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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tory] F4의 어게인 2002

“꿈★은 다시 이루어지리라.” 2002년의 월드컵 4강 신화. 애초엔 첫 승이 목표였다. 폴란드를 첫 제물로 만든 밤. 이제 전사(戰士)들은 16강을 꿈꿨다. 이탈리아·스페인의 성벽을 넘어 4강 깃발을 꽂은 날. 꿈은 이루어졌다는 함성이 울렸다. 환청이 아니었다. 4강 디딤돌이었던 첫 승리의 드라마를 일군 ‘4인의 영웅’이 모여 j에게 다시 꿈을 이야기했다. 8년 전 추억이 다시 부활하리라고. 황선홍 부산 아이파크 감독, 유상철 춘천기계공고 감독은 10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메리어트 이그제큐티브 아파트먼트 서울’에서 만났다. 팀 일정 때문에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최진철 강원 FC 코치, 김태영 올림픽대표팀 코치는 같은 질문으로 각각 인터뷰를 해 4인의 대화로 재구성했다.

김준술·박현영·이한길 기자

# 첫 골에 아른거린 아버지 얼굴

j: 2002년 월드컵의 한국팀 첫 경기였던 폴란드전에서 2대 0으로 이겼고 4강 신화가 시작됐습니다. 첫 골을 넣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황선홍: 12년을 기다린 골이었죠. 94년 미국 월드컵 때 골을 넣긴 했지만 경기를 져서 아쉬움이 컸어요. 우리가 승리한 경기에서 넣은 선제골이라 더욱 감격스러웠어요.

j: 골을 예감했습니까.

황: 경기 전날 인터뷰에서 “반드시 골을 넣겠다”고 했죠. 제가 원래 확언을 잘 안 해요. 그 정도로 각오가 비장했던 거죠. 골 기회가 한두 번 올 거라고 생각했고, 그걸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골이 들어간 순간 돌아가신 아버님이 생각났어요. 월드컵에서 잘하는 모습을 못 보여드린 게 늘 걸렸거든요. 경기 끝나고 숙소로 향하면서 문득 하늘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아버님께 “고맙습니다”하고 말씀 드렸죠. 제 능력보단 아버님이 첫 골을 주신 것 같아요.

j: 유상철 선수의 두 번째 골은 골키퍼 손을 맞고도 들어간 강슛이었는데요.

유상철: 막기 어려운 각도는 아니었는데요. 더구나 상대는 세계적인 골키퍼였죠. 고맙죠, 하하. 그때 상황이 수비하러 내려가다가 돌아보니 상대 공격을 중간에 자를 수 있을 것 같단 느낌이 들었어요. 가는 척하다 뚝 잘라서 공을 잡아냈는데 바로 골대가 보였어요. 0.1초쯤 되는 짧은 순간이었죠. 오른쪽으로 찰까, 왼쪽으로 찰까. 아니면 띄울까. 오만가지 생각이 났어요. 순간 ‘일단 골대 안에만 넣자’는 판단이 스쳤죠. 그렇게 마음을 비운 게 제대로 먹혔어요. 골을 꼭 넣어야겠다는 집념이 강했으면 실수했을 겁니다.

j: 슈팅할 때, 발 맛은 어땠나요.

황: 공이 좀 애매한 높이로 왔어요. 논스톱으로 차야 하나, 원 바운드를 시킬까 순간 고민했죠. 바닥에 물기가 있으니 바운드시키면 확률이 떨어질 것 같아 가까스로 노바운드로 때렸죠. 근데 그 순간 공이 슬로 비디오처럼 골키퍼를 피해 날아가는 게 보이더라고요. 공이 발을 떠나는 순간에 골이다, 아니다, 직감이 있죠. 대부분 그 직감이 맞아요. 공이 날아올 때 머릿속에선 속도·스핀·각도·슈팅 성공률이 모두 계산돼요.

유: 공을 잘못 차면 발이 엄청 아파요. 발등이 공을 정확히 때리면 ‘풍선’을 톡 차는 것 같은 느낌인데, 그때 두 번째 골이 그랬죠.

최진철: 지금도 두 선수의 골이 기억에 크게 남아요.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겠구나, 지지 않을 것 같다는 강한 확신이 왔죠.

황: 안팎으론 16강이 목표라고 말했지만, 사실 우리는 48년간 1승도 못 올렸던 팀이었잖아요. 첫 경기를 잡으면 16강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죠. 폴란드전은 경기 내용도 좋았어요. 더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활활 타올랐죠.

j: 이탈리아전에서 권투선수 출신인 크리스티안 비에리가 첫 골을 넣었을 때 최진철 선수가 공중에서 헤딩을 경합했던 장면도 기억납니다.

최: 상대는 헤딩을 잘하는 선수였죠. 제 나름대로 자리를 선점했는데, 힘에서 밀리더라고요. 선제골을 뺏겼지만, 우리가 지겠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다른 선수들이 해줄 거라고 믿었죠. 맞아요. 그땐 서로 그런 믿음이 있었어요.

j: 김태영 선수는 비에리를 밀착 마크하다 코뼈가 골절됐었죠.

김태영: 공중볼을 다투다 팔꿈치로 가격을 당했어요. 쓰러져서 들것에 실려 나갔죠. 일단 솜뭉치로 틀어막았는데, 피가 안 멎고 목으로 넘어가더라고요. 전반전 끝나고 라커룸에서 세수하는데 코가 많이 부었죠. “코가 이상하지 않으냐”고 팀 닥터에게 물었더니 ‘단순 타박상’이라고 해서 후반에 그대로 뛰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코가 골절됐지만 당시 히딩크 감독이 그 사실을 말해주지 않은 거예요. 아마 공격수였다면 교체했을 텐데 수비수는 한 명을 빼면 조직력이 크게 무너지죠. 경기 끝나고 바로 수술 받고 일본에서 전문가가 와서 마스크를 제작했어요. 그래도 히딩크 감독을 원망하진 않았어요. 내가 더 뛰고 싶었기에 전화위복이 된 거죠.

j: 그런 열정에 붉은 악마도 거리를 가득 메운 것 아닐까요.

유: 우리도 깜짝 놀랐죠. 숙소에서 TV로 봤을 때는 ‘응원을 많이 왔구나’ 정도로만 느꼈어요. 그런데 한 경기, 두 경기 계속 이기니 응원단이 점점 늘었죠. 자발적으로, 진심으로 모인 것이라고 생각하니 소름이 확 끼칠 정도였어요.

# 긴장은 승리의 적(敵)

j: 12일에 남아공 월드컵의 한국팀 첫 경기가 열립니다. 후배들이 어떻게 해야 실력 발휘를 할까요.

황: 월드컵이라는 큰 대회에선 심리가 너무 중요해요. 자기 능력을 다 발휘하려면 말이죠. 저는 두 가지 경험을 다 해봤어요. 의욕이 앞서 실수도 해봤고, 승리도 맛봤죠. 즐겁게 축구해야 한다고들 말하는데, 긴장과 즐거움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하는 게 중요해요. 축구뿐 아니라 어느 일이나 그렇지만, 적당히 긴장하고 적당히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하죠. 물론 굉장히 어려워요. 없던 실력이 갑자기 나올 수도 없고요. 가진 능력을 운동장에서 다 보여주려면 심리전에서 먼저 이겨야 합니다.

유: 맞아요. 체력이나 기술보다 심리적 불안감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하죠. 2002년에 월드컵 출전이 처음인 송종국 선수에게 “너무 긴장하지 말라”고 얘기했죠. 그런데 “전 괜찮아요” 하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요즘 젊은 선수들은 굉장히 당차요. 2002년엔 홈 경기라서 마음이 안정됐는데, 남아공은 분위기가 많이 다를 것 같아요.

j: 다른 나라에서 월드컵 열렸을 때 경기장에 서면 어떤가요.

유: 98년 프랑스 월드컵의 네덜란드전 당시 경기장 전체가 오렌지색이었어요. 우리 응원단은 작은 점으로도 안 보였죠. 많이 위축됐어요. 2002년 때는 반대로 응원단이 전부 붉은색이었고요.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도 응원을 많이 오셨죠. 덕분에 원정 1승도 해봤어요.

j: 경기 전에 긴장감을 다스리는 노하우가 있나요.

황: 음악을 듣고 책을 봐요. 경기를 앞두고 수만 가지 생각이 들거든요. 저는 세 번의 월드컵을 잘 치르지 못했고, 1승도 못했으니 스트레스가 많았죠. 하루에도 수없이 ‘골을 넣을 수 있다, 아니 못 넣을 거다, 넣을 수 있다’ 마음속에서 이랬죠. 2002년엔 팬이 선물해 준 『좋은생각』이란 책을 자주 읽었어요. 작은 데서 행복을 찾는 내용인데 마음이 절로 편해졌죠. 또 신나고 유쾌한 음악을 들으며 해운대 앞 바닷가도 산책했고요.

유: 저는 잠자리에 누워요. 그리고 잘했던 경기를 머릿속에서 테이프 돌리듯 계속 돌려 보죠. 골 넣는 장면 같은 것들 말이에요. 그때 제가 어떻게 했는지, 되풀이하면서 좋은 생각을 해봐요. 이렇게 만반의 준비가 된 상태에서 라커룸에 들어가면 운동장으로 막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들죠.

김: 부담감을 갖고 그라운드에 서면 좋은 경기는 안 나와요. 이런 마음을 떨치는 게 가장 중요하죠. 저는 경기 전에 워밍업을 평소보다 세게 해서 마음을 다스려요. 이열치열이라고 할까요. 스프린트나 점프를 하면서 땀을 많이 흘리면 마음이 안정되죠.

최: 저는 되뇌곤 합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모자란 부분을 다른 동료가 채워줄 것이다’라고요. 아주 큰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웬만한 실수는 동료들이 커버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면 경기를 편하게 풀어갈 수 있어요.

# ‘히딩크 리더십’ 밀착 마크해보니 …

j: 2002년 미국전에서 황 감독은 ‘붕대 투혼’을 발휘했는데요.

황: 상대 선수와 부딪히고 넘어졌어요. 좀 아프긴 했지만 늘 있는 일이니 괜찮겠지 했죠. 그런데 피가 굉장히 많이 나서 속으론 당황스러웠어요. 그런데 치료를 받으며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선수들도, 팬들도 미국전은 우리가 우세할 것으로 봤는데 의외로 경기가 안 풀렸거든요. 최고참인 제가 붕대 감고 더 열심히 뛰면 동료들에게 자극이 되겠단 생각이 퍼뜩 들었어요. 처절하게 보이기 위해서, 하하. 일종의 백의종군이죠.

유: 같은 팀 동료가 다쳐서 피를 보면 선수들은 마음이 굉장히 많이 움직여요. 어떻게 보면 바로 그게 팀워크죠. 우리 가족이 나가서 다쳐 오면 안에서 부글부글 끓지 않겠어요. 그거랑 비슷해요.

j: 2002년 월드컵을 얘기하면서 히딩크 감독을 빼놓을 수 없겠죠. 가까이에서 본 그의 리더십은 어땠나요.

황: 미국과 평가전을 치르려고 훈련할 때였죠. 고참인 제게 유난히 질책을 많이 했어요. 별로 잘못한 상황이 아닌데도요. 끝나고 따로 부르더니 “어린 선수들 때문에 그렇게 했으니 이해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미국과의 기싸움에서 지지 않도록 선수들을 다잡기 위해 일부러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 제가 자주 쓰는 방법 중 하나죠. 반대로 혼내야 할 때 아무 말 안 하고 넘어갈 때도 있어요. 선수들과 보이지 않게 밀고 당기기를 잘하는 것, 그게 리더십인 것 같아요.

김: 오랜 기간 합숙훈련을 해서 지쳐갈 때였죠. 제주도 전지훈련 때 2박3일인가 가족들을 초대하게 허락했어요. 모두 부인과 아이들, 여자친구까지 불렀죠. 긴장감이 높아가던 때에 선수들에겐 큰 힘이 됐어요.

황: 맞아요. 그건 전례가 없던 일이었죠.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제가 감독이 되고 그건 안 따라 해요. 제 스타일은 아니라서요, 하하.

최: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의 심리 파악에 능했어요. 선수들이 뭘 원하는지, 어떤 상태인지 잘 관찰했죠. 그래서 실력보다 120%를 발휘할 수 있게 해줬고요. 식사 중에 몇 번씩 눈이 마주친 적이 있어요. 저를 관찰하는 거였죠. 그는 훈련 스케줄도 미리 공개하지 않았어요. 언제 훈련이 소집될지 모르니 식사량부터 매사를 조심하면서 긴장을 늦추지 않게 되더라고요.

황: 한번은 박항서 코치께 여쭤봤어요. 왜 훈련시간을 안 알려주느냐고요. 대답이 “알려주면 거기에 맞춰 선수들이 스케줄 짜느라 바쁘다”는 거예요. 휴식시간에 뭘 할지 생각하느라 훈련에 집중을 안 한다는 거죠. 긴장감을 유지하게 만드는 방법 중 하나였어요.

김: 히딩크 감독은 “한국 선수들이 순하다”고 했어요. 더 독해져야 한다는 주문이 뒤따랐죠. 몇몇 선수에겐 자극적으로 건드려 폭발하게 하는 방식으로 지도했어요. 선수 개인의 성향을 파악해서 판단을 내리는 스타일이었습니다.

# 좌절을 넘을 때 꿈은 다가온다

j: 네 분 다 지도자인데, 후배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게 무엇인가요.

황: 축구는 인성이 우선해야 합니다. 팀에 제대로 속해 있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나도 좋은 선수가 될 수 없죠. 기술적으론 패스를 굉장히 우선시해요. 수비는 성실하고 때로는 터프할 정도로 적극적이게, 공격은 가지고 놀 듯 즐기면서 해야죠. 또 경기 상황마다 뽑아낼 카드가 많아야 해요. 어려운 상황이 분명히 오기 때문에 그걸 잘 다스리는 게 감독의 역할이에요.

유: 지도자는 진짜 어려워요. 선수들 각각의 성향과 스타일을 모두 머릿속에 입력해야 돼요. 인내심을 갖고 반복해서 가르쳐야 하고요. 지도자 교육 때 보면 ‘선수한테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격언이 있어요. 계속 관심을 주고 칭찬하고 관찰하고 동기를 줘야 해요. 유소년과 고교생을 가르쳐 봤는데 처음엔 제 눈높이에 맞춰 “야, 그게 왜 안 되는 거야”라고 다그치면서도 제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그러다 제가 고교 땐 어땠을까 역으로 생각했죠. ‘나도 그때 그랬구나’하고 되짚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집중을 안 하면 혼을 내지만, 계속 다그치진 않아요. 저도 배운 거죠.

김: 저는 선수들에게 ‘막힌 사고를 하지 말라’고 늘 얘기해요. 하나를 배우면 둘, 셋을 스스로 터득해야 하죠. 지도자들도 선수들의 이런 역량을 끌어내야 하고요.

최: ‘다음에 최선을 다하면 더 잘하겠지’라는 생각은 금물이죠. 후배들에게 지금 최선을 다 못했는데, 다음 기회가 보장되진 않는다고 가르쳐요.

j: 꿈을 이루려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황: 먼저 목표를 명확하게 세워야죠. 다음엔 그것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성실하게 단련해야 돼요. 그 중간에 좌절의 순간이 올 겁니다. 이때 좌절의 벽을 뛰어넘느냐 못 넘느냐가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고 봅니다.

유: ‘꿈’이란 잠을 자면서도 누워서 그냥 꿀 수 있는 거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이게 4강 신화 경험으로 얻은 꿈에 대한 제 생각이에요. 인생의 골대를 향해 덤벼들어야 하고, 인내라는 두 글자를 가슴에 새기는 거죠. 그때야 비로소 꿈은 이루어집니다. 

최진철·황선홍·김태영·유상철(사진 왼쪽부터)이 ‘황선홍 밴드’를 결성했다.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한 후배들을 응원하는 내용의 TV 광고 속에서다. 광고 촬영 현장에서 네 명이 재미있는 표정을 짓고 있다. [제일기획 제공]



j 칵테일 >> 지성·주영·청용아 믿는다, 한국 축구 힘을 보여다오

황선홍 감독은 “2002년의 ‘4강 신화’는 첫 승을 올림으로써 가능했다. 그때부터 자신감이 붙었다”고 밝혔다. 유상철 감독과 최진철·김태영 코치도 같은 얘길 했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은 어떨까. 그라운드를 속속 꿰고 있는 4인방이 속내를 풀어 놓았다.

황: 16강까지 갈 것 같아요. 무엇보다 첫 경기인 그리스전을 잘 치러야 해요. 그리스 수비가 스리백일지 포백일지 모르지만 수비가 굉장히 강하고 선수들 신장이 높아요. 그들이 장기를 발휘하지 못하게 후배들이 먼저 차단하는 게 중요해요. 그리스를 잡으면 16강 목표의 7~8부 능선은 넘는 거죠.

유: 2006년 대표팀은 어딘가 모르게 균형이 안 잡힌 느낌이었어요. 제가 점쟁이는 아닌데 그때보다 예감이 좋아요. 박지성·박주영·이청용 등 23명의 선수가 예선전·평가전에서 보여준 팀 내 조화가 그렇습니다. 그리스전에서 비기거나 지면 쫓기게 되고 급해져 제 실력을 못 보여줘요.

최: 직접 부딪치기보단 빠른 전술로 대체하는 게 좋을 겁니다. 영리하게 플레이하면 체격이 큰 선수들이 오히려 불리해요.

김: 우리 선수들도 몸싸움에서 이젠 강해졌어요. 밀리지는 않을 겁니다. 부담감을 갖고 들어가면 좋은 경기가 안 나와요. 그리스전에선 먼저 부담감부터 떨치는 게 가장 중요해요.

황: 월드컵에서 쓸 수 있는 전술이 많진 않아요. 수비를 튼실히 하는 게 좋은데, 그리스가 주로 그 방법을 써요. 경기가 박진감 있거나 많은 득점이 나진 않을 겁니다. 결국 누가 더 인내심을 갖느냐가 승부를 가를 거예요.

>> 태극전사 응원 위해서라면 춤인들 노래인들 못 할까요

‘대~한민국’ 함성은 2002년의 아이콘이었다. ‘꼭짓점’ 댄스는 2006년의 대세였다. 그렇다면 올해 월드컵에서 장안의 화제는?

단연 ‘황새춤’이다. 황새는 황선홍 감독의 별명. 그와 유상철 감독, 최진철·김태영 코치는 최근 광고에 나와 ‘승리의 함성’ 응원가에 맞춰 팔·다리를 올리는 춤으로 인기다. “후배들을 응원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었다”는 그들. 촬영 뒷얘기를 들어봤다.

황: 원래 제가 굉장히 노래를 못해요. 밴드를 결성한다니 겁부터 덜컥 났어요. 광고 시리즈가 원래 시안과 상관없는 실수한 장면을 많이 넣었거든요. 그런데 주위에서 ‘완벽한 것보다 어설픈 게 재미있다’고 하더라고요.

유: 촬영할 때 기타도 잡았는데 연주했던 밴드는 따로 있고 우리는 흉내만 냈죠 뭐. 처음엔 ‘악기를 조금씩 배워야 한다’고 하기에 ‘와 이걸 어떻게 다루나’ 했죠. 그러다 손동작 정도 취하는 것으로 정리됐어요. 다른 광고라면 안 나섰을 거예요. 후배들 응원 메시지를 전파한다는 취지에 고개를 끄덕였죠. 근데, 자꾸 코믹으로 가고 이래서 참.

j: 최근 광고 중에 최진철 코치가 노래 못하는 부분을 집중 편집한 게 인기였다. 네티즌은 ‘발창력(발로 부른 가창력) 최진철’이라며 화제에 올렸다.

최: 아, 그 얘기 정말 싫어요. 그런 내용이 시안엔 없었어요. 있었다면 절대로 안 찍었을 겁니다. 제 노래 실력을 국민이 다 알게 됐어요.

김: 두 번째 촬영이 노래하는 내용이었는데 최진철 코치가 부르는 대목이 있잖아요. 모두 그걸 듣고 배꼽을 잡았어요. 이번에 광고를 찍고 나서 길 가면 사람들이 저를 힐끔 쳐다봐요. 그런데 정확히 누구인지 몰라보고 갸우뚱하는 사람이 많아요. 이런 얘기를 홍명보 올림픽팀 감독에게 했더니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2002년 월드컵에서 코 부상으로 제가 마스크를 썼던 사건을 떠올리면서요. “그러게, 태영아 너는 항상 마스크 쓰고 다니라니까. 사람들이 쉽게 알아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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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