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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170> 이스라엘 기독교 성지

성경을 읽다 보면 ‘광야’ 얘기가 여기저기 나옵니다. 사람들은 성경 속의 광야를 읽으며 ‘아라비아 사막’을 떠올리죠. 그런데 이스라엘을 가면 알게 되죠. 예루살렘에서 사해 지역으로 갈 때 도로 옆에 광야가 펼쳐지거든요. 그럼 절로 탄성이 터집니다. “아! 예수님이 기도했던 광야가 바로 저런 곳이구나.” 그게 성지순례의 묘미죠. 사진과 함께 이스라엘 기독교 성지의 현장감을 느껴보세요.



나사렛에서 유대인과 사는 아랍인 4만 명, 그리스도교인입니다

백성호 기자



베들레헴 예수가 태어난 곳이라 전해지는 자리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10㎞쯤 떨어진 외곽 지역이다. 지금은 유대인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관할 지역이다. 같은 이스라엘이지만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으로 넘어갈 때는 검문소를 통과한다. 국경을 통과할 때와 비슷하다. 거기선 실탄을 장전한 소총을 든 군인들이 버스와 짐을 검문검색한다. 분위기가 꽤 살벌하다.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교회에는 예수가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자리가 있다. 순례객이 엎드려서 그 곳을 보고 있다.
베들레헴에는 커다란 규모의 ‘예수 탄생 교회’가 있다. 초대 교회 시절, 예수의 탄생을 기리기 위해 만든 ‘예수 탄생 동굴’이 그 시작이라고 한다. 기독교를 박해하던 135년께에는 이 동굴 위에 아도니스 신전이 세워졌다고 한다. 로마 황제의 명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324년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신전을 허물고 이곳에 예수 탄생 교회를 지었다. 교회 안에는 40여 개의 커다란 돌기둥과 모자이크가 오랜 역사를 잘 말해주고 있다. 예수가 탄생했다고 전해지는 자리는 교회 안에 있다. 바닥에 난 작은 창을 통해 그곳을 보게끔 돼 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은 캄캄한 어둠뿐이다. 어쩌면 거기가 세상을 창조했던 ‘신의 자리, 태초의 자리’와 통하는 것일까.



갈릴리 호수 예수가 베드로·요한 만나고 오병이어 건네



갈릴리 호수에 배가 다니고 있다. 메마른 국토가 대부분인 이스라엘에서 물이 풍부한 갈릴리 지역은 그야말로 생명의 땅이다.
갈릴리 호수는 이름이 호수이지, 거의 바다처럼 느껴질 만큼 크다. 동서의 폭이 14㎞, 남북의 길이가 21㎞에 달한다. 광야와 불모지의 땅으로 뒤덮인 이스라엘에선 그야말로 ‘생명의 호수’다. 메마르고 퍽퍽한 이스라엘의 자연 풍광도 갈릴리 호수에 가까워질수록 길가에 녹색이 많아진다. 나무와 풀과 물이 많기 때문이다.



갈릴리 호숫가 근처의 언덕. 예수는 여기서 산상수훈을 설했다.
예수는 나사렛에서 성장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다. 나사렛은 갈릴리 호수에서 그리 멀지 않다. 그러니 어린 시절의 예수, 젊은 시절의 예수도 갈릴리 호수를 종종 찾지 않았을까. 그 풍성한 자연의 숨결 속에서 신의 음성을 듣지 않았을까. 예수는 이 갈릴리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베드로와 요한을 만났다. 배를 타고 가다가 몰아치는 바람과 파도를 잠재운 곳도 바로 여기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라며 산상수훈을 설한 곳도 갈릴리 호숫가의 언덕이다. 지금도 그곳은 우거진 갈대로 덮여 있다. 예수가 다섯 개의 빵, 두 마리의 물고기(오병이어)를 건네자 수천 명이 배불리 먹었다는 이야기의 배경도 갈릴리 호숫가의 언덕이다.



호수 주변에는 경사진 갈대 언덕이 쭉 펼쳐져 있다. 낮에는 바람이 호수에서 언덕으로 분다. 밤에는 언덕에서 호수로 분다. 예수가 수천 명을 대상으로 산상수훈을 설할 때 언덕 아래에 서서 위쪽을 보며 말했을 거라 한다. 그럼 마이크가 없어도 바람을 타고 육성이 멀리 날아갔다고 한다. 그건 요즘 실험을 해도 고스란히 입증된다고 한다.



올리브산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날, 피땀 흘리며 기도



겟세마네 동산에 있는 오래된 올리브 나무. 2000년 전 올리브나무의 후손이라고 한다.
예수살렘 성전 곁에는 올리브산이 있다. 곳곳에 올리브 나무(감람 나무)가 심어져 있다. 옛날부터 올리브산은 유대인의 공동묘지였다. 지금도 산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묘지로 빽빽했다. 여기가 성경에 나오는 겟세마네 동산이다.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날 밤, 이곳에서 기도를 했다. “아버지 가능하다면 이 잔이 저를 비켜가게 하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그 유명한 겟세마네 기도다. 당시 예수는 바위에 엎드려 피땀을 흘리며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 커다란 바위가 지금도 겟세마네 동산에 있다. 그 바위를 안고 교회가 세워졌다. 바로 만국교회다. 아름다운 성화가 교회 상단을 장식하고 있다. 교회 안에는 예수께서 기도를 올렸던 바위가 제단 앞에 놓여 있다. 그 주위로 조그만 울타리가 쳐져 있다. 사람들은 그 바위 주위로 빙 둘러앉아서 기도를 하고, 묵상을 한다.



만국교회 앞에는 2000년 전 올리브 나무의 후손이라는 밑동이 무척 굵은 오래된 올리브 나무가 한 그루 있다. 순례객들은 그 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혹시라도 그 나무가 예수님이 기도하는 풍경을 봤을까 싶어서 말이다.



나사렛 수태고지 기념 교회엔 한복 입은 성모자 그림



나자렛에 있는 예수 수태고지 기념교회에서 순례객들이 예배를 보고 있다.
예수는 나사렛에서 자랐다. 목수의 아들이었던 그는 아버지(요셉)가 하는 일을 보며 자랐을 것이다. 가업을 잇던 당시의 전통에 따라 그도 성장기에는 목수 일을 배웠으리라. 예수는 생전에 ‘나사렛 예수’로 불렸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일컬어 ‘나자리’라고도 불렀다. 지금도 이스라엘에서 나자리 하면 그리스도인을 일컫는 말로 통한다.



나사렛 시내에는 ‘나사렛 예수 수태고지 기념교회’가 있다. 세계 각국에서 보낸 성모자상이 교회 외벽에 걸려 있다. 한복과 색동 저고리를 입은 한국의 성모자 그림도 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 탄생을 예고했다는 장소에 이 교회가 세워졌다. 십자군 원정을 거치며 이슬람 세력에 의해 교회는 파괴와 복구를 거듭했다. 현재 세워져 있는 교회는 다섯 차례나 다시 지은 교회다.



나사렛에는 놀랄 만한 사실이 또 하나 있다. 나사렛에는 4만 여명의 아랍인이 유대인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이들 아랍인이 이슬람 신자가 아니라 그리스도교인이다. 그래서 많은 종교학자가 이 지역을 대상으로 ‘이스라엘에서의 종교 간 평화 모델’을 연구 중이다.



십자가의 길 예수가 쓰러진 장소마다 교회 하나씩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진 채 쓰러진 곳에 교회가 세워져 있다.
이스라엘에는 성지가 무척 많다. 그 많은 성지 중의 핵심이 바로 십자가의 길이다. 라틴어로는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라고 불린다. ‘슬픔의 길’이란 뜻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된 예수가 끌려가 재판을 받은 곳, 쇠가 박힌 채찍을 맞았던 곳, 십자가를 어깨에 짊어졌던 곳, 비틀거리며 걸었던 길, 십자가에 못박힌 언덕, 십자가에 매달렸던 장소 등 예수의 최후가 고스란히 저며 있는 약 800m의 거리다.



그런데 십자가의 길로 가는 골목은 현재 무슬림의 재래시장이다. 낮에는 사람으로 북적대는 좁은 길을 지나야 한다. 그러나 2000년 전에는 예루살렘의 대로였다. 지금도 로마시대에 깐 벽돌이 도로에 깔려 있다. 당시에는 마차가 다녔던 큰길이었다.



십자가를 어깨에 멘 예수는 그 길에서 세 번이나 쓰러졌다. 예수가 쓰러진 장소마다 지금은 작은 교회가 하나씩 서 있다. 순례객들은 그 길을 따라서 걸으며 예수의 고난을 묵상한다. 그가 누구를 위해 십자가를 짊어졌는가, 그는 어떤 마음으로 그 길을 걸었던가, 그가 매달렸던 십자가는 진정 어떤 의미인가.



첫 번째 장소는 빌라도의 법정이다. 지금은 이슬람 학교가 세워져 있다. 두 번째 장소는 사형 언도를 받고 채찍질을 당한 곳이다. 거기에는 ‘채찍 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예수가 처음 쓰러진 장소에는 폴란드 교회가, 마리아가 아들 예수를 지켜봤던 장소에는 아르메니아 교회가, 시몬이 예수 대신 십자가를 짊어졌던 장소에는 가톨릭의 작은 교회가 세워져 있다.



십자가의 길, 그 종점은 성묘 교회다. 예수의 옷을 벗기고, 십자가에 못박고, 매달고, 다시 십자가에서 내린 곳이다. 그리고 예수의 시신을 옮겼던 무덤이 있던 장소다. 성묘 교회에 들어가면 널찍한 바윗돌이 아래에 놓여 있다. 예수의 시신을 염했다고 전해지는 바위다. 순례객들은 그 바위에 엎드려 기도를 했고, 묵상도 했고, 눈물도 흘렸다.



그 바위 오른편에 있는 계단을 올라가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던 장소가 나온다. 거기서 앞으로 열 걸음쯤 옮기면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렸던 장소다. 뜨겁디 뜨거운 이스라엘의 뙤약볕 아래서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힌 채 서서히 죽어갔다. 순례객들은 대부분 그 앞에서 눈을 감는다.



지금의 성묘 교회는 1149년에 십자군이 복구한 모습대로다. 이후 이슬람 세력이 이곳을 지배했을 때는 교회의 열쇠를 가지고 출입을 통제했다. 그 전통이 지금까지 내려온다. 성묘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교 성직자들이 살고 있다. 그런데 오후 8시가 되면 이슬람 사람이 밖에서 문을 잠그고, 안에 있는 그리스도교 성직자에게 사다리를 인계한다.



십자가의 길, 그 길을 걷다 보면 2000년 전 예수의 고난이 피부로 감겨온다. 골목을 돌 때마다 예수의 숨소리가 들린다. 우리가 할 일은 눈을 열고, 귀를 열고, 마음을 여는 일뿐이다.






뉴스 클립에 나온 내용은 조인스닷컴(www.joins.com)과 위키(wiki) 기반의 온라인 백과사전 ‘오픈토리’(www.opentory.com)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궁금한 점 있으세요? e-메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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