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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 이익 생각 않고 지원,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수익 창출

올라퍼 엘리아슨의 ‘날씨 프로젝트’(2003년 10월 16일~2004년 3월 21일)는 유니레버의 테이트 모던 프로젝트를 세계에 널리 알린 작품이다. 거대한 거울 알루미늄과 빛을 이용해 인공 태양이 설치된 공간을 연출, 관람객에게 선탠하는 듯한 경험을 선사했다. 이미지 테이트 사진:마커스 레스/앤드루 더크리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가면 ‘세인스베리 윙’이라는 곳이 있다. 런던에 살아 본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이름이다. 윙이란 별관이라는 뜻으로, 본관 옆에 새로 부속처럼 지어진 관을 의미한다. 세인스베리는 한 가문의 이름인 동시에 런던 사람들에게 익숙한 수퍼마켓 이름이다. 즉 수퍼마켓 유통업을 하는 세인스베리가(家)가 내셔널 갤러리를 위해 기증한 기금으로 만들어진 별관이라는 뜻이다. 한 기업의 스폰서 덕분에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던 중요한 이탈리아 초·중기 르네상스 컬렉션이 1992년부터 아름다운 성전 같은 방을 갖게 된 것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유럽의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 곳곳에 적혀 있는 수많은 개인의 이름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조금 이해하실 수 있을 듯하다. 유럽의 문화유산과 예술품들이 20세기 두 차례 전쟁의 와중에서도 상당 부분 지켜질 수 있었던 데는 국가의 공적 지원 외에 이 같은 개별 스폰서의 힘에 기인한 이유도 적지 않다.

2009년 영국 공공문화 부문의 운영 예산 파이를 살펴보면 평균적으로 50%는 정부, 35%는 미술관 수익사업에서 조달된다. 그 남은 15%가 개별 스폰서십에 의존하고 있다. 문화기관 예산의 80%가 사적 기금에서 조달되는 미국과 비교해 본다면, 이 15%는 매우 적은 분량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유니레버의 테이트 모던 프로젝트 중 도리스 살세도의 ‘십볼렛’(2007년 10월 9일~2008년 4월 6일). 250m 길이의 테이트 모던 터바인 홀 바닥이 마치 지진이 난 듯 갈라져 있다. 바닥을 잘라내는 작가의 상상력을 수용한 미술관 측의 포용력과 기업의 지원 덕분에 미술사에 남을 만한 작품이 탄생했다. 지금은 갈라진 바닥을 깔끔하게 메워 놓았다.
하지만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부터 국가가 박물관이나 미술관 전체를 후원하고 지원하는 문화정책 시스템을 갖춰 온 유럽에 비해 미국은 30년대 이후 록펠러·카네기 등 수많은 개별 기업인에 의한 사적 지원으로 본격화됐다. 출발점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유럽 문화정책에서 기업 및 개인 스폰서십에 대한 평가 및 가치는 결코 작지 않은 것이다. 최근 국가가 많은 부분을 지원하는 정책이 갖는 어려움에 직면한 유럽은 더 합리적인 운용 논리를 도입하고 보다 창조적인 경영체제로 바꾸고 있다.

마케팅 전략도 매우 적극적이다. 이제 미술관이나 박물관 같은 문화기관들은 기업에 일방적으로 자선(donation)을 구하지 않는다. 대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기업 이미지 컨설팅 차원의 마케팅과 차별화된 프리미어 상품 마케팅을 공격적으로 제시한다(이는 미국에서는 이미 매우 발전한 개념으로, 각 박물관·미술관 내에는 펀딩을 담당하는 펀드레이징부가 있다).

스폰서십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노먼 포스터가 주도한, 건물의 중정(中庭)을 개조해 대형 유리돔을 만드는 2000년도 대영박물관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보자. 이 프로젝트의 스폰서십은 수많은 개인과 문화 애호인들로부터 나왔다. 대영박물관 후원회 밤을 열고 개인과 기업에 천장 유리구조물의 한쪽씩을 지원하게 한 것이다. 프로젝트에 참가한 후원인들은 대영박물관을 방문할 때마다 자기가 기증한 돔의 유리 한쪽을 보고 흐뭇한 감상에 젖을 터다. 스폰서십이란 더 이상 ‘구걸’하는 게 아니라 함께 주고받을 수 있는 것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스포츠나 다른 대중문화 상품들과 비교해 클래식 문화는 좀 더 장기적인, 때로 대중과 타협할 수 없는 독자적인 영역에 대한 거시적 투자를 필요로 한다. 자칫 현실성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가치 있는 일이기도 하다.미술관과 기업의 대표적인 협업 사례가 약품 제작회사인 유니레버(Unilever)사의 테이트 모던 터바인 홀 지원 프로젝트다. 유니레버는 2000년도 테이트 모던 미술관 개관부터 그 입구에 위치한 거대한 터바인 홀에 초청 작가들의 신작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아마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거대하다는 수식어를 붙여 줄 수 있는 이 프로젝트는 ‘예산 무제한’이라는 어마어마한 조건 덕분에 대형 공간을 해석할 수 있는 작가들에겐 그야말로 ‘드림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다. 동시에 유니레버는 이 테이트 모던 프로젝트를 전 세계 모든 매체를 통해 홍보하고 이미지 카피라이트를 이용한 지속적인 수익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특히 수백, 수천의 언론을 통해 이 프로젝트가 소개되면서 유니레버가 얻게 된 무형의 소득은 돈으로 따지기 어려울 정도다.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구체적 이익을 따지는 계산만으로 이러한 프로젝트가 나올 수는 없다. 스폰서십은 서로 협업을 통한 새로운 가치 창출이라는 맥락에서는 다른 투자들과 비슷한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단지 투자라는 개념보다는 문화예술에 대한 나눔의 정신이라는 공적 마인드가 그 핵심에 있다.

런던 블룸버그사의 본관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서펜타인 미술관의 공식 스폰서이기도 하고, 작가들이 지원할 수 있는 공식 펀딩기관이기도 한 블룸버그사는 자신들의 헤드쿼터 건물 로비에 비영리 현대미술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4명의 큐레이터를 초청해 공동으로 전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구조다. 이곳은 이제 런던에서 꼭 가 봐야 할 중요한 현대미술 전시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또 프랑스 기업 몽블랑은 현대미술상을 제정하고 작품 제작과 전시를 후원한다. 영국 회사 브리티시 패트롤(British Patrol)은 왕립미술학교 블록버스터 전시를 후원한다. 이 같은 고정적인 스폰서십 지원이야말로 현재 런던의 문화 프로그램을 지탱하고 있는 주요한 힘 중 하나다.

이와 함께 기업과 예술을 연계해 주는 기관도 빼놓을 수 없다. 기업의 스폰서십은 크기나 규모가 큰 경우가 많아 아주 많은 자본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문화 부문에서의 협업은 매우 작은 규모에서 시작할 수 있다. 그러한 프로그램을 함께 의논해 주고 만들어 주는 기관이 있다. 우리나라의 메세나협회와도 비슷한 기능을 하는 국가기관으로, ‘아트 앤 비즈니스(Art & Business)’라고 부른다.

어떤 문화기관도 또 기업도, 자신들이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나 마케팅 목적을 가지고 이 기관을 찾아올 수 있다. ‘아트 앤 비즈니스’에서는 그런 내용들을 종합해 가장 좋은 협력자를 찾아준다. 서로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결혼 상대자를 찾아주는 결혼정보회사로 생각하면 쉽다. 이곳은 공사적 성격의 정부기관으로 효율적이고 의사 결정 시스템이 빠르다. 이 기관은 대형 프로젝트도 기획하지만 지방의 작은 기업들에 수도권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전달하거나 중개해 주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유럽의 문화예술 스폰서십 정책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과 역사가 있다. 분명한 것은 그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초기의 인프라 구축과 기본 시작 단계에선 국가 보조금이 가장 효과적이고 절대적이었겠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 가는 데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회구성원들과의 협업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특히 기업들의 문화에 대한 대규모 스폰서십이 새로운 추세가 되기 시작한 요즘, 주의해야 할 대목도 보인다. 문화예술이 마케팅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장 창조적인 예술작품 생성을 가능하게 하고 그 예술적 가치를 순수하게 보호하는 힘으로서 존재할 때만 스폰서십은 투자 이상의 괴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미술사 및 예술경영을 공부하고, 런던에 거주하며 현대미술 전시기획 활동을 하고 있다. 코토드 미술연구원에서 박사 논문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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