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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의 휴식처’에 짐 풀고 유쾌한 도전 시동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5일 남아공 입성한 태극전사들 두 얼굴의 아프리카에서 포효하라

“이 비행기는 30분 후에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합니다. 현재 요하네스버그는 6월 5일 오전 7시30분(한국시간 5일 오후 2시30분), 현지 날씨는 맑으며 기온은 영상 7도, 약간 쌀쌀한 날씨입니다.”



영어와 독일어로 안내가 반복된다. 월드컵이 벌어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실감난다. 월드컵 대표팀이 5일 오후 3시(한국시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열흘간 훈련한 대표팀이 뮌헨 공항을 출발한 지 10시간30분 만이다. 뮌헨은 초여름이지만 요하네스버그 OR 탐보 국제공항은 겨울이다. 10시간 반 만에 계절이 바뀐 셈이다. 아프리카의 겨울이라고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 해가 지고 새벽녘에는 전기 담요를 끌어안고 자야 할 정도로 춥다. 지난해 이맘때 남아공에서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 때 남아공의 겨울을 맛본 허 감독은 축구협회에 두꺼운 겨울용 점퍼와 전기담요를 요청했다.



무장한 경찰병력이 선수단 주위를 삼엄하게 경비했다. 그러나 요하네스버그는 유럽의 여느 도시와 비슷한 인상을 주었고 분위기는 차분했다. 도시 곳곳에서는 이번 월드컵에 출전하는 나라의 국기가 바람에 펄럭였다.



선수들은 공항에 내리자마자 대회 본부가 마련한 버스편으로 숙소를 향해 떠났다. 선수들은 생기가 넘쳤다. 젊고 건강한 아프리카의 사자나 표범처럼 남아공의 녹색 그라운드를 질주할 것이다.



오스트리아 전지훈련 캠프는 안온했다.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벨라루스·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 잇따라 0-1로 패했지만 ‘젊은 호랑이’들은 조금도 기가 죽지 않았다.



한국 스포츠의 DNA가 바뀌고 있음은 올 초 밴쿠버 겨울 올림픽을 통해서도 확인한 바 있다. 축구 대표팀도 마찬가지다. 한 경기에 졌다고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는 건 촌스러운 일이 돼버렸다. 그들은 더 이상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4일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위 스페인과 마지막 평가전에서도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있었다.



“당신이 이곳에 처음 왔다면, 입이 아니라 두 눈을 열어라.”

아프리카로 오는 내내 머릿속에 맴돈 말이다. 아프리카의 역사를 개관한 서적에 나오는 문구다. 섣불리 아프리카를 안다고 나불대지 말라는 뜻이다. 두 눈을 크게 뜨고, 두 귀를 활짝 열고 먼저 보고 들으라는 거다. 실제로 처음 만난 아프리카는 짐작과 다른 것이 많다.



적어도 아직까지, TV 시리즈 ‘타잔’ 속에서 보았던 아프리카는 없다. 남아공의 6월이 이런 날씨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인구 500만 명에 이르는 요하네스버그는 서울과 다를 게 없는 현대적인 대도시였다. 책에는 이런 말도 써있었다.



“그것도 아프리카다. 그리고 이것도 아프리카다.”

두 얼굴의 아프리카는 여전히 베일 속에 가려 있다. 아프리카를 둘러싼 베일은 한국 대표팀에도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다. 유럽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유럽 국가를 상대하는 건 원정 경기를 치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립지대 아프리카는 아시아·아프리카·아메리카 등 모든 대륙에 공평한 땅이다.



이곳에서 허정무는 축구 인생의 운명을 건다. 그는 2000년 아시안컵이 끝난 후 대표팀에서 쫓겨나듯 사퇴했다. 10년 전 허정무는 피가 뜨거웠고, 감정의 진폭은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할아버지가 된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지만 마냥 제자리에 머물지도 않는다. 요하네스버그 OR 탐보 국제공항에서도 허정무 감독은 생각보다 표정이 밝다. 한 달 전 그날도 그랬다.



월드컵 대표팀이 소집된 건 지난달 9일이다. 소집을 며칠 앞두고 허정무 감독과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흔히 축구는 전쟁에 비유된다. 감독은 전투를 지휘하는 장수다. 전쟁을 불과 한 달 앞둔 장수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여유만만해 보였다.



“제가 보기보다는 스트레스를 별로 받지 않는 성격입니다.”

그는 한국이 그동안 월드컵에서 부진했던 건 “너무 비장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지나친 사명감과 욕심에 온 몸이 굳어 제 기량도 채 펼치지 못했다는 거다. 그래서 나온 처방이 ‘유쾌한 도전’이다. 허 감독이 명명한 “유쾌한 도전”은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임하는 한국 대표팀의 슬로건이 됐다.



월드컵을 약 두 달 앞둔 3월 초 정해성 코치가 허 감독을 만나 직언했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대표팀을 맡아 2년 동안 일어난 일보다 앞으로 월드컵까지 두 달 동안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겁니다. 지금껏 했던 것보다 더 월드컵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 말은 현재 시점에서도 똑같이 통용된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보다 앞으로 2주 동안 벌어질 일들이 더 많을 것이다. 월드컵을 치른다는 건 폭풍의 중심을 향해 걸어가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바람은 걷잡을 수 없이 거세진다. 오스트리아 노이슈티프트의 유럽 전훈 캠프부터 월드컵이라는 괴물은 조금씩 바람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23명의 엔트리 발탁은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23명의 엔트리가 결정된 전후로 대표팀 숙소의 분위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선수들은 서로 웃고 있었지만 누군가 탈락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엔트리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였다.



23명 안에 살아남은 이동국은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내가 엔트리에 포함됐다는 걸 알았다. 탈락한 선수가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기쁨을 표현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튿날 탈락한 선수들이 숙소를 떠난 직후 아침 식사 시간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탈락한 선수의 가슴은 찢어졌고, 살아남은 선수는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다. 대표팀은 4일 스페인과 평가전을 마친 후 비로소 안정을 되찾았다.



앞으로는 더 큰 경쟁이 이어진다. 경기에 선발로 나설 선수는 11명뿐이다. 교체 멤버 7명 안에 못 드는 선수도 매 경기 5명에 이른다. 2002 한·일 월드컵 때는 3~4위전까지 7경기나 치렀음에도 김병지·현영민·최성용·윤정환 등이 단 1분도 뛰지 못했다.



요하네스버그에서 한국 팀의 베이스 캠프가 있는 러스텐버그까지는 버스로 2시간 남짓 걸린다. 숙소의 이름은 헌터스 레스트(Hunter’s Rest). 사냥꾼의 휴식처다. 허정무와 23명의 태극전사는 과연 무엇을 사냥할 것인가. 한국은 12일 오후 8시30분 포트엘리자베스에서 그리스와 첫 경기를 한다.



요하네스버그(남아공)=이해준 기자 hjlee7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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