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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조선 그림 들여다 보니, 조선 백성들의 삶이 다가오더라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죠. 예술작품 감상 때 더욱 절실해지는 말입니다. 그림을 미학적 측면에서가 아니라 인문학적 시각에서 살핀 책도 그런 면에서 소중합니다. 조선시대 풍속화에서 어찌 이리 풍성한 이야기를 캐냈는지 절로 감탄이 나오는 책을 소개합니다. 아울러 책 자체의 내용만이 아니라 그 사회적·역사적 영향까지 담아낸 고전해제집도 곁들였습니다.


조선 풍속사 1, 2, 3
강명관 지음, 푸른역사
각 권 288~431쪽
각 권 1만8000~2만1000원


한문학자 강명관 부산대 교수에게 감사해야 할 동료 학자들이 꽤 많을 법하다. 조선시대를 전공한 국사학자들이 우선인데, 오래 전 강명관이 쓴 『조선의 뒷골목 풍경』(2003)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 나오다』(2001) 두 권 때문이다. 두 책은 국사학자 역할을 대신해준 생활사·사회사의 귀한 열매이자 읽을거리였다. 덕분에 우리는 ‘사대부의 나라’ 조선의 뒷골목을 무대로 벌어졌던 질펀했던 삶의 현장과 사람냄새를 어제 일처럼 들춰볼 수 있었다.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 중 한 사내가 간이주막에서 요기를 하고 있는 그림. 국자로 무언가를 떠내는 주모의 모습이나 부뚜막 위의 양푼과 술사발 들이 당시 주막의 풍경을 전해준다. 나그네에게 이같은 여행편의를 제공하는 주막은 조선 중기까지 별로 없었다. [푸른역사 제공]
술과 풍악으로 일생을 보낸 오렌지족의 원조, 과거시험장을 누비고 다니던 족집게 대리시험 전문가들, 반(反)양반을 기치로 한 폭력조직의 존재 등이 그것이다. 사람살이란 예나 제나 어슷비슷한 법인데, 여기에 남녀상열지사의 디테일을 눈치 챈 것도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를 꼼꼼히 읽어준 강명관의 친절 덕분이다. 그가 쓴 책의 글 몇 꼭지 제목이 이 정도다. ‘춘정(春情)과 유혹-아이, 총각아! 내 손목 놓아라’ ‘선술집-낭패로다 술과 계집을 찾아온 사내여’ ‘투호와 쌍륙(노름)-너무 즐겨 제정신을 잃는구나’….

강명관이 10년 만에 한 사이클을 돌았다.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 나오다』를 제3권으로 하고, 새로 쓴 두 권을 앞에 보태 3부작 ‘조선 풍속사’를 완성한 것이다. 제1권 『조선사람들 단원의 그림이 되다』 제2권 『조선사람들 풍속으로 남다』가 그것인데, 이제 우리는 좋은 문장에 안정된 편집의 옷을 갖춰 입은 책 세 권을 읽어 내리면 된다. 한문학자를 넘어 조선시대 콘텐트학자인 강명관의 ‘조선 풍속사’는 이 분야의 고전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의 계보를 잇지만, ‘조선 풍속사’는 과장된 제목이다.

자칫 풍속사 전반을 다뤘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만일 그랬다면 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 같은 대작의 반열에 올려야했지만, 이번 3부작이 거기까지 도달한 것은 아니다. 애초 컨셉트부터 달랐다. 혜원과 단원 김홍도가 남긴 풍속화를 소재로 한 ‘길게 쓴 각주’가 목표였다. 기존 연구가 풍속화의 미학과 미술사적 해석에 그쳐온 걸 염두에 두자면, 강명관은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아왔던 ‘스토리의 보물단지’를 꿰찬 셈이다.

“그림은 미학적, 미술사적 관점에서 해독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풍속화는 이미 사라진 사회와 인간의 삶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달리 볼 소지가 적지 않다.”(『조선 풍속사』2 책머리) “단원의 풍속화가 무엇을, 어떤 풍속을, 어떤 사회를 그렸는지 아는 것은 조선시대를 시각적으로 아는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조선 풍속사』1 211쪽)

토막 난 풍속이 좀 아쉽지만, 읽는 재미는 상당하다. 들밥·타작·나무하기·윷놀이·어살(전통 고기잡이)·빨래터·길쌈 등에서 담배 써는 가게, 서당, 활쏘기, 신행길까지 옛사람들 삶이 이야기의 초점이다. 이 책에서도 재확인하지만 조선사회는 정말 물산(物産)이 풍요롭지 않았다. 중국에 비해도 그랬다. 그걸 보여주는 게 음식점·숙박시설을 겸한 주점이 조선 중기까지 별로 없었다는 점이다. 제공하는 서비스도 술·물·땔나무가 전부라서 나그네는 음식·이불을 이고지고 여행을 다녀야 했다.

공무로 출장하는 관리는 꽤 됐다. 그들을 위한 국·공립 여관도 없지 않았는데, 지명에 원(院)이 들어간 곳은 여관 있던 고장이라고 보면 된다. 서울 이태원·홍제원(홍제동)이나 사리원 등이 그곳이다. 조선후기 명승지 유람 붐이 일고, 화폐 사용이 활발해지면서 주막도 늘었다. 그 무렵 들병이, 즉 포장마차의 원조인 이동식 술장수도 등장했다. ‘변강쇠가’의 옹녀가 이걸로 입에 풀칠을 했듯이 역시 풍속의 근본은 먹고 마시기 그리고 남녀상열지사다. 그래서 눈길이 가는 게 기생집, ‘조선의 포르노그래피(春畵)’, 그리고 성생활 이야기다.

일테면 왜 초기 주점은 선술집이라고 불릴까? 당시는 주점은 백 잔을 마셔도 앉은 자리에서 서비스가 안 되는 간이시설 수준이었다. ‘선술집=서서 마시는 집’이란 뜻이 정확하다. 그보다 고급이 앉은 채 마시는 내외주점, 그리고 여성이 노래 부르며 시중드는 색주가 등이다. 색주가는 조선후기 들어 홍제원에 대거 몰려있었다가 남대문 밖, 탑골공원 뒤 쪽으로 번져갔다.

‘조선 풍속사’를 보면 동서고금 어느 사회나 비슷하다는 점도 발견하는데, 일테면 18세기 영조는 재위 50여년 동안 금주령을 내렸다. 그렇다면 미국 금주령의 원조인 셈인데, 당연히 음흉한 함정단속도 비일비재였고, 권력형 술장수인 조선의 알 카포네 등도 활개를 쳤다고 한다. 이 모두가 무심코 넘겼던 풍속화의 디테일 하나하나에서 건져 올려 가지를 쳐나간 흥미로운 스토리다. 저자 특유의 박람강기가 풍요로운 책읽기를 가능하게 한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조우석(문화평론가)



책 읽은 사람이 역사를 만든다는데 … 인류사를 바꾼 명저 50권

 책 vs 역사
볼프강 헤를레스 외 지음
배진아 옮김, 추수밭
335쪽, 2만2000원


고전(古典) 또는 명저(名著)라고 이름 붙여진 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석학 움베르토 에코가 재치 있는 답을 내놓았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책을 읽지 못했는가’란 칼럼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보통 독자들은 일반적 상식으로는 반드시 읽었어야 하는 어떤 책을 읽지 못하였다는 고민에 언제나 사로잡혀 있다.”

대체로 제목은 들어보았지만 제대로 읽지는 못한 책, 나날의 대화에서 ‘아, 그 책’ 하며 아는 척은 하지만 표지조차 구경 못한 책이 또한 고전이자 명저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책 한 권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을 어림해 보면 팔십 평생을 꼬박 독서에 바친다 해도 인류가 생산한 명작을 모두 읽기는 불가능하다.

이런 고민을 웬만큼 해결해주는 책이 일종의 ‘다이제스트’ 선집이다. 내용 요약, 지은이 소개, 역사적 평가 등을 한 자리에 모은 편리한 요점 정리라 할까. 권하고 싶은 독서법이라 할 수는 없지만 세상을 널리 두루 조망하고 싶은 이에게는 때로 길라잡이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맛보기를 하다가 그 중 한 권을 집어 들고 통독할 수 있다면 에코의 이런 말이 격려가 될 것이다. “열 권의 책을 읽든 같은 책을 열 번 읽든, 똑같이 교양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비교적 충실한 선집으로 보인다. 기원 전 2350년경에 제작된 『사자의 서』부터 1997년 출간된 『해리 포터』까지 인류사 변천에 영향을 끼친 50권을 가려 정리했다. 엮은이는 ‘책과 역사 사이에 사람이 있다’고 강조한다. 책이 뭔가를 하기보다는 책을 읽은 사람에 의해 역사가 이뤄진다는 점에 주목했다.

『마오쩌둥 어록』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던 중화인민공화국 사람들은 그의 지시에 따라 행동했다. 전 세계로 흩어져 방랑했던 유대인이 늘 곁에 두고 지침으로 삼은 책이 『구약성서』였다. 조너선 스위프트가 1726년 펴낸 『걸리버 여행기』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나 레이 브래드버리의 『블레이드 러너』에 이르기까지 풍자적 유토피아 소설의 선구자가 됐다.

책은 “일단 세상에 태어나면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그러다가 역사를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 엮은이의 관점이다. 그렇다면 책은 우리 모두가 모셔야 할 노익장(老益壯)이 아닐까.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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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