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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Insight] 문화 즐기고 싶은 샐러리 맨 마음 읽었다, 밤에도 여는 모리미술관

모리미술관 난조 후미오 관장
사람들을 미술관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이 남자를 찾아가라. 일본 도쿄 롯폰기 힐스의 모리미술관(森美術館)을 이끌고 있는 난조 후미오(南條史生·61) 관장이 그다. 개관 7년 만에 연 관람객 수를 200만 명으로 끌어올려 손님몰이의 달인으로 불리는 그에게 비결을 물었다. 6일 경기창작센터 멘토링 프로그램 초청 연사로 한국에 온 난조 관장은 이튿날 경기도미술관에서 ‘아시아 미술의 현장’을 주제로 일반인을 위한 특별강연도 했다. 그 틈을 타 ‘친절한 난조씨’를 만났다.

정재숙 문화 선임기자

● 2003년 10월 18일 모리미술관 개관 기념식에서 인사한 게 엊그제 같은데…. 세월은 당신을 비껴간 것 같다. 모리가 도쿄 하면 생각나는 일종의 랜드마크 미술관으로 성장한 걸 진심으로 축하한다.

“고맙다. 7월 4일까지 모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 ‘롯폰기 크로싱 2010’의 제목이 ‘예술은 가능한가(Can there Be Art)?’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이 어떤 상황에서든 ‘예’라는 믿음으로 우리는 일해 왔다. 미술관은 예술과 삶을 연결하는 다리이자 놀이터가 아닐까.”

● 전 세계 미술관 관계자들이 모리미술관을 부러워한다. 모리만의 숨겨진 전략이 있을 텐데. “간단하다. 관람객 편에 서는 것이다. 우리는 전시 기간 중 문을 닫지 않는다. ‘아침 열 시부터 밤 열 시까지(ten to ten)’ 연다. 직장인이 퇴근한 뒤 그림 감상을 할 수 있도록 5시 이후 프로그램을 강화했다. 통계를 내보니 오후 7시에 관람객이 몰렸다. 그래서 사람들 머릿속에 ‘아, 이 미술관은 늘 늦게까지 문을 여는구나’ 각인시켰다. 이 한 가지 원칙만으로 롯폰기 힐스 지역에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한 셈이 됐다. 느긋하게 저녁밥을 먹고 편안한 마음으로 문화생활을 즐기고 싶어 하는 시민들의 마음을 읽었을 뿐이다. 단 하루, 화요일만 오후 5시에 문을 닫는데 이날도 밤에는 후원자 모임 등을 진행한다.”

● 대중 친화적인 프로그램 개발도 큰 힘이 된 것 같다.

“대체로 일반인은 ‘난 미술을 잘 몰라’ 하기 쉽다. 그들 손을 잡아줘야 한다. 모리미술관은 다양한 ‘커뮤니티 아트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작가와 대화하는 토크쇼, 전문 교육을 받은 해설자가 안내하는 가이드 투어, 전시를 폭넓게 소개하는 심포지엄 등 매일 행사가 열린다. 모든 출판물과 오디오 가이드를 최소 2개 언어 이상으로 마련한다. 심포지엄은 동시통역은 물론, 수화 통역도 늘 붙는다. 작가들과 협의해 관람객 누구나 전시물을 사진 찍어 인터넷에 올릴 수 있게 했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미술을 사람들과 친하게 하는 것이 우리 목표다.”

● 모리미술관은 일본의 유명한 부동산 개발회사인 모리 주식회사가 주인이다. 주인장의 간섭은 없는지 궁금하다.

“미술관을 세운 뒤 기업 모리(森)에 대한 일본인들 호감도가 급상승했으니 주인으로서도 밑지는 장사를 한 건 아니다. 내가 미국 뉴욕의 현대미술관 예를 들며 미술관도 자체 땅이 있어야 적자 안 보고 운영할 수 있다고 건의하자 모리 대표가 이렇게 말했다. ‘그건 내 일이고, 당신은 당신 일이나 하시죠’라고. 이 말처럼 미술관 프로그램이나 운영에는 일절 ‘노 터치’다. 전권을 주고 밀어준다. 다만 예산이나 인사 문제, 행정 처리 등에서는 모리 주식회사의 지도와 관례를 따른다. 따라서 미술관이 파산하더라도 그건 모리 주식회사의 책임이니 나로선 얼마나 홀가분하겠는가.”

● 최근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지만 일본 경제 상황이 어렵다. 미술계에도 그 여파가 미칠 수밖에 없을 텐데. “일본은 경기가 죽었다며 어떤 이는 관광산업을 더 육성하자고 주장한다. 음식 문화나 온천 여행에 주력하자는 식이다. 난 생각이 다르다. 교토나 나라 같은 도시를 어찌 다시 만들겠는가. 지금은 현대 문화, 말하자면 모리미술관이 전시로 보여주는 것 등 다양한 문화 행위를 바탕으로 새로운 교토나 나라를 만들어야 할 때다. 그것이 일본 미래의 자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21세기에 들어서며 아시아 미술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당신은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 커미셔너, 98년 영국 터너 프라이즈 심사위원, 2001년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아트 디렉터, 2006년과 2008년 싱가포르 비엔날레 아트디렉터 등을 지낸 아시아 현대미술 전문가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는 비엔날레(격년제 국제미술전), 아트 페어(미술견본시장) 등에 예술감독이나 단골손님으로 초대받으며 현장에서 느낀 점을 말해 달라.

“예술은 경쟁이 아니지만 미술사가 오랫동안 서구 위주로 진행되고 평가된 건 사실이다. 이제 바람이 아시아로 불고 있다. 아시아 미술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질감이 단단하고 두꺼운 구름이 형성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국· 일본·중국의 작가들이 각기 좋은 작품을 발표하고 시장에서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대중이 자기 나라 작가들의 작품을 사랑하고 나아가 이웃한 아시아 미술인을 발견하게 되면 그 인식의 구름이 묵직해지면서 유럽이나 미국에 비를 뿌리는 날이 올 것이다. 즉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이 서구의 미술관이나 화랑에 밀고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본다. 나는 지금이 그 전야(前夜)라고 판단하고 있다. 회갑을 기념해 낸 책 제목을 『질주하는 아시아』라고 붙였을 만큼.”

●이 지점에서 예술가, 전문가, 일반인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더 많은 화랑, 더 많은 미술관, 더 많은 비엔날레와 아트 페어가 생겨야 한다. 제어하는 건 게임에서 지는 거다. 인터넷에 제공되는 그 무수한 공짜 정보가 제각기 자기 영역을 살리며 공존한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삶과 세상을 새 틀로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미술활동은 얼마든지 나와도 좋다. 미술 지도자, 아트 매니저, 예술 행정가를 많이 길러내야 한다. 핵심은 교육이다. 현역에서 은퇴한 뒤 나는 자유로운 처지에서 교육자가 되고 싶다. 나의 경험을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다. 아주 재미있게. 모든 게 다 재미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나? 삶이든, 미술이든, 교육이든 펀 펀 펀(fun fun fun) 행진해야 한다.”



SERICEO<삼성경제연구소 지식사이트>가 분석한 성공 비결

◆ 시간과 공간의 역발상

모리미술관은‘야간 미술관’이라고 불립니다. 화요일을 제외하고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일주일 내내 문을 엽니다. 바쁜 직장인과 여행객을 위한 배려지요. 임대료가 가
장 비싸다는 52층과 53층에 자리잡고 있는‘고층 미술관’이기도 합니다. 보통1층에 미술관이 있는 것과비교하면 대단한 파격이지요. 옆의 사진처럼 한밤중인데도 많은 사람이 줄지
어 미술관을 찾는 모습이이색적입니다. 도심 고층빌딩에 위치한 색다른 공간과 관람객을 고려한 운영시간은 모리미술관 경쟁력의 요체가 됐습니다.

◆ 빌딩 앞 대형 조각 등으로 관람객 흥미 끌어


고층에 있는 미술관이라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빌딩 주변에 관람객의 흥미를 끌 수 있는 거대한 예술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정문 앞에 거미 조각상(루이스 브루조아의 ‘마망’)을 설치하는가 하면 벽에는 숫자가 점멸되는 대형 전광판 같은 작품 등을 배치했어요. 이와 같은 독특한 컨셉트로 사람들은 도쿄에 오면 모리빌딩을 봐야 하고 모리빌딩에 가면 모리미술관을 들러봐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거장의 작품 중시하는 기존 미술관과 달리 현대미술 전시


미술관은 보통 중세시대 작품이나 거장의 작품을 전시하려 합니다. 현대미술을 다루는 미술관은 흥행에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중세나 근대 미술의 경우 일반인도 학창 시절 미술 시간에 경험한 기억이 있거나 미디어를 통해서도 들어본 적이 많습니다. 자신이 아는 역사적인 작품을 직접본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고객 니즈로 인해 흥행을 고려하면 유명 작품의 기획전시를 선호할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모리미술관은 미술·건축·디자인·사진 등 장르와 매체를 가리지 않고 현대미술을 다루고 있습니다. 왼쪽 사진은 최근에 전시된 제프리 데이치의 바보들의 축제(Fest of Fools), 오른쪽 사진은 애니메이션 비디오 작품 정지화면 Zsa Zsa Zsu.

◆구전 효과를 노린 프로그램


시각장애인이 비싼 조각품도 직접 손으로 만지고 느낄 수 있도록 ‘귀와 손으로 보는 예술’이라는 이벤트를 열었습니다. 옆의 사진은 지난해 중국 출신 아티스트 아이웨이웨이의 작품전 ‘무엇에 의해서?’를 관람하고 있는 시각장애인입니다. 예술을 느끼는 시각
장애인의 모습이 즐거워 보입니다. 또 택시회사에 직접 제안해 운전기사 41명을 초청하는 기획 프로그램을 열었습니다. 이들은 매일 만나는 고객에게 자연스레 모리미술관 이야기를 하겠지요. 그래서 구전 마케팅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상 238m ‘천국과 가장 가까운 미술관’

시각장애인도 감상할 수 있는 ‘눈높이’ 배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파리의 루브르 미술관처럼 세계 대도시에는 도시의 얼굴과 같은 대표 미술관이 있습니다. 일본의 도쿄는 우에노 국립미술관(연면적 7만1769㎡)이 오랜 기간 대표 미술관의 자리를 차지해 왔습니다.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미술관이었기 때문입니다. 국보 91점, 중요문화재 618점 등 소장품만 해도 11만 점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우에노 국립미술관을 누르고 새롭게 도쿄의 얼굴로 떠오르는 미술관이 있습니다. 롯폰기 힐스에 위치한 모리미술관(연면적 2만4403㎡)입니다. 2003년 문을 연 모리미술관은 입장객 수가 2008년 123만 명, 지난해에는 180만 명에 달했습니다. 2008년 우에노 국립미술관의 관람객 수는 150만 명이었습니다. 불과 7년밖에 되지 않은 미술관이 140년 전통의 국립미술관을 앞서 어떻게 도쿄의 랜드마크가 된 것일까요. 모리 미노루 모리부동산 사장과 난조 후미오 모리미술관장이 성공의 주역입니다.

우선 이들은 공간과 시간에 대해 대담하게 역발상을 했습니다. 모리미술관이 있는 모리타워는 2003년에 준공된 복합공간입니다. 모리타워가 있는 롯폰기 힐스는 재개발 이후 상주 인구 2만5000명, 유동인구 평일 5만 명, 주말 10만 명에 이르는 도쿄의 핵심 지역으로 부상했습니다. 특히 모리타워는 높이가 238m에 달해 250m의 도쿄타워 특별전망대와 비슷합니다.

이 빌딩 소유자인 모리부동산의 모리 사장은 이런 곳에 과감히 미술관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도쿄 전역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공간에 미술관이 있다면 시내 전망과 미술작품을 동시에 볼 수 있고, 도쿄타워보다 더 유명한 명소로 떠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죠. 하지만 50층이 넘는 고층 미술관은 1층 길가에 위치한 일반적인 미술관에 비해 대중이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아예 ‘천국과 가장 가까운 미술관’이라는 홍보 개념에 착안했습니다. 또 빌딩 주변에서부터 관람객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거대한 장치를 고안해 냈습니다. 직경 9m, 높이 10m의 거대한 거미 조각상을 설치하는가 하면, 빌딩 벽이나 기둥에 전시하고 있는 작품 사진을 크게 붙였습니다. 모리미술관의 또 다른 별칭은 ‘야간 미술관’입니다. 5시만 되면 닫을 준비를 하는 일반적인 미술관과 달리 모리미술관은 화요일(오후 5시)을 제외하고 일주일 내내 밤 10시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바쁜 직장인과 시간이 촉박한 여행객에게 여유 있게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죠.

이들은 관람 방식도 차별화했습니다. 높은 위치 이외에 모리미술관의 약점은 또 있었습니다. 대형 미술관임에도 불구하고 현대미술 전시를 고집한 것입니다. 입장료가 주 수입원인 미술관은 보통 중세시대의 거장이나 피카소·고흐처럼 지명도가 높은 근대 예술가의 대형전시를 기획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인은 현대미술에 대해 작품의 의미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어 관람을 기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리 사장과 난조 관장은 기존 미술관과 차별화하기 위해 장르와 매체를 가리지 않고 현대미술을 다루기로 결심합니다. 대신 이들은 색다른 작품 설명 방식을 택했습니다. 가이드가 작품에 대한 교과서적인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기보다 작품에 대한 순수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관람객의 생각을 되묻는 방법으로 진행을 하는 것입니다. 모리미술관에는 의류회사 사장, 대학생, 신문기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일반인 가이드 28명이 포진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방식입니다. 미술관은 소수의 애호가가 아니라 예술을 잘 모르더라도 관심이 있는 일반인을 타깃으로 해야 하고, 그에 맞춰 눈높이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생각. 이것이 바로 모리미술관의 성공요인이었던 것입니다.

모리 미노루 모리부동산 사장(왼쪽)과모리 요시코 모리재단 이사장.
이들은 또 미술 애호가가 아니라 일반적인 이야기꾼 ‘서포터 스태프’를 만들어냈습니다. 난조 관장은 운전기사 41명을 초청하는 기획 프로그램을 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미술관에 대한 신선한 충격과 깊은 인상을 받은 운전기사는 일하면서 손님에게 모리미술관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게 됩니다. 매일 수십 명씩 만나는 다른 직업이나 다른 환경, 다른 취미의 사람에게 구전 마케팅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2007년과 2009년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도 준비했습니다. 시각장애인이 그림 속 인물에 대해 물어오면 가이드가 작품과 같은 표정을 직접 지어 장애인이 직접 손을 대서 느낄 수 있게 배려했습니다. 기존 미술관이 특별한 전시를 기획했다면 모리미술관은 ‘특별한 사람’을 위한 전시를 통해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하송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

SERICEO(www.sericeo.org)는 삼성경제연구소(SERI)가 운영하는 경영자들을 위한 온라인 지식서비스 사이트입니다.



j 칵테일 >> 난조 후미오에 대해 알고 싶은 몇 가지

○ 난조 관장은 페미니스트?


난조 후미오는 게이오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뒤 전공을 바꿔 같은 대학에서 미학과 미술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런 만큼 경영에 밝다. 그가 큐레이터(미술관 학예연구원)들에게 ‘예산을 초과하지 말고 복잡한 법률사항을 깔끔하게 해결할 것’을 강조하는 배경이다. 1990년부터 2002년까지 그가 운영한 ‘난조&어소시에이츠’(2003년부터는 N&A로 개명)는 현재 일본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미술행정가를 길러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문하생 대부분이 여자라는 게 특이하다. ‘팔레 드 도쿄’의 마키 아키코 관장, 요코하마미술관의 오사카 에리코 관장 등 일본 미술계를 누비는 핵심 큐레이터와 아트 디렉터 중 상당수가 난조 관장과 함께 일했던 여성들이다. 2008년 4월 아오모리현 도와다시(十和田市)에서 개관한 도와다시 현대미술관 프로젝트도 ‘N&A’ 작품이다. 난조의 이런 인맥을 보고 사람들이 그를 페미니스트라 생각하지만 합리적인 신사일 뿐 여성주의자는 아니다. 독립 큐레이터로 시작해 현장에서 뼈가 굵은 실무형이라 가방끈이 긴 사색가보다는 실전에 능한 노력형을 좋아한다.

○ 난조 관장은 지한파?

한국 미술을 알려고 애쓰고 한국 작가들과 널리 교유하며 자주 방문한다는 점에서 그는 지한파(知韓派)라 할 수 있다. 김홍희 경기도미술관장, 서진석 대안공간 루프 대표 등 한국 미술계 인사들과 두루 친하다. 그가 좋아하는 한국 작가로는 서도호·이기봉·이용덕·이용백·전준호씨 등이 있다. 전준호씨를 싱가포르 비엔날레에 데뷔시켜 국제적인 작가로 클 수 있는 발판을 놓아준 이가 난조 관장이다. 설치미술가 최정화씨와는 술친구라 할 만큼 절친하다. 이번에 경기창작센터에 입주해 있는 작가 12명과 일종의 일대일 개인지도를 하면서 3명 정도의 작가를 점지했다는 후문이다. 난조 후미오의 리스트에 들어간다는 것은 앞으로 그가 진행할 다양한 국제미술 프로젝트에 참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는 청신호라 할 수 있다.

○ 난조 관장은 ‘얼리 어답터’?

각종 전자기기와 신개발 테크놀로지에 관심이 많다. 그의 자가용은 움직이는 사무실이라 할 만큼 일하는 데 필요한 기계들이 능률적으로 장착돼 있다.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순간순간 포착하는 것이 나의 기쁨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또 ‘젊은 작가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었다. 이런 적극적인 호기심이 나이보다 젊게 보이는 비결이냐고 물었더니 ‘치매 예방에도 좋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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