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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월드컵, 통합의 시너지 보이자

월드컵의 열병이 시작됐다. 지구촌 68억 명의 눈이 한 달간 한 곳에 쏠린다. 둘레 69cm에 무게 430g가량의 공, 자블라니다. 축구의 묘미는 단순성과 원시성이다. 이런저런 장비가 필요 없다. 그저 공 하나만 있으면 된다. 여기에 펄펄 뛰는 심장과 두 발만 있으면 족하다. 잔디구장은 ‘아프리카 이브’의 자손이 처음 내달리던 초원일 터다. 그런 점에서 이번 월드컵은 인류 원초의 땅에서 벌이는 원초적 경기란 의미가 있다.

더불어 남아공 월드컵은 문명사적 의의도 있다. 아파르트헤이드(인종분리정책)란 분열과 대립의 족쇄를 끊어낸 땅인 것이다. 그 원동력이 축구였다. 케이프타운 옆 로벤 섬 교도소에서 수감자들은 자신들의 축구리그를 시작했다. 이를 통해 평등의 가치와 협동의 힘을 깨달았다. 당시 축구팀의 주장이 현 제이컵 주마 대통령이다. 열렬한 축구 팬인 만델라 전 대통령도 여기에 갇혀 있었다. 그는 월드컵 개최지로 남아공이 선정되자 “아프리카의 호스트 국가로서 개최의 명예를 받았다”고 했다.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대회라는 뜻이다. 마침 우리와 맞붙는 나이지리아를 비롯해 아프리카 17개국이 독립 5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역동성과 불안정성이 공존하고 있다. G20 국가인 남아공은 민주화 이후 매년 2~5%의 경제 성장을 보이고 있지만, 실업률이 24%가 넘는다. 지난해엔 1만8000건의 살인사건이 났다. 그럼에도 이들 모두가 더불어 미래를 꾸려가야 할 나라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월드컵이 으레 그랬듯이 이번 대회도 첨단기술 경연장이다. 자블라니에는 3D 기술이, 축구화에는 인체공학이, 셔츠엔 신소재가 사용됐다. 아디다스 때문에 ‘독일제 신발로 독일제 공을 차는 경기’란 말도 나온다. 가장 단순했던 경기가 첨단 과학과 자본주의 마케팅의 쇼 케이스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거친 숨소리와 근육과 땀이 만들어내는 경쟁의 원초성은 그대로다. 아마도 축구 종주국 영국에 ‘마누라는 바꿔도, 팀은 못 바꾼다’는 말이 있는 것은 그 집단적 속성을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일까. 축구가 그 어떤 경기보다 내셔널리즘 성격이 강한 것은.

여하튼 동과 서, 흑과 백, 빈부가 한데 어우러진 축제 한마당이다. 여덟 번째 본선 진출한 태극전사들도 2002년 영광 재현을 위해 휘슬을 기다리고 있다. 전국 곳곳은 또 붉은 물결이 넘실대고, 선수들의 표정과 몸짓에 탄성을 지를 것이다. 여기엔 동쪽과 서쪽이 없다. 강남과 강북도 없다. 너와 내가 모여 우리가 있다.

그해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은 4강에 올라서만이 아니다. 전국을 물들인 붉은 셔츠, 그리고 ‘대~한민국’이었다. 다이내믹한 에너지, 통합의 시너지에 세계 만방이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이다. 흩어지고 갈라졌어도 큰 일이 닥치면 한 뜻으로 뭉쳤던 우리다. 금 모으기가 그렇고, 한·일 월드컵이 그랬다. 국내적으로도, 세계적으로 힘든 때다. 다시금 합심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자, 선수들은 나가서 즐겨라. 우리는 마음껏 응원하리라. 다시 한번 ‘대~한민국’이다.

박종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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