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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는 온통 용 문신, 연 생활비 50만 달러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마카오 사람들이 전하는 김정남의 생활

4일 마카오 시내 알티라 호텔에서 만난 김정남(39)씨는 ‘잘나가는 재벌 2세’로 보였다. 권력 핵심에서 밀려났지만 권력의 그늘마저 즐기는 여유와 호사스러움이 묻어났다. 마카오 현지의 우리 교민들은 “늘 모자에서 신발까지 명품으로 치장하고 다닌다”고 말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보내주는 ‘어느 정도의 후원’으로 그는 ‘마음대로 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고급 호텔 투숙도 예사롭다. 함께 투숙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한국 국적의 여성도 있다.







▲김정남씨의 ‘내연녀’ 이혜경씨가 아들 한솔, 딸 솔희와 살고 있는 마카오의 가안각 아파트. 맨 위층 전체를 전세 냈다고 한다. 오른쪽은 정남씨가 고려항공 스튜어디스 출신 서영라씨와 현재 살고 있는 마카오의 해양화원 아파트. 22층에서 요리사, 접대원 등 3명의 보좌인과 살고 있다. 마카오=신인섭 기자



김정남씨의 현재 상태는 ‘백수’다. 특별히 돈 버는 활동을 하지 않는데 중국과 마카오를 오가며 잘 산다. 마카오의 김정남 지인들과 정보 소식통들에 따르면 그는 베이징에 시가 100만 달러짜리 주택 2채, 마카오의 코타이 해양공원 고급 주택단지에 100평 규모의 주택 2채를 보유하고 있다. 몰고 다니는 차도 3대다. 베이징과 마카오의 집에는 ‘정남의 여인’ 셋이 집을 나눠 살고 있다.



정남씨의 본처 신정희(30대 후반 추정)씨가 사는 곳은 베이징의 북쪽 외곽 고급 주택가에 위치한 드래곤 빌라라고 한다. 신씨는 평양 초대소 복무원 출신으로 평양에 자주 들어가 남편 대신 정치를 한다는 얘기가 있다. 김 위원장의 손자인 아들 금솔(13)군과 함께 살고 있다. 금솔은 캐나다 국제학교에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손자인 한솔(15)군과 손녀 솔희(11)양. 마카오 련국 국제학교의 2008년 연감에 나와있는 사진이다.
마카오에는 정남씨의 여인 두 명이 산다. 한 명은 얼마 전부터 별거에 들어간 이혜경(30대 후반 추정)씨로 전해졌다. 아들 김한솔(15)군과 딸 솔희(11)양은 엄마 이혜경씨와 살고 있다. 교민들에 따르면 이씨는 몇 년 전만 해도 아이들이 다니는 마카오 련국(聯國) 국제학교(School of Nations)에 와서 한국인 학부모들과 만나고 전화도 하면서 어느 정도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교민들과 교류를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마카오 에스트라다 거리(加思欄馬路·Estrada Pe. S.Fransico No 8-10)의 가안각(嘉安閣) 아파트 12층 전체를 전세 내 산다. 1990년대부터 김정남을 알았다는 현지 교민 양재임(53)씨는 “이씨가 얼굴은 예쁘장하지만 성격이 칼칼한 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3일 밤. 가안각 아파트 맞은편 폐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12층 집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아파트 사진을 찍으며 살폈지만 커튼 뒤의 움직임을 알기는 어려웠다. 이튿날 아침 일찍 이씨를 취재하기 위해 아파트 쪽으로 갔다. 마침 등교시간인 오전 8시쯤이었다. 10대 남학생이 가방을 메고 아파트를 나섰다. 마카오에 와서 알게 된 얼굴, 김정남씨가 아주 사랑한다는 한솔군이었다. 키가 제법 컸고 몸집도 있었다. 코밑 수염이 거뭇했다. 버스 정류장으로 따라가는 취재진을 보고도 당황하는 빛은 없었다. 영어로 대화가 진행됐다. 한솔군은 영국식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



“Are you Mr. Kim?(학생 성이 김씨인가)”

“Yes.(네)”

“Are you Mr. Han Sol Kim?(이름이 김한솔인가)”

“Yes.(네)”



한솔은 단답형으로, 명료하게 대답했다.

“Which school are you going to?(어느 학교를 다니지?)”

한솔은 가슴에 있는 학교 마크를 가리키면서 “School of Nations.(국제학교인데요) Are you press?(기자예요?)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제3국을 거론하며 적당히 둘러댔다.

“Are you son of that father?(학생이 그분의 아들인가?)”

“Yes.(네)”

“I am very interested in your family. So can I interview you?(학생 가족에 관심 있는데 인터뷰할 수 있나)”

“No comment. I want my privacy.(노 코멘트. 프라이버시를 지켜주세요)”

‘영국왕자도 프라이버시 보호를 못 받는다’고 하자 한솔은 씩 웃었다.

“Your sister Solhui doesn’t go to school?(왜 동생 솔희는 학교에 안 가나)”

평소에는 남매가 스쿨 버스로 함께 등교하고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해 본 질문이었다.

“She goes to another school.(다른 학교 다녀요)” 교민들에 따르면 남매는 한 학교에 다닌다.

“So can I talk to your mom and dad? Do you live with your parents?(그러면 학생은 부모님과 함께 사나)

“Yes.(네)

“Can I reach your father through you.(그러면 학생을 통해서 아버지를 만날 수 있겠네)”

“No, I am sorry I should go.(아니요. 미안합니다. 가야겠어요)”



김정남씨와 함께 살고 있는 서영라(왼쪽)씨와 본처 신정희(오른쪽)씨. 2001년 정남씨가 일본 나리타 공항에 불법 입국하다 추방될 때 촬영된 모습이다. 서씨는 당시엔 경호원으로 알려졌다. 앞의 아이는 신씨와 정남씨 사이에 태어난 아들 금솔.
버스가 왔다. 그는 버스를 타고 떠났다. 취재진은 한솔군이 미성년자임을 고려해 사진을 찍지 않았다.



한솔을 보낸 뒤 아파트 12층으로 올라갔다. 인기척이 없었다. 미리 확보한 이혜경씨의 휴대전화로 통화를 시도했다. 기자가 한국말로 하자 곧 바로 전화를 끊더니 이후 아예 받지 않았다.



정남씨는 현재 마카오 해양화원 22층(海洋花園 22樓) 대형 아파트에서 고려항공 스튜어디스 출신 서영라(30대 초반)씨와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에서 파견된 요리사, 접대원 두 명 등 ‘세 명의 보좌인’도 같이 있다고 한다. 3일 오후 9시쯤 가까스로 알아낸 집 전화번호로 통화를 시도했다. “이보시오.” 투박한 북한 말투의 여성 목소리가 들렸다. 말을 나누지 않았는데도 저쪽에서 의심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전화를 끊고 중국 지인에게 부탁해 중국말로 다시 전화했다.

“김 선생 계십니까.”

“당신 누구요.”

“안씨인데, 김 선생 안 계십니까.”

“니스쉐(누구쇼)”라고 거듭하더니 “늦은 밤에 무슨 전화를 하나”라면서 끊었다.



통화를 도와준 중국 지인은 상대방의 중국어가 어설펐다고 했다.

3명의 처·첩과 그 자녀 등 대규모 식솔을 거느린 정남씨에겐 본인과 가족의 호화 생

활, 자녀들의 국제학교 학비, 양육비를 고려할 때 연간 생활비가 최소 50만 달러 이상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는 게 정보 소식통들의 얘기다. 예전에는 보위부 등 북한 내 여러 기관으로부터 자금이 들어왔지만 요즘은 1년에 한두 번씩 아버지가 보내주는 ‘용돈’이 전부라는 것이다.



김정남씨의 사생활은 자유분방하다. 4일 밤 그가 잘 간다는 술집인 ‘금룡 가라오케’로 가봤다. 젊은 아가씨들로 가득했다. 마카오에서 20년 동안 살았다는 한국 교포 리리 마담을 만났다. 그는 김정남에 대해 묻자 말을 안 했다. 대신 “금룡 주점은 주로 매춘하려는 사람들이 온다. 한번에 홍콩 돈 4000달러(약 60만원)가 든다”고 했다. 정남씨의 자유분방함은 신체에도 미쳐 등에는 온통 용 문신을 하고 있다.



한 교민은 “90년대 초반에 마카오의 만다린 호텔 수영장에서 정남씨의 등에 큰 용 문신이 있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마카오의 고급 카지노 호텔 베네치안 2층에 있는 일식집 에도(江戶)를 즐겨 찾으며 한 조각에 100달러(12만원) 정도인 ‘일본 와규 스키야키’도 즐긴다고 한다. 동거하는 서영라씨와 마카오 시내의 한 서양식 백화점(마요한)으로 일주일에 한두 번 쇼핑 나오는 것을 목격했다는 얘기도 있다.



김정남씨가 마카오에 산 지는 오래됐다. 그가 1년 전까지만 해도 자주 찾았다는 한국 음식점 강남홍의 주인 양재임씨는 “90년대 초반 정남씨를 호텔에서 보곤 했는데 인사도 잘하고 서글서글했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년배 한국 교민들과 시내 한국 음식점인 ‘이가(李家)’에서 소주를 마시고 한국 노래방도 다녔다. 대신 노름에 빠진 것은 아닌 듯하다. 리스보아의 최고급 VIP 카지노에서 정남을 목격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카지노의 롤링 에이전트로도 일했던 양씨는 “정남씨가 주로 ‘마발이’에서 놀았다”고 했다. 마발이는 일반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소액 카지노다. 요즘엔 마카오 한인 사회와 교류가 뜸하다고 했다.



홍콩·마카오=안성규 기자 askme@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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