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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109> 월드컵, 이것만은 알고 보자

스포츠 종목마다 무수한 ‘월드컵’ 대회가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세계축구선수권대회가 월드컵의 대명사로 통한다. 한국팀의 원정 첫 16강 진출 여부를 떠나 월드컵은 스타들의 현란한 묘기와 축구 변방의 돌풍, 그들의 환호와 눈물로 팬들의 밤잠을 설치게 할 것이다. 4년이 지나 어김없이 돌아온 월드컵, 이것만은 알고 보자.

이충형 기자

기원 1930년 첫 월드컵 연 우루과이는 당시 세계 최강

역대 월드컵의 포스터들이다. 개최국과 그 나라 축구문화를 상징하는 그림들로 수놓아져있다. 왼쪽 맨 위가 제1회 우루과이 월드컵(1930년), 오른쪽맨 아래가 가장 최근 열린 제18회 독일월드컵(2006년) 포스터다. 유럽과 미주 대륙이 번갈아 대회를 개최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관례를 최초로 깬 대회가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회가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카 대륙에서 최초로 열리는 남아공 월드컵이다.
중국이 세계 최초의 축구 발생지라고 하지만, 근대 축구는 잉글랜드를 포함한 영국에서 시작됐다. 잉글랜드는 1863년 세계 최초로 축구협회(the FA)를 창설했다. 이후 손으로 공을 만지지 못하고(1869), 한 팀 11명이 출전하며(1870), 골키퍼(1871)와 주심(1872)이 등장했고, 페널티킥이 생겨난(1891) 곳이 영국이었다. 단순 명쾌함과 야만성은 축구를 영국 최고의 수출품으로 만들었다. 유럽뿐만 아니라 브라질과 우루과이의 빈민노동자들까지 축구에 빠져들었다.

1904년 국제축구연맹(FIFA)이 창설됐다. 곧바로 세계선수권대회를 만들려 했지만 종주국 잉글랜드의 비협조와 유럽-비유럽 간 실력 차가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남미의 우루과이가 24·28년 올림픽 축구를 2연패하자 당시 FIFA 회장 줄 리메는 월드컵 개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했다. 마침내 30년 우루과이에서 월드컵을 열기로 결정했다.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야 했던 유럽에선 4개국만이 참가해 총 13개 나라가 제 1회 월드컵 참가국이 됐다.

월드컵의 광란은 첫 대회부터 예외가 없었다. 우루과이-아르헨티나의 결승전이 열린 몬테비데오 센테나리오 스타디움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고, 이 경기를 맡은 벨기에 주심은 생명보험을 신청해야 했다. 우루과이가 4-2로 첫 우승을 차지하자 아르헨티나 주재 우루과이 영사관은 돌팔매질을 당해야 했다.

이변 40연승 헝가리 잡은 서독 감독 “공은 둥글다” 명언

의외성은 축구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다. 월드컵의 역사도 이변의 역사였다.

월드컵을 하등 국가들의 대회로 깔보던 종가 잉글랜드는 50년 브라질 월드컵에 처음으로 ‘참가해주는’ 시혜를 베풀었다가 변방 미국에 0-1로 지는 개망신을 당했다. 당시 영국 매체들은 ‘0-1 패’란 현지의 타전을 오타로 생각해 1-0 승리로 보도했다. 이를 보고 ‘우리가 겨우 0-1로 졌을 리 없다’고 생각한 뉴욕 타임스는 ‘0’을 보태 ‘0-10 패배’로 게재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패전국 동·서독은 FIFA로부터 대외 시합을 금지당했다. 기아에 허덕여 버려진 나치 깃발로 유니폼을 만들어 축구를 하던 서독 선수들은 54년 스위스 월드컵에 패전 후 처음 출전했다.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서독은 상대팀들을 하나씩 격파해 나갔고, 결승에서 40연승을 달리던 최강 헝가리에 3-2 역전승하는 ‘베른의 기적’을 연출했다. 서독의 우승을 이끈 제프 헤르베르거 감독은 “공은 둥글다”란 명언을 남겼다.

66년 잉글랜드 월드컵이 개막할 당시 서방이 북한 대표팀에 대해 알고 있었던 정보는 세 가지뿐이었다. 선수 전원이 미혼이고 신장이 1m70㎝ 이하며 3년간 합숙훈련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북한은 이탈리아를 1-0으로 꺾고 8강에 올라 유럽에 충격을 던졌다.

78년 월드컵의 개최국 아르헨티나는 페루와의 2차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4골 차 이상으로 승리해야 결승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페루를 6-0으로 대파하는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당시 아르헨티나의 비델라 군사정권이 모종의 수를 썼다는 의혹이 뒤따랐다.

역대 개막전은 아프리카 반란의 장이었다.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카메룬은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개막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를 1-0으로 누르고 아프리카 축구의 시대를 예고했다. 세네갈은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전에서 과거 자신들을 식민통치한 프랑스를 격파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한국과 터키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에 진출한 일을 월드컵 사상 최대 이변으로 꼽았다. 많은 유럽인은 여전히 한국이 심판의 도움으로 4강에 진출했다고 믿고 있다.

최강 최고의 축구 예술가 다 모였다, 1970년 브라질팀

70년 브라질=브라질은 매 월드컵에서 최고의 팀이었지만 70년의 브라질팀은 압권으로 꼽힌다. 자이르지뉴·히벨리누·토스타웅·클로드알두·카를루스 알베르투 등 축구의 예술가들이 한 팀에 모였고 서른 살의 펠레가 버티고 있었다.

파죽지세로 5전 전승을 거두고 만난 결승전 상대는 카데나치오(빗장수비)의 이탈리아. 최고의 창과 방패의 대결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학생들과 친선경기를 하는 것 같았다”는 마리우 자갈루 당시 브라질 감독의 말처럼 브라질은 여유 있게 카데나치오를 유린했다. 11명 브라질 선수를 모두 거친 공이 마침내 펠레의 발에서 멈췄고, 보지도 않고 밀어준 어시스트를 벼락같이 달려간 알베르투가 빨랫줄 슈팅으로 연결한 골 장면은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된다. 4-1 브라질의 완승이었고 영국 언론들은 “그렇게 멋진 축구는 마땅히 금지됐어야 한다”는 표현으로 경의를 표했다.

74년 네덜란드=74년 서독 월드컵에서 네덜란드가 결승에 오르리라 예상한 이는 없었다. 하지만 서독과의 결승을 앞두고 네덜란드의 우승을 의심한 이 또한 별로 없었다. 네덜란드는 한수 위로 평가되던 아르헨티나(4-0)와 브라질(2-0)을 완파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준결승까지의 전적은 5승 1무, 14득점에 한 번의 자책골이 유일한 실점이었다.

현대 축구는 공격수도 수비하고 수비수도 공격하는 ‘전원공격, 전원수비’가 기본이다. 중원에서 촘촘한 간격으로 상대를 압박하고 상황에 따라 유기적으로 포지션을 변경한다. 수비에선 오프사이드 트랩을 활용한다. 이 모든 전술이 ‘토털풋볼’이란 이름으로 74년의 네덜란드팀이 처음 선보인 것들이다. 발레리 로바노프스키 전 디나모 키예프 감독은 “축구에 혁명은 없다. 만약에 있다면 유일하게 74년의 네덜란드팀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모든 전술을 총지휘한 중원 사령관은 20세기 최고의 유럽선수로 꼽히는 요한 크루이프였다.

네덜란드는 앞선 경기들을 통해 토털풋볼을 독해한 서독에 결승전 패배(1-2)를 당했다. 서독을 이끈 ‘카이저’ 프란츠 베켄바워는 “크루이프는 나보다 훨씬 나은 선수였지만 월드컵은 내가 차지했다”고 말했다.

저주 펠레가 예언하면 언제나 결과는 그 반대로

월드컵이 인류의 사랑을 받게 만든 일등공신은 펠레다. 현역선수 때는 발로, 은퇴 후엔 입으로 팬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펠레의 저주’는 월드컵이 시작될 때마다 매스컴의 최고 가십거리가 됐다.

저주의 시작은 66년 잉글랜드 월드컵이었다. 브라질은 직전 두 대회를 연속 제패했고 펠레는 “우리는 우승을 위해 왔다”며 호언장담했다. 펠레는 첫 경기에서 부상해 남은 경기에 뛰지 못했고 브라질은 조별리그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후 오판 또는 저주의 행진이 이어졌다.

▶82년 스페인 월드컵 “브라질이 사상 최강이고 적수는 아르헨티나·스페인뿐” → 한 팀도 4강에 들지 못함.

▶86년 멕시코 월드컵 “프랑스와 잉글랜드 주목해야. 이탈리아 2연패 가능성도 높다” → 프랑스는 4강, 잉글랜드는 8강, 이탈리아는 16강에 그침.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우루과이와 이탈리아가 결승에서 만날 것” → 두 팀은 16강에서 만났고 이탈리아는 4강에서 탈락.

▶94년 미국 월드컵 “콜롬비아가 우승후보 1순위다. 브라질은 자격이 없다” → 브라질이 우승했고 콜롬비아는 A조 꼴찌로 탈락.

▶98년 프랑스 월드컵 “브라질의 2연패 가능성이 크고 스페인도 유력” → 브라질은 프랑스에 0-3으로 완패하며 준우승, 스페인은 조별리그 탈락.

▶2002년 한·일 월드컵

“프랑스가 패자가 될 것이고 지단은 세계 최고다. 브라질은 조별예선 통과할 자격도 없다. 중국이 16강에 진출할 것” → 지단은 한국과의 평가전에서 부상당했고 프랑스는 조별리그 탈락. 브라질이 우승했고 중국은 무득점 전패로 조별리그 탈락.

(한국이 4강에 진출하자) “한국이 결승에 올라갈 수 있다”→ 독일·터키에 잇따라 져 4위.

▶2006년 독일 월드컵 “한국은 16강에 진출할 것” → 진출 실패.

▶한·일 월드컵 주제가를 부른 여가수 아나스타샤를 한 행사장에서 만난 펠레는 그의 가슴을 흐뭇하게 훔쳐봤다. 이후 아나스타샤는 유방암 수술을 받아야 했다.

펠레는 남아공 월드컵 우승후보 1순위로 스페인을 꼽았다. 그의 발언 후 스페인은 페르난도 토레스와 사비 에르난데스, 세스크 파브레가스 등 주축 선수들이 줄부상하며 저주의 공포에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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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