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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pecial] 기자를 놀라게 했다, 스물한 살 당찬 여배우 신세경

먼저 고백부터 해야겠다. 나는 젊은 연예인들하고 인터뷰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초년병 기자 시절 문화부에 있을 때의 안 좋은 기억 탓인데, 대체로 그들은 무슨 질문을 해도 “예, 아니오”의 단답형 대답밖에 할 줄 몰랐다. 미녀 스타를 가까이서 보는 즐거움은 잠시, 기사를 쓸 때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수밖에 없으니 어찌 좋을 수 있겠나. 이번에 그녀와 인터뷰를 하게 됐을 때도 옛 악몽이 떠올라 속이 영 불편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게 아니었다. 올해 스물한 살 여배우 신세경 얘기다. 그녀가 스튜디오로 들어서자 어둡던 실내가 갑자기 환해졌다. ‘흥, 그런 거지 뭐.’ 중년의 기자는 감동하지 않는다. 곧 자신에게 닥쳐올 숙취와 같은 ‘작문 유발형 두통 증후군’을 떨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어린 친구의 긴장을 풀어줘야 한다. “예, 아니오”를 피하고 대답에 조금이라도 살을 붙이려면 필수적인 일이다. 가장 편해 보이는 의자를 골라 앉으라고 권한 뒤 말했다.

글= 이훈범 기자
사진= 박종근 기자



“거의 아버지뻘 되는 사람이니 집처럼 편하게 생각하세요.”

“…….”

자식, 떨고 있구먼. 내친김에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정말 그럴 걸요. 아버님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예순하나요.”

윽, 그럴 리가. 처음부터 스텝이 꼬이기 시작한다. 친절을 가장했던 얼굴의 미소가 비굴 모드로 바뀐다.

“아, 막내신가 봐요. 형제가 많으세요?”

“외동딸인데요.”

이런 된장, 그럼 마흔에 낳은 늦둥이란 얘긴데…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데 그녀가 웃으며 도와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열 살 차이 나시거든요. 그리고 결혼한 뒤 몇 년 동안 애가 안 생겨서 고민하셨대요.” 1:0

전세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공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지붕 뚫고 하이킥’이 끝나고 함께 출연했던 배우들은 다 다른 작품 하는데 혼자만 쉬고 있어서 좀 그렇겠네요.”

“조금 불안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신경 안 써요. 욕심내지 않거든요. 신선한 동기부여가 우선돼야죠.”

에이, 말은 그렇게 해도 많이 불안했을걸.

“부모님이 뭐라고 안 하셨어요? 다른 작품 안 할 거냐고.”

“부모님이라고 왜 불안하지 않으셨겠어요. 하지만 조급해하지는 않으세요. 더 많은 작품보다는 더 좋은 작품을 바라시거든요.”

전형적인 모범답안이다. 내 표정에서 불만을 읽었는지 추가 설명이 따른다.

“고 2, 3 때도 거의 활동하지 않고 쉬었어요. 한두 작품 더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연기에 필요한 감성을 채우는 데 중요한 시기잖아요. 그래서 제 인생에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냈죠.”

지옥 같은 고 2, 3 때에 행복했다니.

“입시 준비로 연기 공부만 했으니까요. 그래서 다른 친구들에게 좀 미안하기도 하고… 아무튼 전 참 운이 좋은 것 같아요.”

그녀는 인터뷰 동안 “운이 좋은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아역배우 출신이 겪는 변신 노력이 필요 없었던 것도 운이 좋은 것이다. (9살 때 서태지 뮤직비디오를 찍은 그녀가 본격적으로 데뷔한 것은 15세 때 ‘어린 신부’에서 문근영 친구로 출연하면서부터다.)

“어렸을 때부터 조숙해 보였어요. 지금 키가 거의 중학교 때 키거든요. 중학교 졸업 앨범을 봐도 학생이 아니라 선생님 같다니까요.”

공세가 먹히지 않는다. 좀 더 수위를 높였다.

“여러 작품에 출연했는데 ‘하이킥’ 전에는 사실 별로 눈에 띄지 않았잖아요. 이렇게 예쁜데 왜 그랬을까요.”

“제가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예쁜 사람을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김태희 언니나 김희선 언니 같은… 그리고 예쁘다고 안주하면 오히려 노력을 덜 하게 돼 결과가 더 안 좋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이킥’에서도 신세경씨 나오는 장면만 안 웃겼잖아요. 불만 없었어요?”

“사실 청승맞은 역할이라 걱정도 됐어요. 하지만 감독님이 항상 적당한 선에서 청승 모드를 끊어주셔서 괜찮았어요. 시트콤에서 정극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렇고,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것도 그렇고 참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진부해도 신세경한테 이걸 묻지 않을 순 없다.

“‘청순 글래머’라는 이미지로 떴는데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아뇨. 청순하지도 않고 글래머도 아니에요.”

“청순하지 않다는 뜻은?”

“조신할 때도 있고 말괄량이일 때도 있고… 제가 감정의 기복이 심하거든요. B형이에요. 훌륭한 배우는 자기 기분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데 제 표정만 보면 누구나 제 기분을 다 알아요.”

모처럼 보이는 약세에 득의양양 물었다.

“그런 걸 성격 나쁘다고 하는 거 아닌가요?”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체력이 바닥났을 때 너무 기분이 가라앉거나 우울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스태프들은 그런 거 하나하나에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생긴 것만 조숙한 게 아니다. 생각도 참 어른스럽다. 성격 나쁘단 얘기는 농담이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 보고 사람들이 글래머라고 하는데요.”

“그거 별거 아니에요. 아랫배에 힘 좀 주면 S라인 만들 수 있어요. 쑥스러워서 잘은 못하지만….”

“청순 글래머라는 게 사실 좀 마초(macho)적 표현인데 상처받은 적은 없나요?”

“저보다는 엄마가 아파하실까 봐 더 걱정이었어요.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셨지만.”

인터넷에 악성 댓글도 있을 텐데 어떨까. 나는 기분 나쁠까 봐 아예 읽지 않는다고 말해줬다.

“현명하시네요. 저도 신경 안 써요.”

윽, 강보에 싸인 아해가 어른을 능멸하는구나. 2:0

청순하지도 글래머도 아닌 신세경의 이상형은 누군지 궁금했다.

“옵티머스 프라임요.”

“그런 배우도 있어요? 처음 듣는 이름인데.”

“‘트랜스포머’에 나오잖아요. 너무 남자답고 멋있는 것 같아요. 목소리도 멋지고.”

이런, 변신로봇 아닌가. 3:0

“그런 남자친구 사귀어 본 적 있어요?”

“남자친구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테고… 음… 없었어요.” 4:0

“고 2, 3 때 연기활동도 쉬고, 공부도 안 했다면서요? 그때 뭐 했어요, 그럼?”

“여러 생각이 넘쳐서 정말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글을 썼어요.”

[사진=박종근 기자]
생각이 깊은 이유가 있구나. 무슨 글?

“단편소설 같은 거.”

“ 소설을 다 썼어요? 어떤 내용인지 말해줄 수 있어요?”

“연극과(중앙대) 선배에게 보여준 적이 있긴 하지만… 그냥 저만 알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웃음)”

“하고 싶은 게 많은가 봐요.”

“꼭 그렇진 않아요. 오히려 욕심이 없는 편이죠. 무슨 일이든 꼭 하고 말겠다는 것도 별로 없어요. 승부근성도 없고. 경쟁 너무 싫어요.”

이런, 앞길이 구만 리인 사람이 이래서 어쩌나.

“사실 끼가 있는 편도 아니거든요. 그래선지 갇혀 있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많아요. 뭔가 박차고 나가야 할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서두르지 않으려고요. 인생은 크레용으로 꾸덕꾸덕 두텁게 칠한 그림이 아니라 멀리 원경까지 있는 수채화인 거잖아요.”

스물한 살짜리가 이런 생각,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니.

“어떤 감독님의 말인데요. 꼭 필요한 순간에 어떻게 발현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거예요. 그러려면 경험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연기보다 우선 경험을 많이 쌓으려고요.”

그녀의 연기력이 아직은 무르익지 않았더라도, 그녀의 몸짓과 대사가 아직은 다소 딱딱하더라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만으로 인생의 의미를 관조할 수 있는 대배우의 향기를 그녀한테서 맡을 수 있는 것은 그런 여유 때문 아닐까. 스물한 살 신세경 파이팅!



j 칵테일 >> 서태지 소녀

서태지의 5집 수록곡 ‘테이크 파이브(Take Five)’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신세경.
신세경은 1998년 아홉 살 때 서태지의 5집 수록곡 ‘테이크 파이브(Take Five)’의 뮤직비디오 출연으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당시 어린 나이답지 않게 슬프면서도 신비한 눈빛으로 “이 아이가 누구냐”는 문의가 빗발칠 정도로 화제를 모았었다. “그냥 울라고 해서 울었는데 분위기가 묘하게 나왔나 봐요. 좋아하시더라고요.” 이 뮤직비디오로 ‘서태지 소녀’라는 별명을 얻었던 세경은 이후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2009년 드라마 ‘지붕 뚫고 하이킥’에 출연하며 스타로 급부상했다. 특히 주인공 신세경과 이지훈(최다니엘 분)의 죽음이 암시된 비극적 결말의 마지막 회는 숱한 논란을 낳았다. ‘청순 글래머’라는 별명으로 CF 퀸으로까지 등극한 신세경은 다음 달 크랭크인할 이현승 감독의 신작 ‘푸른 소금’에서 송강호와 함께 주연을 맡는다. 은퇴한 폭력조직의 보스와 그를 죽이기 위해 접근하는 여성 킬러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 또 다른 신세경의 변신이 벌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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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