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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60년, 전후세대의 155마일 기행 ⑪ 한강하구 중립지역

한강하구 중립지역 남북 분단의 상징인 군사분계선(MDL·Military Demarcation Line) 표지물은 임진강의 최하류인 파주시 장단면 정동리에 1번이 세워져 있다. 여기서부터 동쪽으로 155마일을 숨가쁘게 달려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동호리에 이르러서야 마지막 1292호로 끝난다. 남방한계선 철책도 장단 땅에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서쪽으로는 새로운 경계선이 펼쳐진다. 서해 NLL까지 50마일. 우리 거리 개념으로는 200리길 한강하구 수계가 사실상 물 위의 비무장지대다. 유엔사가 관할하는 중립지역이다. 철책도 표지도 없는 강을 사이에 두고 군사적 경계가 그 어느 곳보다 삼엄하다.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해병대 관측소에서 해병대원이 북한의 개풍군 하조강리 지역을 관측하고 있다. 이곳은 ‘한강하구 중립지역’으로 선박의 출입이 제한된다.
파주 탄현면 오두산 통일전망대 앞에서 임진강을 안은 한강은 김포반도와 북녘 개성직할시 외곽을 폭 1㎞ 이상으로 가르며 강화만(江華灣)으로 흘러든다. 김포시 월곶면 용강리 753관측소. 한강하구 200리 물길이 좌우로 펼쳐진다. 역시 한강은 장대한 강이다. 서울에서 만나는 한강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분단이 아니더라도 그 압도적이고 도도한 물길 앞에서는 단절감이 느껴진다. 위대한 풍경을 두면 인간은 스며들지 못하고 밀린다. 어선 한 척 없는 강에서 한 발 물러난다. 애기봉과 김포 들을 에돌아 온 황토색 강물이 50m 단애 아래에서 끓는다. 간조에 든 여울 소리가 세차다. 해 지는 쪽으로 강인지 바다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강화만이 아스라하다. 군사정전위는 육지에 한정해 군사분계선을 설정했다. 따라서 한강하구 200리는 정전협정문에 따르면 뭍에 속하지 않는 땅이다. 그렇다고 바다도 아니다. 바다와 강이 섞이고, 두 체제가 대치하는, 그래서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않는 경계의 땅이다. 황복과 숭어가 오르는 강이다.

휴전 전까지 ‘조강(祖江)’으로 불렸다. 정전협정 문안 작성 과정에서 ‘한강하구’로 표기된 후 그 표현이 굳어버렸다. 그래도 조강마을이라든가 조강저수지 따위 지명에 옛 이름의 흔적이 남아 있다. 강 너머로 마주하는 북녘 땅은 옛 개풍군 하조강리다. 평소 강안에 해무(海霧)가 짙으나 6월 들어 시계가 좋다. 강폭 1.5㎞를 두고 하조강리 들판이 훤하다. 무논에 들어 막바지 손모내기를 하는 농민들의 손길이 바쁘다. 어른 따라 나온 조무래기들과 풀 뜯는 소가 논둑에서 한가롭고, 밭을 지키는 허수아비가 고즈넉하다. 이 심상한 농경의 풍경이 먼 기억처럼 문득 낯설다. 서로 닮은 게 오히려 낯설어지는, 특이한 심리적 경험은 철책 앞에 설 때면 종종 급습하듯이 찾아온다. 오랜 분단이 내면화되어서 생기는 심리일까. 아니면 긴장과 평화의 낙차 때문일까. 미묘한 감정들이 얹혀 강은 강 이상으로 단절되어 있다. 한강하구가 끝나는 곳은 200리 밖 강화도 서쪽 끝섬 말도(唜島)다.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는 말도에는 따로 여객선이 없고 주 3회 운항하는 군(郡) 행정선이 유일한 배편이다. 강화도 외포리 포구에서 행정선에 오른다. 배는 서도면 일대의 주문도·아차도·볼음도를 경유해 1시간20분 만에 말도 남쪽 선착장에 닿는다. 낮은 구릉을 넘어 100년 이상 묵은 감나무들이 환한 마을로 찾아들었을 때 비로소 선착장이 섬의 뒤편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말도 등대교회를 포함해 8가구 16명의 주민이 있고, 해병대 청룡부대의 말도소초가 있다. 가옥의 구조가 여느 어촌의 가옥들과 달리 독특하다. 무슨 창고처럼 크고 용마루가 훌쩍 높다. 미관도 그렇지만 당장 난방에 취약할 것 같다. 1970년대 정부 지원으로 지어진 이 가옥들은 북의 침투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하고 신고체계를 원활하게 하려고 1가구 2주택 형태로 지어졌다. 접경지역 외딴섬의 애환이 깃든 주택들이다.

이 해병대 관측소에서는 강 건너 북한군 초소가 가까이 보였다. 취재진이 머무는 동안 북한군이 망원경을 이용해 계속 남측 지역을 보고 있는 모습이 관측됐다.
섬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말도소초에 오르면 황해도 연백염전이 이웃 섬처럼 가깝다. 강화의 석모도나 교동도보다 지척이다. 최단거리 6㎞. 연강군 염전노동자구 흰 주택단지가 시야에 또렷하다. 한때 연백염전은 한반도 최대 소금 산지였다. 전쟁이 끝나고 연백염전이 북 수중으로 떨어진 후 남한은 이태 동안 극심한 소금 부족을 겪었다. 말도 토박이 주민 김근동(71) 할아버지는 “전쟁 전에 말도 주민들은 보름에 한 번꼴로 연백을 드나들며 생업을 꾸렸다. 거룻배 타고 다니고, 풍선(風船)도 갈바람 타고 40분이면 닿는다. 연백에 장이 서면 굴 같은 해산물을 내가고 연백평야 쌀을 팔아왔다”고 한다.

서쪽 망망대해로 작은 섬 셋이 점처럼 박혔다. 우도·함박도·은점도다. 우도는 전쟁 중 군사분계선 확정 문제를 논의할 때 유엔군 관리 하에 두기로 한 서해 5도 중 하나로 전략요충지다. 함박도와 은점도 사이에서 NLL이 시작된다. 그 바다에서 조업하는 북쪽 어선과 중국 어선이 자주 목격된다. 그러나 그 우측 말도와 연백 사이 바다는 중립지역으로 배 한 척 뜨지 못한다. 김포에서 만난 한강 물빛 그대로다. 황토색 여울이 잉어 떼와 엉켜 꾸물거리는 것 같다. 조류가 급해 졸졸 강물소리가 난다. 물새도 조류에 실려 흐른다. 섬 서쪽과 동쪽 해안에는 어로저지선을 알리는 낡은 표지판이 각각 서 있는데 ‘한강 하구’라는 검은 글씨가 또렷하다. 서해로 한참 밀려와 이곳에서 한강을 만나니 곤혹스럽다. 강화도는 강에 난 섬인가 바다에 난 섬인가. 이 접경의 물과 뭍은 이분법적인 사고를 조롱하는 듯하다. 김근동 할아버지는 말도 앞바다를 일러 ‘한강 입구’라 표현한다.

“이곳 물산은 모두 서울로 빠졌다. 새우잡이배가 교동 지나서 한강을 거슬러 마포나루까지 다녔다. 지금은 전쟁 전보다 교통이 더 나쁘다.”

전쟁 전 서해 물길이 열려 있을 때 말도는 황금어장으로 돈 많고 고기 많은 곳으로 유명했다. 우도와 연평도의 조기파시가 성업일 때는 섬 둘레 백사장이 조기 건조장이었고, 남쪽에서 올라오는 배들로 북적였다. 새우가 많이 올라 연백 소금에 오젓·육젓·추젓을 담갔다. 그때는 주민이 80여 가구 이상 살았고, 모두 어업에 종사했다. 마을 앞 해안가로는 각지에서 몰려온 술집들이 성업을 이루었다. 수상가옥까지 들어선 홋집 술집이 95호에 달했고, 그곳에 종사하는 여자들이 500명에 달했다. 남사당패들이 들고, 소리꾼이 많았다.

그러나 전쟁은 물길을 막고 터전을 앗아갔다. 말도를 60년 동안 창살 없는 감옥으로 만들었다. 배 한 척 띄울 수 없는 섬사람들은 하나둘 뭍으로 떠났다.

“옛 시절처럼 바다에 나가 마음껏 고기 잡고, 사람 왕래도 많았으면 한다. 아마 통일이 되어도 옛 시절은 안 돌아올 것이다. 풍선 타던 시절이 오겠는가.”

밤 깊도록 마른천둥처럼 북녘에서 포성이 울린다. 연백평야 어디쯤에서 훈련이 있는 모양이다. 주인도 객도 누워서 수심이 깊은 밤이다.

전성태·소설가


말도는 …

▶ 인천광역시 강화군 서도면 말도리. 섬 면적 1449㎢, 해안선 길이 6.1㎞. 인천에서 북서쪽으로 45㎞, 북한땅 황해도 연백염전으로부터 6㎞ 거리에 위치.

▶ 8가구 16명이 3∼12월까지 거주하며 벼농사가 주업. 매주 월·수·금요일 강화군이 운영하는 행정선과 1년에 8∼10차례 운항하는 화물선 등이 유일한 교통편.

▶ 선박 이용을 통제하는 한강 하구 중립 수역의 시작점이기 때문에 어로 활동이 금지돼 있음. 다만 주민에 한해 군부대 허락하에 바닷가 낚시 가능.

▶ 섬 이름 말도(唜島)는 ‘끝 말(末)’자에 ‘꾸짖을 질(叱)’ 자를 붙여 작명. 예부터 이 섬의 관청보고가 항상 늦어 꾸지람을 받았다는 데서 유래.

▶ 섬이 속한 서도면은 유인도 4개와 무인도 9개로 구성된 도서면으로 말도는 1914년 서도면에 편입.



한강 뱃길 가로막은 한국전쟁
정전 후 단 세 차례 선박 항해

역사의 아픔 흐르는 한강하구


수상 운송은 임진왜란 이후 조선땅에서 육상 운송을 능가했다. 사진작가 이시우씨의 저서 『한강하구』에 따르면 정약용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강과 바다에 다니는 큰 배, 작은 배는 천으로 만으로 헤아린다…일용백물의 운반을 배 아니면 메어 나르는 두 방법뿐이다. 배의 쓰임이 이처럼 전적이고 긴요하였다.”


수운(水運)의 이점을 강조한 내용이다. 한강 뱃길은 당연히 번잡하기로 으뜸이었다. 한양으로 몰려드는 막대한 양의 물자를 소화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마포나루는 1910년대까지 하천 항구 중 전국 제일이라는 명성을 유지했다. 이런 수운의 지위는 20세기 초 화물 운임이 저렴한 철도가 들어서며 흔들리기 시작한다. 한국전쟁은 한강 뱃길을 이용한 화물 운송을 전면 중단시켰다. 서해안 말도부터 한강·임진강이 만나는 오두산 통일전망대까지 한강 뱃길의 입구에 해당되는 81㎞ 구간이 전쟁 후 사실상 물 위의 비무장지대인 ‘한강 하구 중립구역’으로 묶였다. 이곳에서는 어선의 출입이 통제된다. 군사정전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출입할 수 있다. 승인을 받아 들어가더라도 상대방 해안선 100m 이내로 접근해선 안 된다. 휴전 후 남측 선박이 이 구역을 항해한 것은 세 차례 정도다.

첫 번째 민간 선박의 항해는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유로 건설에 필요한 골재 채취를 위해 한진종합건설 소속 준설선·예인선·바지선 등 작업선박 6척이 11월 말 강화도 왼쪽 교동도를 출발해 중립구역을 통과해 김포시 전류리에 닿았다. 두 번째는 유명한 ‘평화의 소’ 구출 때다. 96년 집중호우로 유도에 떠내려온 소를 이듬해 1월 해병대가 구출했다. 2005년에는 서울시가 제작한 한강의 거북선이 중립구역을 자체 동력으로 통과한 후 경남 통영 한산도로 옮겨졌다.

이런 선박 항행은 모두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에서 허가한 것이다. 북측으로부터는 별도의 허가나 승인을 받을 필요 없이 사전 통보하기만 하면 된다. 53년 7월 체결된 정전협정의 한강 하구 관련 조항은 5항이다. ‘한강 하구의 수역으로서 그 한쪽 강안이 일방의 통제하에 있고 그 다른 한쪽 강안이 다른 일방의 통제하에 있는 곳은 쌍방의 민용(民用) 선박의 항행에 이를 개방한다. 첨부한 지도에 표시한 부분의 한강 하구의 항행 규칙은 군사정전위원회가 이를 규정한다.’ 얼핏 자유로운 통행이 가능한 것으로 읽힌다. 하지만 이 조항에 따라 같은 해 10월 정전위원회에서 합의한 항행규칙 9조는 ‘적대 쌍방 사령관은 자기 측의 선박 등록에 적용할 규칙을 규정한다. 이미 등록된 모든 선박에 관한 보고는 군사정전위원회에 제출하여 비치케 한다’고 밝히고 있다.

특별취재팀=취재 신준봉 기자, 사진 김태성 기자, 동영상 최영기 기자

취재 협조=국방부, 해병대사령부, 해병대 2사단, 강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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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