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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산책]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창작품이다

제가 머무는 곳은 작지만 꽃이 피면 늦가을까지 여기저기에서 꽃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성당입니다. 이름 없는 작은 꽃에서부터 봄을 알리는 벚꽃, 초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보랏빛 등나무 꽃 그리고 한여름 능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꽃들이 피어납니다. 무성한 은행잎의 짙은 녹색을 배경으로 피어나는 꽃들이 있어 몸은 도심의 아스팔트에 머물지만 마음은 늘 꽃길을 거니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다른 꽃은 괜찮지만 능소화가 피어날 때면 조금 걱정이 앞서고는 합니다. 눈으로 보기는 좋지만 만지면 그리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칫 손으로 꽃을 만지다 눈을 만지기라도 하면 그 독성으로 인해 잘못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해서 해마다 능소화가 피어나면 눈으로 보시되, 손으로 만지지는 말라고 공지하고는 합니다. 화려한 것일수록 멀리 바라다보는 것이 지혜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피어나는 꽃이 능소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지방선거가 끝났습니다. 당락을 떠나서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이 땅에 구현하기 위해 애쓰신 모든 후보자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예전에 모 국회의원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아직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고개 숙여 본 적이 별로 없는데, 선거에서 하도 인사를 해서 평생 받아온 인사를 몇 배로 갚은 기분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는 전봇대에도 인사하는 자신을 보며 웃었다는 뒷이야기였습니다. 한 표를 얻기 위해 그렇게까지 애써야 하는 현실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마음으로 국정에 임해주기를 바랐었습니다. 사람들은 정의를 원하지만 정의롭지는 못하고 법과 원칙이 지켜지기를 바라지만 자신에게 적용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래서일까 정치인이나 선거 때만 되면 등장하는 각종 구호들이 말의 신뢰를 심각하게 떨어뜨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림=김회룡 기자]
개인적으로 정의를 구현하겠다는 사람의 말을 많이 신뢰하지 않습니다. 정의는 인간이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만이 세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인간은 그 정의롭지 못한 상황에 대해 고발하고 저항할 수 있을 뿐입니다. 법과 원칙을 강요하는 사람은 더더욱 믿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법과 원칙을 밥 먹듯이 어긴 사람일 확률이 높고 법과 원칙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법과 원칙을 강조한 시대 치고 역사적으로 공권력이 폭력으로 자리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것을 보면 그 법과 원칙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이 잘 정리 정돈된 논과 밭처럼 되어갈 것이라는 환상부터 버려야 합니다. 삶이란, 세상이란 늘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들의 연속일 뿐입니다. 세상이 정의롭기를 바랄 수는 있지만 정의롭게 될 수만은 없다는 것, 잘 통제된 세상이 가장 좋은 세상이라는 환상은 인간을 동물처럼 사육할 수 있다는 대단한 만용과 교만이 만들어내는 환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느 시대도 갈등과 혼란이 없었던 시절은 없습니다. 다만 그 갈등과 혼란 속에 몸을 던지기보다는 그 혼란 속에 깃든 역사적 사명이 무엇인지를 먼저 숙고함으로써만 하느님 편이 될 것인지 세상 편이 될 것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정의와 법과 원칙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고인이 되신 김수환 추기경님이 큰 산으로 다가오는 까닭은, 그분에게서 어떤 원칙이나 정의를 본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은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것이고 무엇이든 이해 못할 것, 용서 못할 것이 없는 것이 세상입니다. 사람이 그 모든 정의보다 법이나 원칙보다 더 귀하고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법이나 원칙, 정의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분이 아니라 사람, 당신조차 거부하는 그런 사람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람을 사람으로 대할 수 있는 세상이 그래서 가장 살아보고 싶은, 가장 살아볼 만한 세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을 사는 현대인을 ‘화려한 거죽의 밑바닥에 조용한 절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말한 이가 있습니다. 늘 화려하지만 마음은 늘 감출 수 없는 절망으로 겉도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 모습이라는 뜻일 겁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불안과 절망 앞에 헛된 기대와 과도한 희망에 스스로를 속이고 속으며 사는 듯이 보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서 누군가의 손을 빌려 행복해 질 수 있다는 헛된 기대가 두꺼운 절망의 이불을 뒤집어쓰게 만드는 원인이라는 사실을 간과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행복은 셀프일 수밖에 없고 부딪쳐 만들어 가는 창작품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해마다 피어나는 능소화를 보고 있으면 그래서 화려한 것일수록 멀리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새삼 다지고는 합니다. 화려한 공약에 헛된 기대를 걸었다면 능소화를 생각해 보면 좋을 듯싶습니다. 멀리서 바라다보는 것은 좋을지 몰라도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잡으려 하면 치명적인 독성이 나를 해칠지 모릅니다. 멀어지기에는 꺼림칙하고 가까이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것이 많겠지만 그중 하나가 권력이라는 생각은 지울 수 없습니다. 해서 너무 멀리도 너무 가까이도 그렇다고 무심하지도 그렇다고 집착하지도 않는 우리 삶이었으면 합니다. 행복은 셀프이고 우리의 행복은 선물이 아니라 부딪쳐 가며 만들어 가는 창작품이라는 말처럼 능소화와 같이 화려한 거죽을 좇다가 조용한 절망에 자리하기보다 부딪쳐 가며 만들어 가는 창작품이 우리 모두의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글=권철호 삼각지 성당 주임신부

그림=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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