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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빛 돌고 수분 머금어 반지르르...식초·간장·설탕에 푹 절이면 아삭아삭

봄인지 여름인지 계절은 계속 헷갈리고, 변덕스러운 날씨에 채소들도 몸을 상해 값이 천정부지다. 그래도 비싼 값이나마 제철 채소는 꼬박꼬박 시장에 나오고 있다. 다른 때보다는 다소 철이 늦었다 싶기는 하지만, 싱싱한 햇마늘이 단으로 묶인 채 시장에 나온 것을 보니 이 계절이 실감나기 시작한다.

처음 시장에 출하되는 햇마늘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냥 양념으로 먹을 만큼 잘 여문 것, 다른 하나는 이보다 훨씬 연하고 물이 많은 장아찌용 마늘, 이렇게 두 가지다. 즉 마늘장아찌는 양념으로 먹기에도 너무 연하고 어리다 싶은 마늘로만 담글 수 있다. 그러니 마늘장아찌는 바로 지금, 이 계절에만 담글 수 있다. 장아찌란 것들이 다 그렇다. 딱 한철에 나오는 채소를 두고두고 먹는 방법으로 강구한 것이 ‘장’으로 담는 ‘지’(김치), 즉 장아찌다.

장아찌용 마늘은 양념용 마늘과 크기는 비슷하다. 하지만 어리고 덜 말랐기 때문에 붉은빛이 많이 돌고 수분을 머금어 반지르르하다. 이 시기 양념용 마늘은 대개 다 통이 벌어져 있는 것에 비해, 장아찌용 마늘은 덜 자라고 덜 말랐기 때문에 통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차이점이다(이 시기에 나오는 마늘은 양념용이든 장아찌용이든 모두 알이 동그래 익으면 마늘통의 가운데가 벌어지는 이른바 ‘벌마늘’이라는 종자이고, 통이 벌어지지 않는 조선 마늘은 장마가 지난 이후에야 다소 비싼 값으로 나온다).

이런 마늘은 대개는 50개, 즉 반 접씩 단으로 묶어 파는 것이 보통이다. 장아찌는 저장음식이니 최소한 이 정도는 담아야 하는 것이다.

마늘장아찌 담글 때 가장 괴로운 일은 마늘을 까는 일이다. 나중에 먹기 편하려면 까서 담그는 것이 좋은데, 아직도 물기가 많은 장아찌용 마늘은 잘 마른 마늘보다 더 까기가 힘들다. 내가 처음 장아찌를 담그던 해, 한 접을 사다 까면서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하필이면 쪽이 많은 마늘이어서 정말 까도 까도 끝이 없었다. 엄마는 해마다 석 접씩 마늘장아찌를 담그셨는데, 그저 보기만 했으니 도대체 그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몰랐던 것이다. 결국 몇 통은 포기하고 통으로 담가 버렸다.

껍질을 까서 깨끗이 씻어놓은 햇마늘 쪽은 하얗고 반질반질하여 참 예쁘다. 까지 않고 통을 담글 때는 뿌리를 자르고 지저분한 겉껍질을 대강 벗기고 난 후, 쪽을 나누지 않은 채 그대로 씻는다.

체에다 받쳐놓은 지 한두 시간이 지나 마늘에서 물기가 대강 빠지고 마르고 나면 유리병에 마늘을 넣고 마늘이 잠길 정도로 식초를 부어 놓는다. 첫날 할 일은, 이것으로 끝이다.

이렇게 일주일쯤 두면 마늘은 식초에 절여진 상태가 된다. 이제 간장을 부어 장아찌의 마지막 공정을 끝낼 때다. 혹시라도 식초를 부어 둔 마늘이 약간 초록빛으로 바뀌면 마늘이 상하기 시작한다는 신호이니 일주일씩 기다리지 말고 지체 없이 마지막 공정으로 들어가야 한다.

가장 먼저 할 일은 큰 그릇을 준비해놓고 삭힌 식초 액체를 따라놓는 것이다. 3분의 1이나 4분의 1 정도만 병에 남기고 나머지 식초는 큰 그릇에 따라 놓는다. 그러고는 식초에 삭힌 마늘과 약간의 식초가 남아 있는 그 병에, 간장과 설탕을 부으면서 간을 맞춘다. 취향에 따라 간장 맛이 너무 많이 나는 것을 싫어하는 경우라면, 소금이나 조선간장과 물을 넣어 끓인 것을 간장과 섞어 부어도 된다. 하지만 이 역시 귀찮은 일이니 나는 그냥 간장만 넣는다.

간장과 설탕, 식초가 어우러진 국물의 맛을 보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취향으로 맞추어 놓으면 되는데, 이때 큰 그릇에 따라놓은 식초 액체를 부어가면서 함께 간을 맞춘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이미 마늘에 식초가 많이 배어 있다는 것을 감안하는 것이다. 따라서 식초 맛이 약간 부족하다 싶은 정도가 적당하다.

이제 공정은 다 끝났다. 시간이 흘러 맛이 들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담근 지 두 달 정도가 되어야만 제대로 맛이 든다. 간 맞춘 것이 불안하면, 한두 주일 후 국물의 맛을 보아 간장과 설탕, 식초를 적절하게 가감하면 거의 실패하지 않는다. 보관 역시 그대로 실온에 두어도 무방하다. 물이나 이물질이 묻은 숟가락을 담가 오염시키지만 않으면 1~2년 동안은 상하지 않는다. 까서 담근 장아찌는 그대로 꺼내 상에 놓으면 되고, 통으로 담근 것은 절반으로 잘라 상에 올린다.

그럼 마늘을 절이고 남은 식초는 어디에 쓸까. 버리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다시 페트병에 넣어 보관한다. 냉국, 튀김 간장, 초고추장 등 식초가 필요할 때 쓰면 되기 때문이다. 마늘을 절였으니 식초가 좀 싱거워지고 마늘 냄새도 강하게 난다. 하지만 대개 냉국이나 튀김 간장 등에 쓰면 따로 마늘을 넣지 않아도 되니 더 편하고 좋다.

마늘 까기가 싫어서 마늘장아찌를 못 하겠다 싶으면, 마늘종으로 하는 방법도 있다. 깨끗이 씻은 마늘종을 적당한 길이로 잘라 담그면 되고, 방법은 동일하다. 맛은 당연히 마늘장아찌보다 훨씬 순하다. 그래서 마늘과 마늘종을 섞어서 담가도 괜찮다.
이렇게 하고도 햇마늘이 남는다면? 가장 편하게 먹는 방법으로 통마늘구이를 추천하고 싶다. 통마늘은 대강 다듬어 씻어, 그냥 통째로 오븐이나 전자레인지에 굽는 것이다. 손으로 만져보아 껍질 속의 마늘이 말랑하게 익을 정도로 익히면 된다.

이렇게 구운 마늘은, 촉촉하고 말랑한데, 구수한 익은 마늘 냄새가 풍기고 전혀 맵지 않다. 그대로 쌈장에 찍어 먹으면 반찬, 간식, 안주, 어떤 용도로도 좋다. 구운 마늘은 앉은 자리에서 서너 통씩 먹게 되니, 마늘을 많이 먹고자 하는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방법이다. 통마늘구이는 마늘에 싱싱한 기운이 남아 있는 여름까지만 맛있다. 이것도 딱 제철에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대중예술평론가. 요리 에세이 『팔방미인 이영미의 참하고 소박한 우리 밥상 이야기』와 『광화문 연가』 『한국인의 자화상, 드라마』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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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