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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하고 싶으면 사장 방에 찾아가라”

“행장 방에 들어가라.”
지난해 말 한 은행의 여자 부장이 김상경(61·사진) 한국국제금융연수원장을 찾았다. 임원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일만큼은 잘한다고 자부하지만 옆에서 도는 얘기를 듣자니 불안했다. ‘그 자리는 누가 유력하다더라’ ‘누구는 누구 고등학교 후배라더라’ ‘누구는 누구 라인이라 가망 없다’ 등등. 은행 내 여자 임원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은 것도 마음에 걸렸다. 고민 끝에 ‘금융계의 대모’라는 김 원장을 찾았는데, 그가 내놓은 해결책이라는 게 은행의 제일 어른인 행장을 만나라는 거였다. 괜히 ‘승진에 눈먼 여자’라고 찍혀 눈 밖에 날지도 모를 일이다. 주춤하는 눈치를 보이자 김 원장이 다그쳤다.

“남자들이 행장 방을 얼마나 자주 드나드는지 아느냐. 그게 뭐 어떠냐. 나만 열심히 하면 인정해 주겠지 하고 기다리다간 평생 기회 못 잡는다. 울어야 떡 하나라도 더 챙길 수 있다. 행장에게 ‘내가 이 분야에서는 최고이니 나를 그 자리에 앉혀 달라’고 말해라.”

그 부장은 3월 본부장으로 승진했다. 나중에 얘길 들어보니 행장까지는 아니고 전무를 찾아갔다고 한다. 입사 20년 만에 처음으로 그래 봤단다.

김 원장은 국내 1호 외환 딜러다. 남녀를 통틀어 처음이다. 1979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아멕스) 한국지점에서 비서로 일할 때 상사가 외환시장에 관한 영문 서적을 건넨 게 시작이었다. 1년간 아멕스의 홍콩·싱가포르·뉴욕 딜링룸을 돌며 외환 거래를 배웠고 80년 국내 최초로 외환딜러가 됐다. 김 원장은 3년 만에 여 수석딜러(Chief Dealer) 자리를 꿰찼다. 여자 수석딜러는 해외에서도 보기 드물고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찾기도 어려운 자리다. 당시 딜러로서는 환갑을 훨씬 넘긴 마흔에 430만 달러의 순익을 은행에 안기고 연봉 2억원을 받기도 했다. 이후 중국은행 서울지점의 수석딜러를 거쳐 외환위기 직후에는 외환은행 사외이사를 맡았다. 95년에는 외환딜러 경험을 살려 한국국제금융연수원을 설립했다. 외환·선물·옵션·파생 등 금융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싶어서다. 당시 우후죽순 생긴 금융 관련 사설 연수원 가운데 지금껏 살아남은 곳은 이곳을 포함해 몇 군데에 불과하다. 2003년에는 국내 금융계 임원급 여성 200여 명이 주축이 된 ‘여성금융인네트워크’를 조직해 회장을 맡고 있다.

“한 은행의 인사부장이 해 준 얘기다. 신입사원 공채 때 여성들 점수가 월등히 높다고 한다. 남성 할당량을 정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런데 여자 임원은 얼마나 되나. 올해 처음으로 금융권 여자 CEO(최고경영자)가 나왔다.”

금융권에는 여성들이 비교적 많은 것 같다는 말에 김 원장은 현실의 이면을 꼬집었다.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여성 임원을 찾기 힘든 곳이 금융권이다. 김 원장은 그래서 외국처럼 우리도 여성 임원 할당제 등을 정책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여성들이 가사·육아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금융회사들만이라도 공동기금을 만들어 어린이집을 운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원장은 여자 후배들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여자들이 끈기가 없다는 것이다. ‘이만하면 됐지 뭐’ 하고 쉽게 포기하는 탓에 ‘여자들에게는 책임을 맡기면 안 된다’는 편견을 심어준다고 지적했다. 때로는 감정조절을 못 하고 직장 동료나 상사와 언성을 높이거나 눈물을 보여 업무 능력에 비해 저평가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발로 뛰는 영업과 같은 일보다는 우아해 보이는 기획·마케팅 같은 쪽으로만 일을 하려고 해 조직에서 크는 데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남자들에 비해 인맥 관리 능력이 떨어진다. 라인이나 동아줄이라고 해서 부정적으로 볼 게 아니다. 조직에서 성공하려면 사람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모든 게 다 사람일 아니냐.”

김 원장은 인맥 관리의 ‘달인’으로 소문나 있다. 신한은행 신상훈 행장과는 신 행장의 차장 시절 처음 만나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금융권 인사뿐 아니라 법무법인태평양 이종욱 공동대표변호사, 신경림 시인 등 다양한 인맥을 자랑한다. 김 원장이 95년 나는 나를 베팅한다라는 책을 내고 나서 열린 출판기념회에는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인맥 관리에도 요령이 필요하다. 모두와 가족처럼 지낼 순 없다. 속상한 일이 생기면 바로 전화해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한 달에 한 번 얼굴 보면 좋은 사람, 1년에 한 번 연하장 보내도 괜찮은 사람 등으로 나눠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도록 한다. 그렇다고 비즈니스를 염두에 두고 계산적으로 사람을 만나라는 얘기는 아니다. 진심은 통하게 돼 있다. 그래서 나는 연하장은 반드시 손으로 쓴다. 사람은 원래 작은 정성에도 감동한다.”(실제 김 원장은 기자에게 인터뷰가 끝난 후 딸이 직접 손으로 만든 레진(치과 치료에 사용되는 플라스틱의 일종) 공예품을 건넸다. 확실히 비싼 기념품보다도 기억에 남았다.)

외환시장 전망에 대해서도 물었는데 돌아오는 답변이 심심하다. 외환딜러는 점쟁이가 아니라는 거다. 외환시장을 예측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다는 얘기다. 외환딜러들 사이에서는 ‘시장이 더 현명하다’ ‘누구든 시장을 이길 수 없다’ ‘시장은 항상 옳다’ 등의 말이 진리로 통한다고 설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중소기업들이 시장에 대해 지나치게 확신하고 키코(KIKO) 같은 파생상품에 과도하게 가입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계약 당시 해당 기업의 재무담당 임원이나 CEO는 환율이 예상과 달리 움직이면 큰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텐데도 당장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손에 들어오는 ‘공돈’에 끌려 위험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다만 “장기적으로 외환시장은 수급의 문제이기 때문에 한국이 수출을 잘해서 계속 무역수지 흑자를 유지하는 한 달러 가치는 약세를 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장 전망과 달리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에 대한 평가에는 단호했다. 현실적으로 개입해 봐야 소용없다는 것이다.

“국내 외환시장의 하루 거래량이 480억 달러다. 전 세계 외환시장 규모는 3조 달러다. 거래량이 적으니 국내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개입해 봐야 어쩌지 못한다. 오히려 전 세계 딜러들에게 돈 벌 기회만 제공하는 꼴이다. 2003~2004년 일본 정부가 수출을 늘리기 위해 엔화 가치를 떨어트리려 재정을 쏟아부었지만 엔화는 오히려 강세를 유지했다. 그렇다고 원화 가치 안정을 위해 다시 고정환율제나 통화바스켓 제도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 외환시장을 규제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활성화해 시장 규모를 늘려나가는 게 환율 변동성을 줄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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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