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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소련 비밀 문서, 6·25에 대한 좌파 환상을 깨다

6· 25전쟁의 재인식
김영호 외 지음
기파랑, 464쪽
1만6000원


책 제목과 부제가 책 전체의 성격과 지향을 오롯이 드러낸다. 6· 25전쟁 60주년을 맞아 그동안 축적된 새 자료와 연구성과에 기초해 신기원을 열겠다는 것이다.

6· 25연구의 주 패러다임은 정통주의와 수정주의이다. 정통주의에 의하면 6· 25는 공산권 맹주인 소련의 대외팽창의지가 촉발했다. 즉 스탈린의 세계적화의 꿈에 마오쩌둥이 동원되고 김일성이 편승한 대남(對南)침략전쟁인 것이다. 정통주의는 전쟁의 참화를 겪은 당대 한국인들에게 직관적인 호소력을 지녔거니와, ‘북한괴뢰’의 위협을 빌미로 독재를 강화해 온 한국 역대 권위주의 체제의 공식논리이기도 했다.

브루스 커밍스의 수정주의에 의하면, 6· 25는 해방과 건국 이래 누적된 남한의 사회경제적 모순과 분단상황을 풀기 위한 ‘민족해방전쟁’이다. 국가수립을 둘러 싼 남한 내부의 대립과 투쟁, 남한의 혁명적 상황에 대한 미군정의 오판과 정책오류, 남북의 국지적 무력충돌 등이 어우러져 전면전으로 비화되었기 때문에 ‘누가 먼저 공격했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1980년 ‘5월 광주’를 잔혹하게 압살한 전두환 군사정권의 출범과,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출간이 겹쳤던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박정희의 ‘정치적 아들’ 전두환이 광주의 피를 손에 묻힌 채 권력을 찬탈한 사건은 한국현대사에 대한 총체적 반성을 강제했다. 운동권과 진보진영은 정통주의적 냉전반공사관을 180도 뒤집어 대한민국 자체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국가’로 정죄한다. 독재를 비판한 민주화운동이 급진적 체제변혁 시도로 바뀐 게 ‘혁명의 시대’ 1980년대의 풍경이었다.

90년대 들어 구 소련의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6·25 전쟁의 기원을 둘러싼 정통주의와 수정주의 진영의 논쟁은 새로운 단계를 맞게 됐다. 사진은 6· 25 전쟁 중 북한군을 돕기 위해 파병된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관 팽덕회(왼쪽)와 군사작전을 협의하고 있는 김일성. [중앙포토]
21세기 한국에서 혁명을 꿈꾸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수정주의 사관의 영향력은 결코 줄지 않았다. 현대사를 읽다 피가 역류하는 분노를 느꼈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 즉 ‘우리의 역사는 정의가 패배하고 불의와 기회주의가 승리한 기록’이라는 말에 공감하는 이가 많은 게 단적인 사례다. 이는 6· 25 연구가 현재진행형의 치열한 역사담론투쟁임을 증명한다.

이 책은 6· 25 관련 구 소련 비밀자료 연구에서 출발한다. 냉전반공사관에 머무른 정통주의와, 비밀해제된 미국문서에 기초한 수정주의는 공산권 내부사정을 알 수 없었다는 한계를 갖는다. 이런 상황은 90년대 들어 일변한다. 모스크바의 대통령 문서보관소에 있는 2,000쪽 이상의 자료는 소련 최고위급의 정책결정과정을 상세히 보여주어 정통주의적 해석이 큰 방향에서 정확했음을 시사한다.

이 책은 6·25의 책임을 미국에 귀속시킨 수정주의가 논리적 파탄을 맞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커밍스 학파가 궁색한 처지에 빠지고 정통주의가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한국현대사를 둘러싼 역사담론투쟁의 3라운드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과거를 지배하는 자, 미래도 지배하리라’는 말은 여전히 참이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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