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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감정의 덫에 빠질 때

선거에서 드러난 민심(民心)은 항상 천심(天心)일까? 뭐가 옳고 그르냐보다는 무엇이 대세인가가 더 중요한 시류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는 혼돈스럽다. 엊그제까지 천안함 사태와 안보가 대한민국 최대의 현안인 것처럼 떠들던 논객들, 이제는 안보 이슈가 역풍으로 작용해 한나라당의 패배에 기여했단다. 세종시와 4대 강 개발도 다시 도마 위에 오른다. 소통이 부족한 집권여당은 의당 패할 수밖에 없었다. 진실은 다수결로 정해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란 이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뗄 수 없는 관계일까?

서구 민주주의의 초석이 된 ‘솔론의 개혁’의 주인공이자 고대 그리스의 7대 현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솔론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가 지도자로 등장한 기원전 7세기, 그리스는 부당한 토지세 등으로 부익부 빈익빈의 심각한 양극화를 겪고 있었다. 솔론은 개혁을 통해 빈민 부채를 탕감해 주고 인신을 담보로 돈을 빌려 주는 것을 금지했다. 시민이 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였다. ‘전사(戰士)공동체’였던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시민을 잃는 것은 곧바로 공동체의 쇠망을 뜻했다.

솔론은 공동체의 위기를 수습하고 인권 중시의 민주주의 전통을 세웠다. 나아가 합리적인 국가 경영의 기틀을 잡아놓았다. 업적으로만 보면 당연히 아테네인의 사랑 속에 행복한 말년을 보내야 했을 터이다. 그러나 그는 부자와 민중 양측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10년간 해외를 떠돌아야 했다. 기득권을 빼앗긴 부자들의 증오는 그렇다 쳐도, 민중의 적대감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들은 더욱 급진적인 부와 권력의 분배를 요구했던 것이다.

현자가 떠난 아테네는 선동정치가들이 차지했다. 정쟁과 내분이 거듭됐다. 솔론의 개혁이 발효된 지 30여 년 후, 페이시스트라토스라는 참주가 등극했다. 그는 대중선동과 문화정책의 달인이었다. 해외로 쫓겨나 추방생활을 하다 아테네로 돌아올 때는 키 큰 미모의 처녀를 앞세워 아테네 여신이 강림한 것처럼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 유명한 디오니소스 제전을 만들어 민중의 마음을 뜨겁게 달군 것도 그였다.

솔론은 페이시스트라토스가 민주 대신 참주를 노리는 음모를 간파했다. 하지만 반대해도 소용 없다는 걸 안 솔론은 대문 앞에 자신의 무기를 내다 놓고 다른 사람들도 따라 하도록 권유했다. 참주정의 수립에 맞서서 스스로 자유시민이기를 포기한다는 무언의 저항이었다. 민주주의 이상이 현실에 의해 무장해제를 당한 순간이었다. 로고스(이성)에 대한 파토스(감성)의 승리는 민주주의 탄생 때부터 이미 존재해 오지 않았을까.

6·2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했다. 리더십도 비전도 취약했던 야당의 압승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가장 큰 요인은 보통 사람들의 가슴속에 쌓여온 기득권에 대한 미움이 아니었을까? 20∼30대 젊은 층의 정서를 보면 집권당 견제심리를 넘어 사회 전반에 대한 뿌리 깊은 좌절과 분노가 감지된다. 생지옥 같은 입시 경쟁을 뚫고 사회로 나왔지만 태반이 백수 신세이거나 수입과 신분이 불안한 임시직에 만족해야 한다. 글로벌 무한경쟁이라는 기득권의 구호는 이제 지긋지긋하다. 금융위기로 경제가 어렵다지만 부자들은 여전히 흥청거린다. 천안함 사태를 놓고도 이명박 정부가 북한에 대해 너무 한 거 아니냐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러다 전쟁이라도 나면 우리 보고 나가 싸우라고?’ 그들의 마음속엔 불복의 감정이 흐른다.

여기에 디지털 미디어가 가세하면 순식간에 파토스의 확대 재생산이 이루어진다. 분노와 좌절의 메시지가 재미와 ‘쿨’의 장식을 달고 급속히 유통된다. 그 결과는 놀랍다. 감성의 평준화가 거의 모든 젊은이들에게서 목격된다. 세상은 단순한 흑백으로 갈라지고, 선거는 하나의 게임으로 둔갑한다. 조건반사에 가까운 민첩한 액션과 귀속집단에 대한 참여의식이 작용할 뿐이다.

‘민심은 천심’이라 할 때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임진왜란 이후 쑥대밭이 된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선조는 퇴계 이황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 퇴계가 임금에게 바친 ‘성학십도’는 정심(正心)으로 시작한다. 먼저 마음을 바로잡으라는 뜻이다. 백성의 감정을 돌봐야 하는데, 그 감정은 보다 근본적인 인간의 본성인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에 의해 제어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지방선거 이후 정치적 위기에 빠진 MB 정부가 감정보다는 이성과 원칙, 도덕성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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