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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에서 쏜 나로호, 사고 조사도 맘대로 못 한다

나로호 발사 실패의 후유증이 만만찮다. 사고조사조차 러시아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현실을 놓고 한국·러시아 간 불평등 계약이 새삼 도마에 올랐다. 우리 땅에서 쏴 올린 로켓에 대한 조사를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건 기술 약소국이 겪는 서럽고 서러운 현실의 단면이다. 반도체·자동차를 만드는 기술강국 한국이 최첨단 로켓 분야에선 한 수 아래임이 입증됐다. 우주발사체 전문가들은 "한국의 우주발사체 개발 체제를 독자 개발로 조기에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김승조 교수는 “이번처럼 수입한 발사체를 그대로 쏠 것이 아니라 어렵더라도 독자 개발해 인공위성을 원하는 때 쏴 올릴 여건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나로호 공중 폭발과 추락이 확인된 10일 오후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 파견근무 중인 러시아 기술진들이 단체로 이동하고 있다. [고흥=연합뉴스]
◆불평등 계약=기술이 없으니 2004년 도입 계약 때부터 끌려다녔다. 우리나라가 나로호 1단 로켓을 들여오면서 러시아 발사체 업체인 흐루니체프에 준 돈은 2억 달러(약 2400억원)에 이른다. 1단 로켓은 나로호의 핵심이자 이번에 공중 폭발을 일으킨 부분이다. 국제발사체 시장가격보다 비싼 값을 치렀다는 평이 파다했는데도 러시아는 1단 로켓 기술의 맛도 보지 못하게 했다. 1단 로켓은 한국에 들여 온 뒤에도 한국 과학자들이 속을 들여다보기는커녕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 더욱이 1단 로켓은 성능이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것으로 러시아는 나로호를 계기로 비행시험을 하는 셈이다.

이번 사고조사도 1단 로켓 정보에 접근이 안 돼 난항이 예상된다. 1단 로켓의 폭발 원인을 알려면 나로호가 지상관제소로 보내 온 데이터를 분석해야 한다. 나로호에는 데이터를 전송하는 통신장치가 러시아제 1단 로켓과 국산 2단 로켓에 각각 달려 있다. 러시아는 1단 로켓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알아내려고 각종 센서를 붙여 놓았다. 그래서 1단 로켓에서 보내 온 자료만 판독하면 사고원인 분석에 결정적 도움이 된다. 그러나 한국은 그 데이터에 접근이 안 된다. 로켓 전문가인 연세대 기계과 윤웅섭 교수는 “1단 로켓에서 보내는 데이터는 암호화돼 있어 러시아 기술진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잔해물 인양=제주도 남쪽 공해상에 떨어진 나로호의 잔해 인양조차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기술 유출을 우려한 러시아가 자신들의 주도 아래서만 잔해를 인양할 수 있도록 계약서에 못 박아놨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설혹 잔해를 인양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거기에 손을 댈 권리가 없다. 나로호 잔해 중 엔진 부위는 이번 폭발의 원인 규명에 키가 된다. 비록 지상 70㎞ 상공에서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엔진 부위는 원래 상태를 상당 부분 유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채연석 박사는 “몇 년 전 한국에서 개발한 초소형 액체로켓 KSR-3을 쏜 뒤 바다에서 잔해를 인양한 결과 엔진 부위가 멀쩡했다. 나로호 1단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 해군은 나로호 추락 해상에서 그 잔해로 추정되는 부유물을 11일 수거했지만 핵심 부품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교육과학기술부의 판단이다.

◆책임 공방=10일 발사 당시 육안과 TV카메라에 잡힌 영상으로 판단하면 러시아제 1단 로켓이 말썽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국내 로켓 전문가들도 대부분 그렇게 본다. 그러나 러시아 항공산업연구원의 한 과학자는 다르게 추정했다. 한국이 만든 2단 로켓이 너무 일찍 분리되는 바람에 그런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임 소재를 놓고 한·러 과학자 간 입장 차에 따라 논란이 예상된다. 채 박사는 “1, 2단 로켓이 일찍 분리됐다 해도 통신용 전원이 한꺼번에 꺼질 수 없다. 2단이 1단에서 너무 빨리 분리됐다고 해도 2단의 통신 장치는 가동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우리나라가 나로호 개발 과정에서 러시아에 끌려 다닌 건 계약상 어쩔 수 없다. 발사체 기술을 가진 나라는 9개국뿐이다. 2002~2004년 당시 러시아를 제외한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에 우주센터와 발사체 관련 기술을 제공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이주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은 “러시아 도움을 받으면서 최대한 관련 기술을 많이 습득해 발사체 독자개발 능력을 빨리 갖춰 우주약소국 신세를 면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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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