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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현지 리포트] 개·폐막식 ‘민주화 성지’서 하는 까닭은

지난 5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국제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은 깨끗했다. 마치 영국이나 호주 같은 선진국 모습이었다. 영연방 국가인 남아공은 사회기반시설이 영국을 모델로 한 것이 많다. 운전대도 오른쪽에 있다.

요하네스버그가 위치한 하우텡주 정부는 월드컵을 앞두고 최근 선진국 수준의 고속철도 ‘하우트레인’을 일부 개통했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30㎞ 구간을 15분 만에 연결한다. 모든 열차는 정시에 도착한다.

남아공 최대의 번화가 샌튼에 있는 ‘샌튼시티 몰’은 구찌·페라가모 등 명품 브랜드가 즐비하다. 몬테카를로 카지노궁을 연상케 하는 웅장한 미켈란젤로 호텔(5성)도 딸려 있다. 또 요하네스버그 북쪽에는 골프장을 갖춘 베벌리힐스 타입의 고급 저택이 줄지어 있다.

요하네스버그 남서쪽에 있는 소웨토 판자촌의 어린이들. 소웨토는 민주 정부 출범 이후 많이 성장했으나 빈부 격차는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는 평가다. [박성우 기자]
◆남아공 민주화의 상징 ‘소웨토’=6일(이하 현지시간) 요하네스버그 중심가에서 남서쪽으로 15㎞ 떨어진 소웨토 마을. 수십여 명의 아낙네가 빨래를 하고 있는 우물가를 지나자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한 판자촌이 펼쳐졌다. 집 앞에서 서성이는 세 살짜리 꼬마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자 이내 수십 명의 아이가 달라붙었다. ‘웨어 아유 프롬’ ‘기브 미 머니’. 기자의 카메라를 유심히 들여다보던 아이들은 5란드(약 1900원)짜리 동전 하나를 꺼내들자 서로 갖겠다고 싸움을 벌였다. 마을을 빠져나오는 와중에도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돈을 더 달라고 아우성이다.

소웨토(‘South West Township’의 약자로 남서쪽 마을이란 뜻)는 20세기 초반 남아공 백인정부가 요하네스버그의 흑인 인구가 급증하자 이들을 강제 이주시킨 서글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또 저항의 성지(聖地)로 여겨지는 곳이다. 1976년 백인정부의 아프리칸스어(17세기 남아공에 정착한 네덜란드계 백인들의 언어) 사용 의무화 정책에 반대해 흑인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다 정부군의 발포로 200여 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당시 13세였던 헥터 피터슨이 머리에 총탄을 맞고 사망한 사건은 남아공 흑인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국제사회는 인종분리정책(아파르트헤이트)을 고집하는 남아공에 대한 제재조치를 강화했다.

결국 소웨토는 우리로 치면 일제시대(일본어 사용 강요) 독립투쟁,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마산 항쟁(김주열 열사 사망), 광주 민주화운동을 합쳐 놓은 것 같은 남아공 민주화의 상징인 셈이다.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1990년 27년간의 수형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곳도, 인종차별정책 철폐 운동에 앞장선 공로로 8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데즈먼드 투투 성공회 대주교가 현재 살고 있는 곳도 소웨토다.

◆빈민가에 위치한 월드컵 주경기장=2010 남아공 월드컵의 개막식과 폐막식이 열리는 주경기장 ‘사커 시티’도 소웨토에 있다. 남아공 정부는 “민주화의 상징인 소웨토에서 아프리카 대륙 최초의 월드컵이 열리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최근에는 남아공에서 백인 종목으로 분류되는 럭비 리그 결승전이 소웨토에서 처음 열리기도 했다. 소웨토가 흑인 민권운동의 성지에서 국민 통합의 장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만델라 정부가 들어선 94년 이후 소웨토는 5성 호텔과 대형 쇼핑몰이 생길 정도로 발전했다. ‘블랙 다이아몬드’로 불리는 신흥 흑인 중산층의 저택도 다수 들어섰다. 인구도 230만 명으로 늘어 더 이상 마을이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도 범죄율과 에이즈 사망률이 남아공에서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기자가 소웨토를 찾은 6일에도 에이즈로 사망한 사람들의 장례식 행렬이 줄을 이었다. 소웨토 주민 은투투고(35)는 “소웨토의 상징적인 역할은 이제 끝났다”며 “남아공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고 교육에 투자하는 등 실질적인 조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글, 사진=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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