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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빨리빨리’로 일어선 한국 이젠 콘텐트를 고민하자

외국인 근로자가 한국 기업의 국내외 산업현장에서 일하면서 가장 먼저 배우는 우리말이 ‘빨리빨리’라고 한다. 이 ‘빨리빨리’는 부작용도 적지 않았지만 1970년대 이후 20년 넘는 고도성장기에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원동력이었다. 반도체·TV 등 주요 품목에서 한국에 선두를 내준 일본 전자업계가 주목하는 한국의 스피드 경영도 기실 ‘빨리빨리’ 국민성에 뿌리가 있다.

최근 영국 런던의 한국 현지법인을 취재하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들었다. ‘빨리빨리’처럼 현지 채용 직원들이 알아듣는 한국말이 또 하나 생겼다는 것이다. ‘까’였다.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의 막말에 속하는 ‘까라면 까’의 ‘까’다. 한 현지법인의 경우 임직원 400여 명 가운데 한국인 주재원 10여 명을 제외하면 대부분 현지 채용 영업맨들이었다. 물량이 달려도 주문한 순서대로 물건을 내주는 것이 영국인의 상식이라면, VIP급 고객 회사엔 주문이 후순위라도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이 ‘한국적’이다. 한국 기업에서 오래 일한 파란 눈의 현지인들은 ‘까’라는 말이 보스의 입에서 터져나오면 군말 없이 움직인다고 했다. 한국인 주재원끼리 이런 표현을 자주 쓰다 보니 현지인들까지 알아듣게 된 것이다.

런던 피커딜리 등 시내 중심가에는 삼성·LG 광고판이 더 늘어난 것 같았다. 영국에서 삼성과 LG의 인지도나 브랜드 이미지는 기자가 4년 전 방문했을 때와도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런던 생활 5년째라는 LG전자 영국법인 문유정 차장은 “해러즈백화점이나 유명 프로축구단이 공동마케팅을 하자고 제발로 찾아오는 일은 5년 전만 해도 생각하기 쉽지 않았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2000년대 중반부터 후원한 프리미어리그 첼시 구단이 올 들어 최고 성적을 올리면서 유럽지역 스포츠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런던 시민들 중에는 3D(3차원) TV라면 모두 삼성 브랜드인 것으로 아는 이가 많다고 한다. 가장 먼저 출시해 시장을 선점한 덕분이다.

‘빨리빨리’‘까’‘안 되면 되게 하라 ’ 같은 한국 기업 특유의 근성이 없었다면 이역만리의 콧대 높은 영국 땅에서 단기간에 ‘코리아’의 이름이 뿌리내릴 수 있었을까 싶다. 하지만 상반된 생각도 꼬리를 물었다. 콘텐트의 가치가 디바이스(기기)의 가치를 앞지르는 시대 아닌가. 이제는 일사불란함 못지 않게 유연함과 다양성이란 옷을 걸칠 때가 아닌가. 디자인과 콘텐트의 나라 영국의 수도를 둘러보다가 문뜩 떠오른 생각들이다.

심재우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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