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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신수정에서 10대 김한까지…한국 음악의 힘 재발견

54년 전 색동저고리를 입고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던 소녀의 꿈은 바로 그곳, 명동의 아담한 극장에서 시작됐다. 과거 시공관, 국립극장, 국립극장 본관 예술극장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바로 그 장소는 피아니스트 신수정(68)을 비롯해 시대의 격랑을 헤치고 살아온 대한민국의 많은 예술가에게 특별한 장소일 터이다.

개관 1주년 명동 예술극장에서 만난 ‘시공관’의 추억

명동 예술극장 개관 1주년으로 준비된 축하 공연 가운데 첫 번째 순서는 3일 저녁, 피아니스트 신수정이 정성껏 준비한 다채로운 분위기의 음악회였다. ‘신수정과 함께하는 명동극장 어제, 그리고’ 라는 제목의 이번 공연은 과거도 오늘도 무대 위에서 치열한 삶을 보내고 있는 음악가들의 생생한 모습과 그들이 길러낸 다음 세대 젊은이들의 흐뭇한 미래까지 또렷한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리였다. 전쟁 직후부터 우리나라 서양 음악 연주계를 대표해 온 노장들이 꾸미는 자리였지만, 그들이 들려 준 소리에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여전히 건재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반가웠다.

공연의 시작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0번의 2악장 로만체였다. 1956년 3월, 추운 날씨에 얼어붙는 손을 억지로 녹여가며 연주했던 열네 살 소녀의 추억은 지금껏 신수정의 손끝에 그대로 살아있는 듯했다. 함께 연주하며 오케스트라 역할을 해 준 피아니스트는 조그만 소년이었을 때 처음 만났고 이후 대학에서 동료 교수로 일하며 친분을 쌓아 온 김영호(54)였다. 두 사람의 무대는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과 왈츠로 이어지며 무대에 훈훈함을 더했다.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3번을 넉넉한 여유와 휴머니즘으로 연주한 첼리스트는 한국 첼로계의 대부이자 국내 오케스트라 역사를 통해 수많은 경험을 쌓아 온 나덕성(69)이 맡았다.

전성기 시절 ‘한국의 마리아 칼라스’ 라 불리던 프리마 돈나 박노경(75)과의 연주는 신수정이 고등학교 시절부터 반주자와 솔리스트로 이어 온 오랜 인연에 대한 감사함과 독일 가곡에 대한 애정, 그리고 브람스의 멜로디가 빚어내는 애틋함이 멋진 향기를 낸 자리였다. 긴 호흡과 에너지가 필요한 부분에서 예전 같은 모습은 아닐지라도, 세 곡이 연주된 브람스의 가곡들에서 노장 박노경의 흔들리지 않는 음악적 자존심과 생기발랄한 표정, 화사한 색채의 연출 등은 온전히 빛을 발했다.

베토벤 창작 중기의 화려함이 잘 나타난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 1악장은 역시 신수정의 ‘음악 절친’ 김민(68)이 연주했다. 날카로운 서정성과 극적인 남성미의 표출까지 두 사람의 앙상블이 절묘했음은 물론이며, 이중주로서 나타낼 수 있는 최대한의 스케일까지 이끌어낸 호연이었다. 1부 공연의 피날레는 신수정의 대표 레퍼토리라고 할 수 있는 쇼팽의 발라드 1번. 비장함과 세련된 색채, 여유로운 기교의 구사에 이르기까지 대가의 풍모가 흘러나왔다.

2부 공연은 작지만 무척 소중했던 극장 ‘시공관’을 통해 자라고 깨달음을 얻은 수많은 한국 음악가들의 정신이 후학들을 통해 이어지고 있는 단면을 살펴보는 자리였다. 14세 어린 나이에 이미 비르투오소가 갖춰야 할 거의 모든 요소를 지니고 있는 클라리네티스트 김한에게 우리가 놀라야 할 것은 그의 현란한 기교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장단점과 기질에 대한 냉정하고 정확한 분석을 통해 향상을 꾀하고 있다는 점이 그가 어떤 곡을 연주해도 청중과 놀라운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이유다.

클라리넷의 부드러운 음색이 흥겹게 나부끼듯 연주된 ‘베니스의 사육제’ 와 ‘차르다슈’를 지나서 신수정의 제자이자 각광받고 있는 신예 두 사람, 조성진(16)과 제갈소망(27)의 쇼팽 협주곡 연주(피아노 2중주)는 서로 다른 개성의 두 피아니스트를 만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가볍고 거침없는 기교적 표현과 동시에 작품의 핵심을 분명한 조형감각으로 그려 놓는 조성진의 해석이나, 유연한 흐름 속에서 탁월한 서정성을 나타낸 제갈소망의 스타일 (슈만-리스트의 ‘헌정’ 연주) 모두 완성도가 높은 것이었다.

연주 예술에 있어 다양함이란 독창성, 즉 오리지널리티와 연결된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힘들었으며, 외국 문화에 의존하며 공부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세대와 달리,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공부하고 자라난 학생들이 국제 무대를 휩쓰는 시대가 도래했다.” 자신감에 찬 어조로 말하는 신수정의 목소리에는 감개무량함과 설렘이 묻어 있다. 끊임없이 진화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개발해나가는 자랑스러운 한국 음악가들의 약동이 이어진다면, 과거 시공관이었고 이제 명동예술극장으로 첫돌을 맞은 이 아늑한 극장은 스스로 자부심을 가져도 될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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