였다. 그리스를 2대0으로 완파하던 날, 북한은 16년 만에 ‘서울 불바다론’을 다시 들고 나왔다. 전방에 설치한 확성기로 대북(對北) 심리전을 강행하면 무자비한 타격으로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어 놓겠다는 흉포(凶暴)한 협박이다. 정부가 확성기 방송에 나서더라도 과연 북한이 말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리지만 무력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엄중한 상황인 건 틀림없다. 월드컵 열기 속에서도 천안함 사태는 여전히 발등의 불이다.



남북은 언제까지 이런 불안하고 위험한 치킨게임을 계속할 것인가. 더구나 다섯 달 후면 서울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다. ‘코리아 리스크’도 신경 써야 하고, 방치돼 있는 북핵 문제의 고삐도 다잡아야 한다.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국론 분열도 심각한 수준이다. 천안함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현실적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 실마리는 유엔에서 찾는 수밖에 없다. 무력으로 해결할 게 아니라면 국제사회의 총의(總意)로 북한을 압박하는 것 이상의 현실적 대안은 없기 때문이다.



[일러스트=강일구]
오늘 새벽 남북한은 유엔 안보리에서 비공개 진실게임을 벌였다. 15개 이사국 대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 측 합동조사단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조사 결과와 확보한 물증을 토대로 천안함 침몰은 명백한 북한의 소행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북한은 조사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며 조작된 물증을 바탕으로 날조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판단은 이사국들 몫이지만 우리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바텀라인(bottom line)은 원인 제공자로 북한을 명시하는 것이다. 천안함 격침을 남한에 대한 북한의 무력도발로 규정하고, 북한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안보리의 컨센서스만 모아진다면 결의든 의장성명이든 형식은 사실 중요치 않다.



이미 50여 개국이 우리 입장을 지지하고 있지만 국제평화와 안전의 최종책임자인 안보리가 손을 들어주지 않으면 우리 측 조사 결과는 하나의 주장으로 남게 된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것이 국제사회의 룰이다. 6·25가 북침이라는 북한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가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안보리가 남침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안보리에서 조사 결과를 공인받아야만 천안함 침몰을 둘러싼 안팎의 논란도 잠재울 수 있다. 정부의 대북 조치도 국제법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문제는 중국과 러시아다. 두 나라는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데 유보적이거나 회의적인 입장이다. 북한의 반발에 따른 한반도의 무력충돌 가능성을 내세워 우리가 제시한 조사 결과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가 끝까지 북한 편을 들 경우 안보리 컨센서스는 불가능하다. 미국과 일본이 한국 편을 들고,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편을 드는 대립구도 속에 결론 도출이 계속 지연될 수도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팽팽한 힘겨루기 끝에 어정쩡한 결론으로 봉합되는 경우다. 남북한의 주장을 나란히 병기한 뒤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지 않도록 양측 모두 자제와 인내력를 발휘해야 한다는 선에서 결론이 난다면 우리의 천안함 외교는 완패를 넘어 역풍이 된다. 조사 결과가 안보리의 공인을 받지 못하는 셈이니 천안함 사건은 국제법적으로 영구미제가 되고, 국론 분열이 더욱 심각해지면서 대북조치도 동력을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로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결론이다.



우리도 카드를 준비해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의 물타기와 김빼기로 안보리 논의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경우 천안함 사건에 대한 유엔의 공식조사를 우리가 먼저 요구하는 것이다. 북한의 천안함 공격은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다. 정전협정 37조는 중립국 감시위원회가 정전협정의 이행 여부를 감독·감시·조사·시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원용해 유엔 공동조사단 구성을 제안하는 것이다. 시한을 정해 유엔 조사단이 남북을 오가며 진상을 조사해 안보리에 보고토록 한다면 그 결과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조사 결과에 자신이 있으니 우리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다. 중국이 난색을 표명할 경우 북한 소행이 드러날까 우려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카드가 될 수 있다.



천안함 사태로 망외(望外)의 소득을 챙긴 미국은 한 발 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천안함 덕에 오키나와의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마무리지었고, 동북아에서 미국의 힘을 재확인했다. 한국 해군력 증강을 명분으로 군사장비를 판매할 기회도 챙겼다. 중국은 중국대로 미국에 맞먹는 위상을 과시했고, 북한의 대중(對中) 의존도를 더욱 끌어올렸다. 북한의 무모한 도발로 강대국들 좋은 일만 시켜준 꼴이다. 사태가 장기화할수록 결국 우리만 손해다.



우선은 안보리에서 대북 규탄 결의나 성명을 이끌어내는 데 외교력을 집중해야 한다. 이를 통해 대북 조치의 국제법적 정당성이 확보되면 우리가 주도권을 쥔 상태에서 압박의 완급을 조절하면서 천안함 국면에서 빠져나와 6자회담 국면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유엔 공동조사 카드로 선수를 치고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다. 세월을 약으로 알고 기다리고 있기엔 상황이 너무 위중하다.



글=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일러스트=강일구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