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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의 여왕’ 네 남자, 재기발랄 만화경 퍼레이드

1 ‘대작주의’ 정점으로 치닫던 1976년, ‘여왕’의 위풍당당한 위용이다. 왼쪽부터 존 디콘(베이스), 로저 테일러(드럼), 프레디 머큐리(보컬·피아노), 브라이언 메이(기타). 5집 앨범의 게이트폴드 재킷 안쪽에 실린 사진 일부다.
런던 록그룹 퀸(Queen)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교태’랄까, 젠체하는 과장된 거드름과 그 아찔한 현란함 말이다. 게다가 팀 이름에서 풍기는 야릇한 동성애 ‘퀴어(queer)’ 냄새까지.“스타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던 ‘캠프 페르소나’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1946~91).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태어난 그에겐 영미권 음악과는 다른 DNA가 뼛속 깊이 새겨져 있다(수작 앨범 ‘Jazz’의 첫 곡 ‘Mustapha’에 귀 기울여 보라. 이슬람풍으로 흥얼거리는 그 유혹이란). 당대의 저 유명한 카멜레온 데이비드 보위(63)처럼 머큐리 또한 양성애자였으니.

그의 목청은 가히 치명적 아름다움이다. 미악(美樂)의 미학, 맞다. 얼핏 괴상망측한 가성 같기도 하지만 웬걸, 4옥타브를 오르내리며 시원스레 뽑아내는 그 야들야들한 목소리라니. 은밀한 급소를 단박에 급습한다. 가끔 비트를 가로질러 반 박자 정도 빠르게 혹은 늦게 노래하는, 다소 감정 과잉의 머큐리표 창법을 그 누가 흉내 낼 수 있을는지.

2 두 번째 앨범 재킷 커버. 3 ‘Bicycle Race’ 등 두 곡이 담긴 7인치 싱글판 재킷 (1978).
존 레넌(1940~80) 곁에 폴 매카트니(68)가 있었다면, 머큐리 옆엔 작사·작곡 황금 콤비인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Brian May·63)가 있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면 자기가 만든 수제 기타에서 뿜어내는 유니크한 다중성일 터다. 아르페지오로 우아하게 기타 줄 튕기다가도 예의 둔중한 예리함이 빛을 발한다. 겹겹이 쌓아 올린 풍요로운 기타 하모니, 거기에 잘생긴 드럼 주자 로저 테일러(61)까지 한몫 거든 화성의 울림 등등 뭐 하나 ‘퀸’스럽지 않은 구석이 없다. 마법의 건반악기, 신시사이저 도움 없이도 그토록 놀라운 록 오페라의 진경(75년 곡 ‘Bohemian Rhapsody’)을 펼쳤던 그들 아닌가.

내가 사랑하는 퀸은 치렁치렁한 장발 멤버 넷이서 화려한 자태를 뽐내던 글램 록(양성애적이고 외모에 신경 쓰던 70년대 록) 연주 시절이다. 안티 신시사이저를 모토로 내걸던 때다. 일본어 노랫말을 섞어 가슴 저미게 연주한 ‘Teo Torriatte’, 이 노래가 담긴 5집 ‘A Day at the Races’(76)까지가 특히 좋다. 딱 한 장만 꼽자면 ‘Queen II’가 으뜸이랄 만하다. 좀 더 한정하면 LP판의 경우 그것의 B면(프레디 머큐리가 통째 작곡한 일명 ‘사이드 블랙’ 여섯 곡)일 테고. 사실 2집 앨범만큼은 몸을 이리저리 사용해 LP판으로 들어야 제 맛이다.

육중한 듯 쫀득한 록 넘버 ‘Ogre Battle’부터 유일한 싱글곡인 ‘Seven Seas of Rhye’까지 유려한 멜로디며 다채로운 코러스 라인이며, 그 자체로 나무랄 데 없는 오페라틱 록 메들리다. 청량감 120%짜리 퀸의 에센스가 바로 여기 있다. 그 맛은 전율 쪽이라기보다 감미로운 경련이다. ‘어쩜’ 싶게 통통 튀는 ‘The Fairy Feller’s Master-Stroke’에서 손발 오그라드는 노래 ‘Nevermore’로 넘어갈 때의 콩닥콩닥 설렘, 또 다음 곡으로 이어질 때의 그 기분 좋은 긴장감, 참 알싸하다. 킬러트랙은 ‘March of the Black Queen’ 바로 이거다. “자, 어서”라고 채근하듯 중모리에서 휘모리장단으로 내달린다. 흡사 만화경 같은 축제 퍼레이드다. 온몸의 감각세포들이 죄다 발랄한 팽팽함으로 한껏 열리는 듯한 쾌락이랄까.

그러고 보면 퀸 음악은 내게 언제나 카르페 디엠(carpe diem·지금 바로 이 순간을 즐기라) 정신을 일깨워 주지 싶다. “인생의 즐거움이란 뛰어드는 자의 것”이라고 사운드로 가르쳐 주는 셈이다. 하하하.

(철 지난 객쩍은 얘기 하나 보태자면 이 땅에서의 70~80년대 금지곡, 유감이다. 퀸만 해도 ‘Bohemian Rhapsody’ 말고도 금지곡, 수두룩했다. ‘Teo Torriatte’ ‘Bicycle Race’ ‘Another One Bites the Dust’ 등등. 라이선스 LP판도 드물었지만 그나마 나온 것도 누더기 판이기 일쑤였다. 왜 못 듣게 귀를 막았을까. 뭐 이런 걸 거다. “살인·폭력 묘사, 일본어 가사, 반사회적이고 퇴폐적인 음악 따위는 어림없다”고. 해서 불온한 시대, 불온한 노랫말은 십중팔구 부랑아 신세였다. 아니, 어쩌면 예술적 상상, 은유의 미덕 같은 건 애당초 어디에도 머물 자리가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한데 검열의 잣대라는 게, 이건 뭐,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가령 훗날 ‘나뭇잎 사이로’ ‘제비꽃’ 노래 들려줬던 왕년의 포크 싱어·송라이터 조동진의 경우 당시 아예 방송조차 탈 수 없던 사유는? 가창력 미숙이었다나 어쨌다나, 헐.)

박진열 기자


정규 음반을 왜 앨범이라고 할까. LP판을 왜 레코드라고 할까. 추억의 ‘사진첩’이고,‘기록’이기에 그런 거라 생각하는 중앙일보 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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