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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Global] 솔직·담백·화끈, 일본 새 퍼스트레이디 노부코

일본의 간 나오토(菅直人) 신임 총리 부인 노부코(伸子·맨 오른쪽) 여사가 2008년 10월 도쿄 거리에서 ‘정권교체, 체인지’라고 쓴 앞치마를 두른 채 민주당 지지유세를 벌이고 있다. 함께 유세 중인 여성은 하토야마 전총리 부인 미유키 여사(가운데)와 하타 전 총리 부인 야스코 여사.  [사진=아사히신문]
“마음이 무거워요. 남편은 (총리가 돼) 기쁘겠지만 우리(식구)들에겐 엄청난 피해죠. 나는 (총리)관저에도 외국에도 가고 싶지 않아요.”

4일 일본의 새 총리가 된 간 나오토(菅直人·63) 민주당 대표 부인 노부코(伸子·64) 여사의 첫 발언이다. “남편은 바쁘니까 요즘 도심 호텔에 머물면서 집에 오지도 않아요. 오늘 아침 전화를 걸어와 ‘식구들에게 불편을 끼치게 될 거다. 잘 부탁한다’고 하더라고요. 남편에겐 ‘당신 말대로 정말 엄청난 불편’이라고만 말했어요.”

일본의 새 퍼스트레이디가 된 노부코 여사는 꾸밈없는 성품이 트레이드마크다. 복지·환경·생활 등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아 시민운동가 출신인 남편과는 정치·사회 문제 등 현안을 놓고 토론하는 게 일상이다. “나는 행동도 말도 내 마음대로 해야 하는 사람인데, 총리 부인이 되면 그것도 마음대로 못하지… 경비도 강화될 거고 관저로 이사하는 것도 귀찮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독신)처럼 남편도 혼자 외국 방문하면 편할 텐데….”

성의 없이 툭툭 던지는 말같지만, 오늘의 간 총리를 있게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노부코 여사다. 세습 정치인이 주류를 이루는 일본 정계에서 4수 끝에 국회의원에 당선된 남편을 10선 의원의 총리로 만든 그의 인생은 남편과 함께한 2인3각 경기였다.

오카야마(岡山)현 출신인 노부코 여사는 간 총리보다 한 살 연상의 사촌누나다. 그의 집은 대대로 의사를 하는 집안이었다. 도쿄의 명문 쓰다주쿠(津田塾)대에 진학한 노부코 여사는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요리·빨래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못하는 조카를 보다 못한 간 총리의 어머니가 그를 집으로 들여 보살폈다. 어려서부터 친구처럼 지냈던 나오토와 노부코는 한 집에 살면서 서로에게 이성의 감정을 갖게 됐다. 간 총리의 아버지와 노부코 여사의 어머니가 남매다. 간 총리로선 고모의 딸과 결혼한 셈이다. 일본에선 사촌 간 결혼이 허용돼 있지만 고종사촌 간인 두 사람이 결혼을 발표하자 집안은 발칵 뒤집혔다. 노부코의 친정어머니가 상경해 가족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결혼을 뜯어말리려고 시작된 자리는 어느새 일본의 핵보유에 관한 논쟁으로 이어졌고 정작 결혼은 두 사람 뜻대로 진행됐다. 나오토는 23세, 노부코는 24세였다.

신접살림을 시작해 1996년 후생노동상 시절까지 살았던 작은 아파트는 시민운동가 시절엔 활동본부로, 80년 첫 당선할 때까지는 선거사무실로 쓰였다. 그때마다 노부코 여사는 두 아들을 데리고 시집에서 지내며 남편을 도왔다. 똑같이 중3때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해 말썽을 부렸던 두 아들도 어엿한 사회인으로 자라줬다. 간 부부가 두 아들에게 제시한 요구는 한 가지였다. “학교엔 안 가도 좋다. 낮 시간엔 무조건 집 밖으로 나가라”는 것. 집 안에 틀어박혀 사회와 소통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었다. 두 아들은 스스로 대안학교와 검정고시를 선택해 학업을 마쳤다. 한 차례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장남은 현재 샐러리맨, 차남은 수의사로 일하고 있다. 옆동네에 혼자 살고 있는 시어머니(89)를 모시는 일도 노부코 여사 몫이다.

사회 문제에 박식한 노부코 여사는 명연설가로도 정평이 나 있다. 93년 ‘신당 사키가케’ 결성 때부터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의 부인 미유키 여사와 팀을 짜서 선거 때마다 지원유세를 벌였다. 2007년 참의원 선거 때는 ‘오! 이겨라 레이디스’를 결성해 가두연설에 나서는가 하면 출마 후보 부인들을 직접 지도하기도 했다. 자전거 유세, 앞치마 유세 같은 아이디어도 모두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바쁜 남편을 대신해 시민단체 세미나나 회의에도 종종 참석한다. 80년대 일본에서 혈우병 환자들에게 비가열 혈액응고제제를 투약, 환자들이 집단으로 에이즈에 감염된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 모임에 참석한 노부코 여사는 하시모토 정권에서 후생노동상이던 남편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주문했다. “제대로 하려면 너무 힘든 일”이라며 고개를 가로젓는 남편에게 노부코 여사는 “꼭 해야 할 일을 외면할 거면 정치고 뭐고 당장 때려치우라”고 다그쳤다. 간 총리는 96년 ‘약해(藥害) 에이즈’ 사건에서 관료들의 책임을 집요하게 추궁했고 반(反)관료주의의 상징적 인물이 됐다. 그러자 민주당에서는 몇 년 전 도쿄도 무사시노시 시장 선거 때 노부코 여사를 출마시키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간 총리 취재를 담당한 일본 기자들에 따르면 노부코 여사는 남편 못지않은 말술로 통한다. 야간 마와리(취재)를 도는 기자들과 술을 마시다 간 총리가 잠이 들면 대신 기자들과 논쟁을 벌인다. 제대로 답변을 못하는 기자에겐 “공부 좀 더 하라”고 혼내는 통에 기자들이 잔뜩 긴장하기도 했다. 노래방에선 ‘스캔들의 여왕’으로 불리던 여가수 마쓰다 세이코(松田聖子)의 노래를 즐겨 부르는가 하면 다도와 서예에도 조예가 깊다. 모 기업체의 다도 모임을 지도했을 정도다.

매사에 급한 성격에 짜증을 잘 부리는 간 총리도 부인에게만은 꼼짝도 못한다. 98년 간의 여성 스캔들이 터졌다. 상대는 미모의 전직 뉴스캐스터. 한 주간지는 두 사람이 머물렀다는 호텔 방 번호까지 공개하며 불륜 스캔들을 대서특필했다. 후생노동상으로 이름을 세상에 알린 간은 당시 민주당을 창당해 승승장구하던 시절이었다. 간은 “함께 밤을 보낸 건 사실이지만 남편관계는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스캔들은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바보같이… 당신은 허술한 게 흠”이라는 노부코 여사의 당시 발언이 세간에 화제가 됐다. 노부코는 남편의 스캔들을 보도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 응했다. “결혼해서 28년을 살면서 계속 연인 같은 감정을 갖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살아있는 인간이다 보니 부부 관계가 가까울 때도 멀어질 때도 있는 것 아니냐. 간은 아내인 내게 부정을 저질렀을지 모르지만, 결코 국민에게는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다.” 노부코의 이 한마디는 정치생명이 위태로웠던 남편을 단박에 구했다. ‘일본판 힐러리’라는 별명도 이때 얻었다.

간 총리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의원연맹이 생긴다면 회장은 우리 노부코”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집 없는 고양이를 발견하면 씻겨주고 먹여주는 통에 동네에서 간의 집은 고양이들의 아지트였다. 지난해 정권 교체 후 간 부부가 바빠지면서 고양이들이 다른 집으로 간 것을 두고 그녀는 “엄마로서 실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j 칵테일 >> 사촌끼리 결혼한 간 총리 부부

간 총리 부부는 올 2월 말 큰아들을 장가보냈다. 부총리 겸 재무상 아들 결혼이니 5성급 호텔 대연회장쯤을 상상했다면 오산이다. 피로연은 국회 공제조합에서 운영하는 호텔 연회장에서 열렸다. 대대로 정치가문에서 태어나 대기업 외가를 둔 전임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와 간 총리의 성장 배경은 완전 딴판이다. 샐러리맨 아버지를 둔 간 총리의 전 재산은 하토야마 전 총리의 64분의 1이다. 도쿄공대 이학부를 나와 특허사무소에 다니던 신혼시절 간 부부는 가난했다. 마작 점수 자동계산기를 발명해 특허도 얻었지만 살림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주택 문제·식품·공해·의료 분야의 시민운동에 몰두하면서 활동비가 더 필요했다. 간 부부는 축제가 열리는 대학마다 찾아다니며 야키소바(볶음국수)나 솜사탕을 팔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태어났다. 대학 축제에서 야키소바를 볶아 팔던 아버지는 태어난 지 나흘 된 아들과 첫 대면을 했다. “40년간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아들 낳을 때 자리를 비웠던) 이야기가 나옵니다. 내 아들은 평생 그런 약점 잡히지 말고 살아줬으면 좋겠습니다.” 간 총리의 한마디에 결혼 피로연장은 순식간에 웃음바다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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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