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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Global] 연 매출 30조원, 세계최대 빠찡꼬 기업 마루한 한창우회장

쌀 한 자루 거머쥐고 밀항해 일본의 22위 억만장자로 성공한 마루한의 한창우 회장은 “일본인보다 두 배의노력으로 두 배의 신용을 쌓은 게 바로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김동호 특파원]
도쿄 긴자(銀座)의 입구에 우뚝 솟은 첨단 빌딩 퍼시픽 센추리 플레이스의 마루한 도쿄 본사 회장실 . 3분쯤 기다리자 느닷없이 걸걸한 경상도 사투리가 들려왔다. “어어, 회의 때밀에(때문에) 늦었네. 중국 빠찡꼬 진출 협상이 있었어요.” 한창우(79) 회장이다. “한국에선 나를 깡패 오야붕(親分)인줄 안다. 허허허….” 오야붕은 야쿠자의 두목이다. 일본 영화에선 야쿠자들이 꼭 빠찡꼬를 출입하는 장면이 나오니 그런 이미지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빠찡꼬는 도박의 성격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국민 오락이다. 일본에선 산간 벽지에 가도 빠찡꼬 점포가 있을 정도다. 두 시간에 걸친 인터뷰 내내 한 회장은 지치는 기색조차 없었다. 비결을 묻자 6년 전 골프는 치워버리고 아침에 걸어다닌다고 했다. 한 회장은 미국 포브스지가 선정한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서 일본 내 22위에 올랐다. 한국계 기업인이 일본 내에서 상위 30위에 들어간 것은 손정의(일본 이름은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에 이어 두 번째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 맨손으로 ‘일본 드림’ 일궈

● 오늘의 성공이 순탄치 않았을 것 같다.


“ 해방 후 한반도는 좌익이 바로 정의로 여겨지는 분위기였다. 이런 혼란과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열여섯 살 때 무작정 밀항선에 올랐다. 가진 거라곤 부모님이 어렵게 마련해 준 얼마 안 되는 돈과 쌀 한 자루가 전부였다. 누구 한 사람도 일본에 의지할 사람이 없어서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자기가 열심히 안 하면 믿을 사람도, 의지할 사람도 없고, 자연히 자립심이 커졌다. 50~60년 전 한국에 갔다가 일본에 돌아올 때마다 이렇게 해선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한국에선 몇 배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았다. 일본에서의 고생은 고생도 아니었다. 갈 때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했다. 한국에선 전쟁까지 겪어서 얼마나 고생했나.”

● 역경과 시련이 힘이 됐다는 소리로 들린다.

“일본에선 차별도 있었다. 그 차별을 극복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경제적으로 안정돼야 하고 그 뒤에는 교양과 견식을 가져야 한다. 언제든 어깨에는 대한민국의 민간 외교관이라는 의무감이 걸려 있다. 내가 나쁜 짓을 하면 한창우가 아니라 한국 놈은 나쁜 놈이란 소릴 듣는다. 한 사람 때문에 60만 재일동포가 모두 욕먹는다. 재일동포는 이를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지난 50년간 남이 10시간 일하면 나는 13~14시간 일했다. 신용도 일본 사람보다 배, 노력도 배, 봉사도 배를 했다.”

● 빠찡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원래 콘사이스(사전) 하나 들고 공부하러 왔다. 독학으로 도쿄의 사립 호세이(法政)대를 졸업했지만 일자리가 없었다. 한국에 돌아갈 생각도 해봤지만 전쟁이 나서 돌아갈 수 없었고, 일본인도 취직을 못하던 시대였다. 그래서 교토에서 3시간 거리의 산골인 미네야마(峰山)에서 빠찡꼬를 하는 매형에게 갔다. 매형은 장사가 안 되자 점포를 매물로 내놓았다. 하지만 아무도 보러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성공하면 되값아 준다면서 무료로 넘겨받았다. 인구 1만5000명의 이 시골마을이 마루한의 출발점이다.”

# 한우물 판 것이 성공 비결

● 매출액이 세계 최고라고 들었다.


“우리 매출액은 2조3000억 엔(약 30조원)이다. 단일 도박 회사로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와 중국 마카오에도 우리만 한 회사가 없다. 세계 최대 규모다. 지금은 중국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건실한 업체가 들어와 서민의 오락을 만들어달라는 중국 정부의 요청이 와 있다. 일본에도 해방 후 집안에서 하던 도박을 바깥으로 끄집어내면서 빠찡꼬가 국민의 오락이 됐다. 중국도 마찬가지 상황에 있다. 고용 창출과 사회적 스트레스 해소는 기본이고, 버는 돈은 어느 정도 사회봉사에도 기여할 수 있다. 제1호를 다롄(大連)이나 하이난다오(海南島)에서 시범 운영할 예정이다. 중국의 웬만한 도시는 인구가 1000만 명에 이른다. 큰 시장이다.”

● 그렇게 많이 벌어들인 돈의 운용이 궁금하다.

“매년 20개쯤 점포를 내고 있다. 지금 매출액은 2조3000억 엔 정도인데, 빚은 800억 엔이다. 매출액 대비 채무 비율을 생각하면 빚도 아니다. 신용평가기관 무디스가 비상장 기업에 주는 최고 신용등급인 트리플 B를 받고 있다. 은행 돈을 빌릴 때 보증인이나 담보가 필요 없다. 이자는 연 1.8% 이하다. ”

● 빠찡꼬 한우물만 파는 게 신기하다.

“마카오에서 2년 전 120억 엔을 투자했는데 실패했다. 카지노였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인간적으로 너무 좋지 않았다. 말하자면 속은 것이다. 또 하나는 캄보디아에 마루한 재팬뱅크라는 은행을 경영하고 있다. 장래를 봐서는 차후 성공할 걸로 본다. 그래도 잘못하면 한순간에 위기가 닥친다. 우리가 50년 동안 해온 것은 뻔히 알지만, 모르는 것에 손대면 망한다. 투자 지역도 일본을 중심으로 중국과 한국 등 동아시아만 생각하고 있다.”

# 당당하게 한국계 일본인으로 활동

● 2002년 일본에 귀화한 이유는.


“어떤 사람들은 내가 사업 때문에 그랬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나는 당당한 재일동포의 권리로서 국적을 취득했다. 국적을 취득하면 선거에서 입후보가 가능하다. 흔히들 한국 국적을 갖고 있으면 영원히 애국자고, 귀화하면 비애국자라고 하는 얘기는 반드시 옳지는 않다. 일제의 압제를 경험한 어르신들은 펄쩍 뛸 일이다. 하지만 한 표를 갖고 있음으로써 권한이 생긴다. 외국인이기에 할 말을 못 하는 게 있단 얘기다. 난 한국말도 완벽하고 한국 이름도 그대로 쓰고 있다.”

● 그래도 마음이 편할 것 같진 않다.

“한국의 빈한한 아버지를 버리고 일본에 양자로 간 놈 같은 그런 느낌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세계 일류가 됐다. 당당하게 한국 이름을 갖고 일본이 한국에 대해 나쁜 정책을 펼치면 당당하게 노(No)해야 한다. 한 표를 행사함으로써 그럴 수 있다. 이것이 애국에도 통하는 길이다. 독도 문제만 해도 한 표가 있으면 발언할 수 있다. 국적을 바꿀 때 내가 한창우로 해달라고 하니 출입국관리국에서 일본식 이름 표기가 아니라면서 거부했다. 헌법 어디에 있느냐고 했더니 행정지도라는 것이 있었다. 헌법보다 더 권위있는 게 어디 있느냐며 재판을 하자고 했더니 한창우라고 해줬다. 누가 거짓말이라고 해서 내가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 재일동포 빠찡꼬 업계는 마루한에 불만이 많은 것 같다.

“영세업자들을 다 죽인다는 소릴 나도 듣고 있다. 일본 전체의 빠찡꼬 매출액 20조 엔 중에서 마루한의 점유율은 10%쯤 된다. 점포 수로는 1만2000개 중에서 2% 정도인 250개다. 그런데도 마루한이 죽인다 살린다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으면 난 망한다. 다른 업자들이 치고 나오니까. 일본에는 빠찡꼬 경영자가 6000명쯤이고 그중에 4000명이 재일동포들이다. 마루한은 엄청나게 교육시키고 점포를 철저하게 관리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업이 되지 않는다.”

# 이명박·김영삼 ‘대통령’들과의 인연

● 한국의 유명 인사들과 교류가 많은데.


한 회장(왼쪽)이 나루히토 일본 왕세자와 만난 장면.
“이명박 대통령과는 7~8년 정도 됐다. 세계 한인상공인총연합회 조직에 한승수 전 총리가 큰 역할을 했다. 그가 유엔으로 가면서 김덕룡 의원이 그 역할을 이어받았다. 그때 이 대통령이 조직위원장으로 들어왔다. 나는 대회장을 했다. 나는 김 의원에게 서울시장에 나가라고 여러 번 조언했다. 프랑스의 시라크도 파리시장을 하다가 실적을 올려서 대통령을 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언제나 대통령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에 나가니까 김 의원이 굉장히 밀어줬다.”

● 이 대통령과의 다른 일화는.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을 할 때 서울에서 700명이 모이는 한인상공인총연합회 대회가 있었다. 내가 연단에 올라가서 대회사를 할 때였다. 메인 테이블에 앉아 있던 이명박 시장과 김덕룡 의원이 내 얘길 듣지 않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이 시장에게) ‘여보세요. 당신은 전에 내 밑에서 조직위원장을 하던 사람 아니에요, 내 얘기 좀 들어보세요’라고 했더니, 이명박 시장이 ‘아, 미안합니라’라고 해서 좌중이 아주 웃음바다가 됐다. 요즘은 청와대에 계시니까 만나지도 못한다. 하하.”

● 다른 유명 인사는 누가 있나요.

“한승수·한명숙 전 총리, 김혁규·홍인길 전 의원, 박진 의원 등 20명 이상은 알고 지냈지. 김영삼 전 대통령은 내가 일본후원회장까지 했다. 요새는 단절했다. 좀 사이가 나빠졌다. 측근과 참모들을 너무 많이 데리고 다녀서 …. 김대중 대통령은 인연은 없지만 스타일은 다른 것 같아. 대통령 재임 중 일본에 왔을 때 내가 김 대통령 측에 로마네 콩티 한 병에 80만 엔 하는 것, 세 병을 사서 보냈지. 그런데 배달사고가 났는지 김 대통령에게서 받았다는 인사가 없었어. 단위가 원이 아니에요. 엔이에요.”

● 올해가 일본의 한국 강제 병합 100년이다.

“과거를 절대 잊어선 안 된다. 과거를 용서하고 미래를 보고 살아야 한다. 요즘 이순신 장군에 대한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까 400여 년 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지휘하는 왜군이 쳐들어와서 우리 백성을 얼마나 많이 죽였나. 또 100년 전에 명성황후가 살해당한 것도 잊어선 안 된다. 안중근 의사는 정말 대단한 분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을 혼내준다고 난리였던 선조는 정말 바보다. 20여 년 전 올림픽을 하고 우리나라가 이렇게 많이 발전할 줄 누가 알았나. 이제는 서로 손잡고 나가자고 해야 한다. 일본 사람들도 요새는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봐서 한국 평가가 아주 좋아졌다. ”



j 칵테일 >> ‘대부’가 따로 없네

한창우 회장이 인터뷰 도중 기자에게 보여준 사진들은 그의 파노라마 같은 인생 자체였다. 일본인 아내와 결혼할 때의 사진 속 그는 요즘의 꽃미남처럼 보였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 등 역대 대통령과의 사진은 그가 한국에 기울여 온 관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오부치 게이조·후쿠다 야스오 등 역대 일본 총리들, 영국의 찰스 왕세자, 일본의 나루히토 왕세자 등과 대화하는 사진도 그의 성공한 인생을 보여줬다.

노벨 경제학상(1996년) 수상자 부부를 교토의 자택으로 초대해 저녁 만찬을 즐기는 사진은 교류의 폭과 깊이를 말해준다. 슬하에 5남2녀를 뒀지만 미국에서 불의의 사고로 잃은 장남인 철씨의 초상화 앞에서 대가족이 찍은 사진(위)은 영화 ‘대부’ 속 주인공을 연상케 했다. 빠찡꼬 사업이라는 하나의 우물을 판 결과 그는 2002년 미국 포브스에서 선정한 일본의 억만장자 22위에 선정됐다. 마루한은 둥글다는 의미의 마루(丸)와 자신의 이름 첫 글자를 붙여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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