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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Leadership] 골든벨 소녀 김수영씨 ‘손미나 언니는 나의 롤 모델’

두 여자가 있었습니다. 한 여자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반장과 학생회장을 맡으며 친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습니다. 다른 여자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와 어울리지 못하더니 중학교 때는 머리 염색, 탈선, 잇따른 가출 등으로 학교에서 ‘강제로’ 자퇴를 당합니다. 하지만 이 ‘엄친딸’과 ‘문제아’는 고등학교 때부터 비슷한 인생 경로를 거칩니다. ‘엄친딸’은 고려대를 나와 공영방송 아나운서로 성공가도를 달렸습니다. 그 후 돌연 마이크 앞을 떠나더니 베스트셀러 작가로 거듭났지요. 손미나(38) 전 KBS 아나운서입니다. ‘문제아’는 연세대를 나와 골드먼삭스를 거쳐 세계 최대 정유회사의 영국 본사에서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도전! 골든벨’에서 실업계 고교(여수정보과학고) 학생으로는 처음으로 ‘골든벨’을 울린 김수영(29·로열더치쉘 매니저)씨입니다. 이들은 요즘 멘토와 멘티로 서로 이끌어주고, 밀어주며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지난달 31일 대학로 한 카페에서 펼쳐진 이들의 정겨운 이야기를 가 포착했습니다.

글=김창규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아침에 함께 미장원을 다녀왔다는 둘은 9년의 나이차를 뛰어넘어 둘도 없는 다정한 친구로 보였다. [사진=박종근 기자]
손미나(이하 손): 수영이를 처음 본 게 1999년 ‘도전! 골든벨’에서지 아마? 자신을 ‘사이버 공주’라고 하고…. 그땐 정말 당차다는 느낌을 받았어.

김수영(이하 김): 제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방송에 출연하며 그동안 억눌려 있던 끼를 터뜨렸던 것 같아요. 갑자기 이마에 CD를 붙이고 온몸을 마우스로 감고 나오고 싶더라고요. 그 덕에 언니를 만나 대학 때부터 조언을 구하고 밥도 얻어먹고 그랬잖아요.

손: 내가 수영이를 봤을 땐 문제아가 아니었는데.

김: 어릴 때 여수 주변에 있는 시골에 살았어요. 재래식 화장실을 쓸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어요. 초등학교 때도 말수가 적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어요. 중학교는 도시에 있는 학교에 다녔는데 집에서 학교까지 매일 두 시간씩 비포장길 먼지를 뒤집어쓰고 학교에 다녀야 했지요. 시골 출신이라는 열등감 때문인지 튀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준비물 살 돈이 없어서 미술시간에 멍청히 있어야 할 때도 있었고….

손: 어린 마음에 상처가 됐겠구나.

김: 한번은 제가 머리에 과산화수소수를 바른 적이 있어요. 아는 언니가 과산화수소수를 바르면 저의 곱슬머리가 생머리처럼 된다고 해서요. 하지만 머리가 탈색돼 노란색이 돼버린 거예요. 다음 날 학교에서 복도를 지나가는데 한 선생님이 제 머리채를 휘어잡더니 마구 때렸어요. 옆에 있던 담임 선생님까지 저를 때리더라고요.

손: 단지 그것 때문에?

김: 반항심 때문인지 어느 날 학급회의 시간에 선생님 자격도 검증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지요. 논리적이라고 말한 건데 그걸 선생님은 교권 도전으로 인식하셨던 것 같아요. 선생님이 친구에게 저랑 어울리지 말라고 하기까지 했어요. 그날 이후로 밖으로 겉돌기 시작했지요. 학교 가도 맘 둘 곳이 없고, 집에 가면 어머니는 쌀 빌리러 가고 없고, 아버지는 술만 드시고 계셨으니…. 오토바이를 타러 다니기도 하고 패싸움에 연루되기도 했어요. 어깨에는 칼자국까지 생겼지요. 가출도 세 번씩이나 했어요.

손: 그런 방황을 어떻게 극복하게 된 거니.

김: 검정고시를 봐서 고등학교를 갔어요. 도서관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력충돌 때 한 아버지가 죽어가는 아이를 안고 오열하는 사진을 봤어요. 내가 세상일을 너무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때 기자가 되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런데 주변에선 기자가 되려면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며 비웃었지요. 부모님도 빨리 취직해야지 우리 형편에 대학이 가당치 않다고 하시는 거예요. 하지만 꿈이 있으니까 결국 되더라고요. 하루 5시간만 자고 공부했거든요.

손: 이젠 그런 방황이 오히려 삶의 큰 에너지가 될 거야.

김: 인문계열로 대학에 간 뒤 ‘기자가 되기 위해’ 사회학과를 지망하려 했어요. 그런데 한두 번 외국에 다녀오니까 세계를 누비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영문과를 택했죠. 학기 중에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으고 방학 때는 그 돈을 탈탈 털어 여행 다녔어요. 제가 골드먼삭스 한국 지사에 9개월 근무하다가 무작정 영국으로 떠난 것도 세계로 진출하기 위해서였어요. 물론 1년 동안 직장을 찾느라 100여 곳의 기업 문을 두드렸지만….

손: 난 아나운서 하면서 의외로 어려움은 없었어. 하지만 아나운서 생활을 10여 년가량 하니까 내 안의 뭔가가 소모되는 느낌이었지. 사생활 노출도 부담스럽고…. 안주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해 봤지. 세계를 돌아다니며 글을 쓰는 것도 좋겠다 싶었어.

김: 제가 언니를 롤 모델(본보기)로 삼은 것도 그 때문이에요. 언니는 ‘아나운서는 이럴 것이다’는 전형적인 이미지와 달리 독자 행보를 걷잖아요. 자신의 가슴에 충실한 길을 가니까요. 자유로운 사고와 뜨거운 열정,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친화력, 그 모든 것이 대단해요. 제가 영국에서 직장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언니는 이런 말을 해주셨어요. ‘목적지를 가는데 비행기를 타고 훌쩍 날아가기도 하고, 기차를 타고 약간 여유 있게 갈 수도 있고, 걸어서 느리게 갈 수도 있다’고요. 조금 늦게 가더라도 많은 생각을 하며 그 과정을 즐기면 배우는 것이 있을 게 아니냐고 조언도 해주셨어요. 그 말이 너무 가슴에 와 닿았어요. 언니 말을 가슴에 품고 도전하다 보니까 로열더치쉘에도 들어갈 수 있었나 봐요.

손: 2008년 3월에는 우연히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났지?

김: 정말 대단한 우연이에요. 영국에 있는 회사 친구들과 함께 놀러 갔는데 그 먼 곳에서 언니를 만나다니. 5시간 동안 얘기했는데 잘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언니에게서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졌어요. 저도 생각했죠. ‘나도 할 수 있겠구나.’ 결국 수다에 빠져 비행기를 놓쳤지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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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