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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총독부, ‘시의 기념일’ 선포 … 시계 귀한 탓 ‘시간 엄수’ 애먹어

 
  1902년에 준공된 한성전기회사 앞을 한복 입은 남자가 무심히 지나고 있다. 한성전기 회사 사옥은 시계탑을 가진 우리나라 최초의 공공 건물로 현재의 서울 YMCA 서쪽 장안빌딩 자리에 있었다. 이에 앞서 1888년 경복궁 관문각에도 시계탑이 설치되었으나 일반인은 볼 수 없는 시계였다. 당시엔 시곗바늘을 ‘해독’할 수 있는 사람도 많지않아 시간관념이 자리 잡을 여지가 별로 없었다. 사진출처=『꼬레아 꼬레아니』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약속은 ‘시간 약속’이다. 장소는 언제나 시간에 비해 부차적이다. 그래서 결혼식 청첩장에도 ‘장소’보다 ‘일시’를 먼저 쓴다. 약속뿐 아니라 모든 일상이 시간에 의해 잘게 구획되어 있다. 자고 깨고, 먹고 쉬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회의하고 거래처 사람 만나고, 심지어 술 마시고 노는 일들까지 모두 ‘시각과 시간’을 먼저 기억하고 기록해야 한다. 노동도 시간 단위로 측정되고, 보수도 대개 시간 단위로 지불되니 사람 값도 시간이 지배하는 셈이다.

그러나 불과 한두 세기 전만 해도 일상에서 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소 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잘 알려진 남구만의 이 시조에서 시각은 모호하지만 장소는 아주 구체적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에게는 시간 관념보다 방위 관념이 더 중요했으니, 어리거나 어리석은 사람을 비웃는 말은 ‘동서남북도 분간 못 한다’는 것이었다.

개항 이후 서양식 24시제가 도입되자 그에 따라 여러 가지 ‘시간표’도 만들어졌다. 전차·기차·선박 등의 운행 시간표, 극장의 공연 시간표, 병원의 진료 시간표, 학교의 수업 시간표 등. 1886년 제중원 의학당의 수업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였으며, 1890년 배재학당은 ‘오전 8시15분’ 수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시계의 보급은 무척 더뎌서 서울에 시계탑이 달린 건물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02년의 일이었다. 그 무렵에는 시계 값도 무척 비싸서 보통 사람들이 소장할 수 없는 보물(寶物)이었으니, 지금껏 시계는 금은 보석과 함께 취급되고 있다.

1921년 일본은 누각(漏刻)이라는 시계를 만든 덴치(天智)왕을 기리고 시간을 잘 지키자는 취지에서 6월 10일을 ‘시(時)의 기념일’로 선포하고 조선에도 적용했다. 그러나 시계 없는 사람들에게 ‘시간 엄수’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시각을 알 수 있는 길은 고작 정오의 오포(午砲) 소리를 듣는 것뿐이었는데 이조차 잘 맞지 않았다. 그 연유에 관해서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가 떠돌았다. 오포 쏘는 병사가 망원경으로 일본인 시계점의 시계를 보고 포를 쏘면, 시계점 주인들은 또 그 포 소리에 따라 시계를 맞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총독부가 일본인들의 여론만 살피고 일본 거류민단은 그들대로 총독부의 의중에 따라 여론을 만드는 세태를 비꼰 것이다. 권력과 특정 여론이 사랑에 빠지면, 역사의 시곗바늘은 종종 엉뚱한 곳을 가리키는 법이다.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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