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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스민은 한국인이다 <하> 오바마·워드처럼 벽을 넘으려는 그녀

자스민이 영화 ‘의형제(2010년)’에 단역으로 출연 했을 때 찍은 사진. 도망간 베트남 며느리 역을 맡은 그녀는 베트남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를 입고 포즈를 취했다. [자스민 제공]
자스민(33·여)은 요즘 새벽녘에야 잠자리에 든다. 그녀는 방송사가 기획한 6·25 특집 다큐멘터리의 번역을 맡았다. 외국인 참전 용사의 인터뷰와 영상자료를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이다. 한국어를 외국어로 번역할 수 있는 이주민은 많지만, 그 반대로 한국어로 옮길 수 있는 이주민은 많지 않다. 그런 면에서 자스민은 좋은 재원이다. 자스민은 EBS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의 강사를 맡고 있다. KBS ‘러브 인 아시아(Love in Asia)’의 고정 패널이다. 러브 인 아시아는 이주 여성의 삶을 다루는 교양 프로그램이다. 토론방송, CF에도 등장한다. 그녀는 이주 여성들이 직접 만든 첫 봉사단체인 ‘물방울 나눔회’의 사무국장이기도 하다.

1995년에 한국에 시집온 그녀는 2006년까지 12년간 집안일만 했다. 사회활동의 계기는 2006년에 찾아온다. 한국인과 미국인의 혼혈인 하인스 워드가 수퍼보울의 MVP에 오른 바로 그해였다.

시한폭탄

2005년 봄, 승근이가 3학년 때다. 아들이 처음으로 ‘다문화’란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엄마, 나 방과후 학교 공짜래. 선생님이 그러는데 내가 전교에서 유일한 다문화 가정 자녀래.”

얼마 후 동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다. 다문화 가정에 쌀 20㎏을 나눠준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먹고 살만 한데…” 자스민은 의아했다.

공짜 학습과 쌀 20㎏. 일률적 배급 형태로 진행된 이런 것들이 담고 있는 의미는 명확했다. 다문화 가정은 반드시 소외계층일 거라는 사회적 동의. 피가 섞인 2세들에 대한 걱정.

명문대의 한 교수는 방송에서 “10년 후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이 사회의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자스민은 졸지에 ‘한국에 와서 두 개의 시한폭탄을 배불러 낳은 여자’가 됐다. 다문화라는 단어는 수십만 개의 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다문화는 또 다른 국적의 표현일 뿐이라고, 자스민이 늘 말하는 이유다.

워드와 오바마

①이주 여성들의 삶을 다루는 프로그램 ‘러브 인 아시아’에 출연한 모습. 왼쪽이 자스민. ②EBS에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강의를 하는 모습. ③다문화 가정에 대한 정책 홍보 CF를 찍는 모습.
이 땅은 혼혈을 부끄러워했었다. 그러던 우리 사회가 워드를 ‘한민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린 영웅’으로 대접하기 시작했다. 동정의 대상이던 혼혈이 가능성을 품은 존재가 됐다.

워드의 등장 이후 병역 제도까지 달라졌다. ‘혼혈아 군 면제’는 ‘원하면 입대할 수 있다’로 바뀌었다(최근 의무 병역으로 바뀜).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면서 자스민도 세상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2006년 추석에 방송된 주부가요열창 ‘외국인 주부 특집’에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됐다. 방송 후 이곳저곳에서 섭외가 들어왔다. 언어 능력이 뛰어나다는 소문이 퍼져 번역을 맡았고, 강사가 됐다.

2008년 여름, 한국여성정치연구소에서 방송국으로 연락이 왔다. ‘2010년 첫 이주여성 지방의원 프로젝트’를 시작하려고 하니, 인물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자스민이 추천됐다. 이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다. 간혹 언론에 나가면 ‘악플’이 달릴 뿐이었다.

그해 말, 워드의 MVP보다 더 큰 일이 벌어진다. 흑인과 백인의 혼혈인 버락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이 된 것이다.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은 크게 높아졌다.

2010년이 되자 여성정치연구소는 여러 정당에 이주여성들의 이력서를 보냈다. 자스민은 “이력서를 보낸 후 일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됐는지 잘 모른다”고 했다. 어떤 정당이 그녀를 비례대표로 추천할 거란 보도는 있었지만, 최종 명단에 자스민은 없었다.

이 과정을 거치며 자스민은 정치인이 되고 싶어졌다. ‘정치를 할지 모른다는 기대감’만으로도 이주여성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 힘 있는 사람들만 하는 줄 알았더니, 우리도 할 수 있나봐” “우리 대표를 뽑는 투표 한번 해보자”는 지지가 이어졌다.

우리에게 필요한 게 뭔가, 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누구를 통해 말할 것인가, 무엇을 변화시킬 것인가….

만약 이런 것이 정치라면, 자스민은 그 꿈을 품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뮤지컬 배우

자스민의 오랜 꿈은 뮤지컬 배우다. 연극과 영화에도 출연했다. 대학 시절 밴드의 보컬이었고 미인대회 입상자였던 그녀에게, 배우는 실현 가능한 꿈일 수 있다.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자스민은 그게 무엇이든 도전할 작정이다.

그런 도전에 대해 자스민은 “다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녀의 목표는 ‘다문화 가정’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일들이 없어지는 사회.

사회통합이 주제인 프로그램에 가족 전체가 참여한 적이 있다. 장소를 옮길 일이 있었다. 스태프 한 명이 외쳤다.

“다문화 가정은 이 버스를 타시고요, 한국 가정은 저 버스를 타세요.”

강인식 기자


자스민은 한국인이다 <상> 결혼이민자를 보는 대한민국의 불편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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