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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퇴출’ 극약 처방에 한 표 던진 이유는

지난달 말 중앙일보에 두 아이를 데리고 한국을 떠난 일본인 엄마 기사가 났다. 미국에서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일본 여성이 큰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에 맞춰 경기도 분당에 둥지를 틀었다가 교육 문제에 지쳐 5년 만에 일본의 친정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이었다. 그 가운데 “함께 뛰어 놀 시간이 전혀 없는데, 어떻게 친구를 사귀느냐”는 대목이 눈에 띄었다. 쉬는 시간엔 선생님이 “가만히 앉아있고 화장실만 다녀와”라고 한다는 것이다. 급식 시간에도 밥을 타오기 전까지 머리에 손을 올리고 앉아 있어야 한다는 데는 기가 찰 지경이었다.

김창우 칼럼

집에 가서 집사람에게 그 얘기를 꺼냈다. 뜻밖에 핀잔이 돌아왔다. “당신 딸도 1년 동안 그렇게 지냈는데 그것도 몰랐느냐”는 말이었다. 의외로 그런 선생님들이 많다고 했다. 쉬는 시간이 없어 화장실에 두세 명만 줄을 서 있으면 그냥 돌아와야 하고 운동장에 나갈 수 있는 점심시간도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려면 엄마의 노력과 할아버지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이 필요하다’는 농담 같지 않은 농담이 나오는 세상이라지만 내가 학교 돌아가는 것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고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이번 선거에 투표한 서울시 교육감 후보는 당선되지 못했다. 선거를 얼마 앞두고 동료 한 명이 말했다. 선생님들이 가장 싫어하는 교육감 후보가 있다고. 교사 10% 퇴출을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란다. 귀가 번쩍 트였다. 집사람에게 전하니 반색을 했다. 누가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비슷비슷한 교육의원 출마자 선거 공보를 뒤져 같은 공약을 내놓은 후보를 찾을 정도였다. 그만큼 맺힌 것이 많다.

지난해 3월의 일이다. 집사람이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간 아들 얘기를 꺼냈다. 요즘 좀 이상하다는 것이다. 늘 선생님에게 혼나고 어깨가 축 처져 돌아온다고 했다. 실제로 아침이면 학교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쓰는 모습을 몇 번 보기도 했다. 어느 토요일, 집사람이 선생님을 찾아갔다.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데 입술이 파래진 집사람이 손을 부들부들 떨며 나왔다. 차분히 달래놓고 얘기를 들어보니 기가 막혔다. 아이가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 말썽꾸러기로 찍혔다는 것이다. 나도 우리 아이를 안다. 개구쟁이긴 하지만 막돼 먹은 녀석은 아니다. 혼이 났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집사람은 “창문과 책꽂이를 닦았기 때문”이란다. 자기 자리를 청소하랬는데 시키지 않은 일까지 했다는 이유다. 아이 딴에는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행동인데 선생님한테는 말을 안 듣는 것으로 비쳤나 보다. 덤으로 “어머니가 그따위로 키웠지 않았느냐”는 질책까지 받았다며 집사람은 끝내 눈물을 보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하도 답답해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아이만 다치니 나서지 말고 조용히 넘어가라”는 충고가 대부분이었다. 청와대나 서울시교육청에 익명으로 민원을 제기해봐야 결국 누군지 다 알게 되고, 다른 학교로 옮겨도 그 낙인이 따라다닌다는 데는 더 할 말이 없었다. 내 부모님조차도 “교사가 비리나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교장·교감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하셨다. 당신들은 초등학교 교사로 40년을 근무하고 몇 년 전 명예퇴직 하셨다. 방법은 사방팔방에 소리를 질러대며 피 터지게 싸우든지 아니면 참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집을 내놨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날 수밖에. 다행히 들어 오겠다는 사람을 금방 만나고 어렵지 않게 전셋집도 구해서 아이들 학교를 옮길 수 있었다. 4월 1일이었다. 5년 넘어 산 동네를 떠나는 데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장삼이사들에게 그만큼 학교는 힘이 세고, 교사도 힘이 세다.

서울과 경기도에서 진보 성향 교육감이 당선됐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당선자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핵심 공약 중의 하나로 내놨다. 교원평가를 인사·보수와 연계하는 것에는 반대했다. 현행 교원평가제도 원칙은 수용하되 학부모와 학생의 참여를 보장하고 경쟁적 상대평가는 배제하겠다는 입장이다. 다 좋은 얘기다. 내가 표를 주지는 않았지만 곽 당선자의 진정성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 아이의 인권을 보장하고 교원평가에 학부모와 학생 의견을 반영한다는 데 나쁠 턱이 있나. 비록 ‘교원 퇴출’이라는 극약 처방은 물 건너갔지만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그만이다. 아이들이 정당한 사람 대접을 받고, 엉뚱한 이유로 이사 가는 부모가 없어진다면 방법이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4년 후에는 ‘교사 퇴출’ 후보를 찾지 않아도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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