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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증오·갈등 …가슴속 응어리를 예술로 승화

1 지난해 미국 뉴욕 작업실에서 드로잉 ‘꽃’ 연작을 그리고 있는 루이스 부르주아. 2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 조각 정원에 서있는 부르주아의 거미조각 ‘마망’.
여성 미술사학자 린다 노클린은 1971년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가 태어나지 않는가』란 도발적인 제목의 책으로 남성 위주의 세계 미술계에 문제를 제기했다. 여성 미술가는 그만큼 희귀하고, 저평가되었으며, 무시당했다. 다른 어느 분야보다도 가부장적 권위가 뚜렷했던 미술계 남성들은 여성이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 빚는 것을 자신들이 독점한 세상에 대한 침투로 여겨 경계했다. 여성은 오로지 모델을 서기 위해 태어난 존재였다.

지난달 31일 99세로 타계한 여성작가 루이스 부르주아

하지만 이 여성은 달랐다. 나이 칠십이 넘어 국제적인 명성을 얻을 때까지 줄기차게 여성의 목소리로 여성의 성적 정체성을 작품으로 발언했다. 지난 5월 31일 미국 뉴욕에서 노환으로 타계한 루이스 부르주아가 그 당찬 여성이다. 100세를 1년 앞둔 99세에 눈을 감은 그는 20세기 서양미술사에 가장 독특한 발자국을 남긴 여성 미술가가 됐다. 종교적이고 철학적이며 심리학적인 작품 세계로 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고 감동시켰다. 그 작품의 핵심은 부르주아 자신의 자전적인 행로에서 왔다.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제 속의 치부와 갈등과 증오와 사랑을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그 힘이야말로 진정한 여성성이요, 모성이라 부를 수 있다.

191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부르주아는 어린 시절, 오래된 장식용 벽걸이 융단을 수리하는 집안의 공방 일을 도우며 뛰어난 미술적 재능을 보였다. 1932년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으나 동시에 미술에 끌리는 소명에 눈을 돌려 루브르 미술학교와 그랑 쇼미에르 미술학교에서 공부했다. 38년에는 입체파 화가이자 초현실주의자였던 페르낭 레제의 개인 작업실에서 작업하며 큰 영향을 받았다. 그해에 미국인 미술사학자인 로버트 골드워터와 결혼해 뉴욕으로 옮기며 화가이자 조각가로서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부르주아는 뉴욕에 뿌리내리며 날개를 활짝 폈다. 여성성에 바탕을 둔 대담하면서도 섬세한 작품들로 인정받기 시작해 82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여성으로는 처음 회고전을 열었고, 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여성 작가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서구미술사에서 부르주아는 예외적으로 작품성과 스타성으로 우뚝 선 중심 주자였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거대한 거미상인 ‘마망’은 지금 전 세계 주요 도시의 미술관과 거리에 서 있다.

루이스 부르주아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부모와의 불화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놀아나는 것을 가까운 곳에서 볼 수밖에 없었던 아픈 기억, 그 추문이 가라앉길 기다리며 침묵했던 어머니에 대한 애증이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부르주아는 대표작인 ‘아버지의 파괴’ ‘출구 없음’ 등에 대해 “내 모든 작업은 귀신을 쫓아내는 푸닥거리다. 그렇게 해서 나는 무엇인가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또 작품의 내용을 철저하게 자전적인 것으로 채운 부르주아는 “내 작업의 원동력은 깊이 느꼈던 내면적 고독”이라고도 했다. 아마도 미술사가들이 부르주아의 작품세계를 어떤 사조로 분류하기 어려운 이유는 이렇듯 이런 작품이 부르주아의 것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리라.

지난 3월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꽃을 소재로 한 드로잉·조각전을 열었을 때 작가는 탄생과 죽음을 한 몸에 지닌 여성의 육체를 찬양하며 이런 설명을 붙였다. “꽃은 보내지 못한 편지와도 같다. 아버지의 부정, 어머니의 무심을 용서해준다. 꽃은 내게 사과의 편지이자 부활과 보상의 이야기다.”

작가의 마음은 생명의 본향인 모성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탄생과 죽음을 한 몸에 지닌 여성의 육체는 그에게 가장 신비하면서도 아름다운 것이다. 부르주아가 뼈대만 응결시켜 그린 드로잉은 인간이 살아있을 때 알고 가야 할 마지막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가 증오했던 아버지, 경멸했던 가족과 꽃으로 화해하며 여신의 신기 들린 이야기를 펼쳐 보였던 부르주아는 이제 자신이 그림으로 직조했던 자궁으로, 땅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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